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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20) 고기 검사와 코로나가 앗아간 것

제가 싣고 다니는 짐의 반수 정도가 고기입니다. 주로 캐나다의 비프 beef 를 싣고 미국으로 가서 미국산 포크 pork 를 싣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일이 많습니다. 캐나다 비프는 브룩스의 jbs 혹은 하이리버의 카길에서 싣습니다. 간혹 레드디어의 올리멜에서 돼지 껍데기를 싣고 미국에 있는 젤라틴 공장으로 가기도 합니다.


한번은 사스카추완의 무스조에서 돼지고기를 싣고 멕시코 국경 근처의 텍사스 라레도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이런 짐은 본디드 로드 bonded load 라고 해서 미국은 땅만 빌려 줍니다. 국경도시에 도착해서 제 짐이 바로 멕시코에서 온 트럭에 실리죠. 비슷하게 멕시코에서 열대 과일을 가득 싣고 와서 제 트럭에 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도 본디드 로드입니다. 캐나다 들어가기 전에 미국 국경 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VOID 마크를 받아야만 합니다.


소고기를 싣고 미국에 가면 다양한 장소에 갑니다. 보통은 냉장 창고로 가죠. 간혹 패키징 회사에 갈 때도 있습니다. 거기선 대량으로 받은 비프를 소포장하여 슈퍼마켓에 납품하죠. 소시지 공장에 갈 때도 있습니다. 또 북미에 살고 계신 분이라면 익숙하실 잭 링크스 Jack Link's 육포 공장에 가기도 합니다. 카길 Cargill 에서 받은 소고기는 이상하게도 미국에 있는 카길 공장으로 주로 갑니다. 시퍼 Shipper 가 카길 캐나다고 리시버 Receiver 가 또 카길 US 죠.



미국은 사방에 도축장이 있습니다. 회사도 다양하죠. Cargill, Tyson food, Smithfield, Farmland 등등이 이런 회사입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1년 내내 쉴 새 없이 24시간 돌아가죠.


고기짐이 좋은 점은 보통 드랍 엔드 후크업 Drop And Hookup 시설이라는 점입니다. 트럭스탑에서 대기하다가 앱으로 트레일러 위치를 확인하거나 전화를 걸어서 짐이 준비된 걸 확인한 후 빈 트레일러를 내리고 이미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달고 출발하면 됩니다.


이외에도 고기를 사용한 가공품, 소시지나 햄 혹은 피자 토핑 등, 을 싣고서 캐나다로 향합니다.



고기짐이 안 좋은건 인스펙션을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캐나다에선 랜덤하게 검사를 받습니다. 짐이 국경을 넘는 순간 인스펙션을 할지 말지 결정됩니다. 국경을 넘은 후 정부 사이트에서 나의 짐이 인스펙션 대상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스펙션이면 해당 시설로 가서 몇 시간 대기한 후 검사를 마치고 서류를 받은 다음에 Loblaws, Costco, Walmart 등의 웨어하우스로 가서 짐을 배달합니다. 짐을 받는 장소에서는 맨 처음 하는게 인스펙션 유무입니다. 짐이 인스펙션 대상인데 스킵하고 그냥 왔다면 짐 받는 걸 거부합니다. 따라서 인스펙션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미국에선 모든 캐나다의 고기를 검사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닌게 여러 해 전에 알버트에서 광우병 소동이 있었거든요. 알버타/몬타나 기준 미국의 검사 시설은 국경을 넘자마자 있습니다. 두 개의 시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I47, 또 하나는 I264 라고 불립니다. 고기짐을 가지고 국경을 넘으면 둘 중에 한 군데 반드시 들려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과정을 스킵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합니다.


검사 시간은 상황에 따라 틀립니다. 엄청나게 바빠서 수십대의 트럭이 한꺼번에 몰리면 하루 온종일 걸릴 때도 있습니다. 한가할 때는 15분도 안 걸립니다. 가끔 랜덤으로 이콜라이 E. coli 세균 검사에 당첨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또 한 반나절 정도 까먹게 되죠. 저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이콜라이 검사를 받아 봤습니다.


