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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24) APU

 


“트럭 시동은 절대 끄는게 아니야!”


처음 운전을 하면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 제 중국인 트레이너가 했던 말입니다. 실제로 그는 절대 트럭 시동을 끄지 않았습니다. 주유를 할 때 조차도 말이죠. 하지만 저는 석유 파동 세대입니다. 국민학교 때 아주 짧은 여름방학과 기나긴 겨울방학을 지내곤 했죠. 그래서 짐을 싣거나 내릴 때, 혹은 다음 짐을 한정 없이 기다리며 엔진을 끄지 않는게 좀 불편했습니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여름엔 바깥 날씨는 선선해도 햇빛이 내리쬐면 트럭 내부는 한증막처럼 덥습니다. 엔진을 돌리며 에어컨을 켜야만 하죠. 겨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엔진을 끄자마자 곧바로 냉기가 스며듭니다. 그래서 통상 트럭커들은 엔진을 끄지 않습니다. 잠을 잘 때조차 말이죠.


사실 겨울엔, 트럭에 따라선, 벙커 히터라는 장치가 있기는 합니다. 배터리로 난방을 하는데요, 꽤 쾌적하게 잘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새벽녘에 배터리 저전압 경고음이 울리며 드라이버를 깨우고 꺼져 버린다는 겁니다. 오래 자지도 못하고 나와서 엔진을 다시 켜야 되죠. 최근 나온 Freightliner 모델에선, 배터리 전압이 떨어지면 스스로 시동이 걸리며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능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더운 날에는 방법이 없죠. 에어컨을 쓰기 위해 엔진은 24시간 돌아갑니다.


세미트럭 아이들링은 1시간에 보통 1갤런의 연료를 씁니다. 약 3.8 리터가 그냥 태워지는 거죠. 더불어 벨트나 엔진오일 등의 소모품은 물론이고 엔진 자체의 내구성도 점점 열화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PU를 장착한 트럭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APU는 조그마한 디젤 엔진입니다. 트럭의 엔진이 정지했을 때 전원을 공급하고 냉난방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연료는 트럭의 연료와 공유합니다. 또한 냉각수도 트럭의 것을 가져와서 씁니다.


이것의 장점은 많습니다. 우선 연료 소모량이 커다란 트럭 엔진보다 엄청나게 적습니다. 그리고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트럭커는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지요. 엔진을 돌리지 않고서도 전자레인지라든가 커피 메이커를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또 아주 추운 겨울엔 APU가 냉각수를 미리 히팅해 주므로 부드러운 엔진 시동에 효과적입니다.


아주 더운 날엔 APU의 에어컨 성능이 턱없이 모자랄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네바다 주의 Mesquite 라는 시골 마을 트럭스탑에서 묵은 적이 있는데요, 이때 수은주가 섭씨 50도 이상까지 치솟았습니다. 트럭스탑의 아스팔트가 흐물흐물 녹아내릴 정도였습니다. APU의 에어컨으로는 도저히 트럭 내부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더군요. 뭐, 가지고 다니던 12볼트 선풍기와 병행해서 여차여차 잘 넘겼습니다만…


물론 APU의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비싸고요, 쓸데없는 무게가 추가되고, 이것도 하나의 엔진이다 보니까 관리 요소가 늘어납니다. 더불어 APU의 트러블은 곧잘 트럭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예전에 Kenworth T680 새 트럭을 할당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주행거리 100마일도 안 되는 완전 새 트럭이었는데 이상하게 냉각수가 계속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루 한 병 이상, 심할 땐 두 병 이상의 냉각수를 들이키는 트럭이었습니다. 매일 두세 번씩 후드를 열고 냉각수 체크를 하는게 아주 귀찮았죠. 어느 날 에드먼튼에서 짐을 내려 주는 동안 트럭을 체크하다가 드디어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메인 엔진의 냉각수 계통과 APU의 냉각수 파이프 연결 부분에서 붉은색의 액체, 즉 쿨런트가 똑 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약과입니다. 또 다른 트럭을 몰 땐, 한참 내리막을 내려가다가 같은 부위가 그야말로 파열해 버려서 급격히 냉각수 수위가 내려가 엔진 경고음이 울리며 급히 갓길에 세워야 될 때가 있었습니다. 회사 메카닉의 도움으로 엔진 후드를 열고 APU로 가는 냉각수 밸브를 잠근 다음에 다시 움직일 수 있었죠.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주 장점이 많은 장치입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트럭들이 APU를 장착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너 오퍼레이터라든가 소규모 회사들이 APU를 구입하고 운영하는데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죠.


휴게소나 트럭스탑에서 트럭을 파킹하고 잘 때, 제 양옆의 트럭이 APU를 장착하고 있다면 아주 운이 좋은 밤입니다. 비교적 조용히 잘 수 있거든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잠깐 깰 때마다 이쪽저쪽에서 들리는 웅웅거리는 엔진 소리를 들어야만 하죠.


부디 모두 형편이 좋아져서 APU는 그냥 부담 없이 달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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