예전에는 서류를 가지고 사무실에 가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운전사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차례가 되면 검사 직원이 몇 번 도어에 트레일러를 대라는 지시를 합니다. 그러면 다시 트럭으로 가서 지정된 도어에 댄 후 다시 사무실로 가서 또 수다를 떱니다. 검사를 마치면 직원이 서류를 직접 건네주죠. 그럼 인사를 하고 다른 운전사들에게 빠이빠이를 하고 목적지로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미트 인스펙션 시설은 일종의 사랑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이 사랑방은 사라졌습니다. 서류 봉투에 전화번호를 적고 서류를 건넨 후 자기 트럭에 앉아 있어야 하죠. 직원이 전화를 걸어 할당된 도어를 알려 줍니다. 그러면 지정된 도어에 댄 후 다시 전화를 기다릴 뿐입니다. 끝났다는 전화가 오면 다시 사무실로 가서 서류를 건네 받고 출발합니다. 검사 시설은 예전의 드라이버 라운지를 사무실로 확장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운전사들이 모여 복작복작하며 이야기 꽃을 나누는 장소가 없어져 버렸죠. 코로나 팬데믹이 할퀸 상처는 아직 이런 시설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의 옛날이 그립군요. 아 옛날이여~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6-class-5.html

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7.html

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8-part-1.html

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0-part-3-hos-rule.html

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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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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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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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팀 드라이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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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게를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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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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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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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로드킬과 범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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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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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기 검사와 코로나가 앗아간 것


히치하이커

12월 중순, 영하 20도를 근접하는 날씨에 알버타 테이버에서 버거킹용 프렌치 프라이를 가득 실었다. 꼬박 4박 5일을 달려 조지아주의 소도시에 도착해 짐을 내렸을 땐 한 여름 날씨로 탈바꿈되었다. 나도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얇은 바지에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다.


다음 짐은 루이지에나 소도시에서 A&W에 납품할 고구마 프라이를 실어야 한다. 이번 트립에서 나의 역할은 탄수화물 전달자다. 추운 곳의 감자를 튀겨 남쪽에 갖다 주고 따뜻한 곳의 고구마를 튀긴 걸 다시 북쪽으로 가져다 준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짐을 가져다 주는게 정확히 5일 전에 내가 감자튀김을 실었던 곳이라는 것이다.


조지아 주에서 알라바마와 미시시피를 거쳐 꼬박 하루를 달려 루이지에나의 델리라는 소도시 쉬퍼에 도착했다.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 짐을 실었다. 짐을 싣고 나니 밤이 어두워져 쉬퍼 야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옷을 입고 화장실에 갔다가 트럭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반갑지 않은 손님이 보였다. 파리 한 마리가 윙윙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짜증이 솟구쳤다. 파리가 캡 안에서 날아다니면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운전할 때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신경 쓰이게 만든다. 쓰고 있던 모자로 때려 잡으려 해도 날렵한 파리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놈을 잡는 거에 신경 쓰다가 사고를 낼 뻔한 적도 있다. 예전에 네브라스카 주의 스카일러에 있을 땐 한꺼번에 세 마리의 파리가 캡 안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 고생한 적도 있다.


비에 젖은 비웃을 단도리 한 후 파리를 때려잡기 위해 모자를 손에 들고 캡 안 중간에 가만히 서서 놈을 수색했다. 녀석은 나의 살기를 느꼈는지 어딘가에 숨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놈을 잡아 죽이는 걸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쳤다. 처음 출발했던 곳, 테이버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비가 그친 뒤 상쾌한 기분으로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잠시 후 날이 밝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제 그 파리놈이 내 눈앞을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 씨~”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욕이 나왔다. 왜 이렇게 파리는 뒷자석에서 날아다니지 않고 내 눈앞에서 붕붕거리는 걸까?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파리들이 이렇게 운전사를 짜증 나게 한다.


놈을 무시하며 달리는데, 자신이 무시당하는게 화가 나는지 놈이 대담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내 손등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다른 손으로 놈이 앉아 있던 내 왼손바닥을 내려쳤다. 트럭이 크게 흔들렸고 놈은 나를 비웃듯이 날아가 버렸다.


한참 후에 그 녀석은 GPS 화면 위에 앉아 돌아다녔다. 그리곤 가만히 멈춰 두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살그머니 모자를 벗고 녀석을 노려봤다. 그 녀석의 허점을 노려 모자로 gps를 내려쳤다. GPS 흡착판이 떨어졌고 트럭이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녀석은 나의 되도 않는 시도를 비웃는 듯이 다시 내 눈 주위를 몇 번 빙빙 돈 후 운전석 옆 차창에 자리를 잡았다. 놈을 놀래키지 않으려 조심하며 가만히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보통 이렇게 하면 파리들은 바람에 빨려 밖으로 쫓겨나곤 한다. 그런데 이놈은 그 경우가 아니었다. 창문이 열리기 시작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올라 뒷편 침대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성가시기 짝이 없는 놈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릴 땐 파리가 참 많았었는데 요즘은 그래도 보기가 힘들어진 셈이기는 하다. 특히 캐나다로 이사 와서는 집에서 파리를 접한 기억이 별로 없다. 여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나 가끔 파리를 본다. 근데 지금은 12월 말이다.


여튼, 어릴 때 파리와 관련된 기억이 참 많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디나 파리가 있었다. 대부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어서 파리를 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많았다. 독극물을 밥에 섞어서 접시에 놓아 두면 파리가 먹고 죽었다. 그 접시 주변으로 파리 시체가 즐비했다. 천장에 끈끈이를 쭉 매달아 놓기도 했다. 파리들이 끈끈이에 붙어 잔뜩 죽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파리채가 있었는데 그걸로 파리를 잡으며 노는게 나의 일상이기도 했다.


파리를 이렇게 잡아 대는 건, 이놈이 음식물에 앉으면 알을 까고, 곧 그 음식은 구더기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상에 올려져 있던 고등어구이에서 뭔가 꿈틀대 자세히 보니 한쪽이 완전히 구더기로 뒤덮여 있는 것도 봤다. 김치와 풀떼기 뿐인 밥상 위에서 유일한 단백질원이었던 고등어구이를 그렇게 못먹게 돼서 무척 화가 났었다.


파리에 대한 두서없는 잡상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이녀석이 또 내 눈앞에서 붕붕거린다. “너 인마 조심해! 나 어릴 때 너 많이 죽였어.” 놈에게 경고했다.


어릴 때 곧잘 파리를 가지고 놀았다. 비닐봉지로 파리를 생포하면 날개를 떼고 다리를 뽑으며 고문했다. 생포한 파리를 모기향 연기에 갖다 대고 죽는지 어떤지 실험하기도 했다. 결국 모기향 연기는 파리를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서서히 모기향 불꽃에 놈을 갖다 대고 불고문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파리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예전처럼 음식물을 바깥에 방치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놈이 나의 안전에 해가 될 확률은 0%에 근접한다.


어릴 때, 파리 흔적은 어디에나 있었다. 화장실에 가면 구더기들이 드글거렸다. 그놈들은 짧은 번데기 과정을 거쳐 파리로 변신할 거였다. 파리들은 음식을 먹은 후 벽에 붙어 다시 게워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빨아 먹는다. 파리가 그 짓을 한 후에는 검은 반점이 남는다. 집안 벽지와 천장과 형광등에 파리가 남긴 검은 반점들이 그득했다.


다음 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북쪽으로 올라가며 날이 선선해져서 살 만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파리놈이 다시 나타났다. “야 인마, 너 빨리 나가야 돼. 위로 올라가면 추워서 너 못 살아.” 놈에게 경고했다.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이놈은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나와 같이 여행하게 된 걸까? 이놈은 언제 태어났을까? 얘는 어디서 구더기 시절을 보냈을까? 번데기에서 파리로 우화했을 때, 놈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놈과 여러 가지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우리끼리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게 참으로 안타까워졌다.


“너는 알에서 깨어난 순간을 기억하니? 네가 알에서 나왔을 땐 조그만 귀여운 구더기였겠구나! 번데기에서 파리로 변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니?”


놈에게 두서없이 질문했다. 대답을 절대 들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시작한 대화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너랑 비슷한 경험이 있어. 몇 년 전에 갑자기 캐나다로 이사 왔어.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을 뒤로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게 된 거지. 완전히 인생이 리셋된 거야. 그러니 네가 갑자기 번데기에서 파리가 됐을 때 기분이 이해될 것도 같다.”


녀석은 내 앞에서 도발을 해도 내가 반응하지 않고 이상한 말들을 해대자 실망했는지 멀찍이 앉아 두 다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놈은 한국에서 보던 파리보단 약간 작은 몸집을 하고 있었다. 대시보드에서 이리로 걷다가, 저리로 걷다가, 가만히 앉아 두 다리를 비비다가, 그 팔로 다시 자기 머리를 쓸어내리기도 했다. 며칠 밥을 못 먹었는지 놈의 배가 홀쭉했다.


갑자기 내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됐다. 파리에게 말을 걸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그냥 앞만 보며 운전에만 집중했다. 이상하게 눈동자 안에서 비가 오는 듯 윈드 쉴드 너머 풍경이 흐릿해졌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아내가 싸준 된장찌개를 해동해서 먹었다. 뒷정리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된장찌개에 버무려진 밥알 몇 개를, 마치 못 보고 실수로 빠뜨린 것처럼, 테이블 위에 남겨 놨다. 먹던가 말던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은 점점 추워졌다. 간간히 내리던 비는 눈으로 변한지 오래다. 히터를 틀어 놓은 덕분에 캡 안은 훈훈했다. 덕분에 파리놈은 내 앞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 “한계점은 넘었다, 인마. 넌 지금 나가면 10분 안에 얼어 죽을거다. 꼴 좋다.” 알아들을 리 없는 말을 놈에게 쏘아 줬다.


갑자기 어릴 때 tv에서 본 찰스 린드버그에 대한 흑백 영화가 생각났다. 그는 최초로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무착륙 단독 비행을 성공시킨 사람이다. 33시간 동안 그는 단 한숨도 못 자며 대서양을 건넜다. 영화는 33시간 동안의 그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완벽하게 혼자가 된 그에겐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그의 비행기에 몰래 탑승한 파리 한 마리였다. 그는 파리와 여러 가지 대화를 하며 대서양을 건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영화적인 설정일 뿐이다. 린드버그의 비행기는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창문조차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방한복을 잔뜩 껴입고 추위에 덜덜 떠는 장면까지 나온다. 그런 환경속에 어떻게 파리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린드버그와는 달리 나의 파리는 진짜다. 봐라, 이렇게 내 눈앞에서 붕붕거리고 있지 않는가. 차창 밖으로 세상은 눈으로 뒤덮인 완벽한 겨울 풍경이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는 겨울 풍경! 특이하면서 운치 있다.


“야 밖에 눈이 보이니? 파리 중에서 죽기 전에 겨울 풍경을 보는 놈이 과연 몇 마리나 될까? 너 임마 참 운 좋은 줄 알아라. 나 때문에 눈 구경도 하고 말이다. 히히!”


내 눈앞의 파리처럼 나도 이레귤러다. 태어난 나라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갑자기 다른 나라로 이사 가서 정착하는, 이른바 이민이라는 것을 하는 삶도 극히 드문 종류의 인생이다. 잘못 탄 트럭에 이끌려 겨울 속으로 끌려온 이 파리처럼, 나도 부지불식간에 삶의 흐름을 따르다 보니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을 하게 됐고,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트럭 운전을 하며 북미대륙을 누비고 있다.


그날 일을 마치고 며칠 만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히터가 잘 켜져 있는지 확인을 한 후 파리가 주변에 없는 것을 꼼꼼히 체크한 다음에 트럭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다시 한번 파리가 주변에 없는 걸 확인한 후 밖으로 나가서 재빨리 트럭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조심조심 트럭 안으로 들어왔다. 파리 녀석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밖으로 빨려 나간 것은 아니겠지, 약간의 걱정 속에서 잠 잘 준비를 했다.


다음 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날은 더욱 거칠어졌다. 수은주는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드디어 파리녀석이 기력을 되찾았는지 내 눈앞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야 이 녀석, 어제 밖에 빨려 나가서 얼어 죽었는 줄 알았다, 인마.” 또다시 주저리 주저리 되도 않는 말들을 파리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은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애완동물을 태우고 다닌다. 어떤 트럭 스탑에는 이런 애완견을 위한 Unleashed dog park 까지 있다. 우연하게 히치하이킹을 한 파리 녀석과 대화를 하다 보니 애완견을 태우고 트럭을 모는 운전사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트립을 처음 시작했던, 감자튀김을 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려 서류를 건내고 도어를 지정받을 때 같은 회사 운전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 지원했을 때 나를 테스트했던 운전사였다. 그때 그는 내 실력을 탐탁치 않아 했는데, 전화 면접을 한 사람의 요청으로 내가 전 직장을 미리 때려친 것을 알고 마지못해 합격시켜 줬었다.


“헤이~ 여기로 배달을 왔어? 흔하지 않은 일이군. 어디서부터 온 거야?”


“루이지애나”


“정말? 먼 데서도 왔네! 네가 거기서부터 올 실력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걸?”


“호,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 줄 수도 있어. 거기서부터 따라온 파리 한 마리가 내 트럭 안에 날아다니고 있거든. 한번 볼래?”


주변의 다른 운전사들과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12월에 어울리지 않은, 날아다니는 파리라는 그림이 그들을 빵 터뜨렸을 것이다.


배달을 마치고 오코톡스의 회사 야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보통 집에 가기 위해 회사 야드를 향할 땐 무척 즐거운 기분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 파리놈을 어떡하지? 집에 데려가면 제일 좋으련만 이놈이 순순히 잡혀 줄 것인가?


걱정 속에서 회사 야드에 도착했다. 빈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파리 녀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도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시동을 끈 트럭 내부는 점차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주차장에 주차된 내 차를 트럭 옆에 세웠다. 트럭 캡에서 짐들을 승용차 트렁크로 옮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캡 안을 살폈다. 주변 풍경과 캡 안의 기온은 더 이상 날아다니는 파리가 어울리지 않은 상황이 됐다. 트럭 문을 쾅 닫았다. 내 마음의 문도 쾅 닫혔다.


예열이 덜 되어 아직도 끼릭거리는 엔진소리가 요란한 오래된 내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의 중고 승용차처럼 오래된 내 가슴 속의 뭔가도 계속 끼릭거렸다.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

아직 겨울이 끝나려면 멀었는데 요즘 날이 푹하네요. 덕분에 제 신발과 바짓가랑이는 진흙투성이입니다. 트럭 안도 신발에 따라 올라온 진흙 때문에 지저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로 이외의 트럭 주차장이나 쉬퍼, 리시버의 야드가 비포장인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 5일 쉬다가 회사야드에 왔더니 눈 녹은 물로 야드가 진흙 투성이였습니다. 신발이 진흙속에 푹푹 들어가더군요. 그런 상태에서 빈 트레일러를 찾고 연결하고 브룩스의 jbs 야드로 갔습니다.


jbs 야드 또한 회사의 야드와 마찬가지로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고 푹푹 빠지는 진흙밭이 됐습니다. jbs는 드랍앤 후크업 시설입니다. 빈 트레일러를 지정된 곳에 드랍한 후 이미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다시 연결하면 되죠. 이와 상반되는 짐은 라이브로드라고 합니다. 트레일러를 도어에 대고 짐이 실릴 동안 트럭 안에서 대기하는게 라이브로드입니다.


여튼 빈 트레일러를 내리고 다시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수차례 트럭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진흙밭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신발과 바짓가랑이는 물론, 트럭 안까지 진흙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거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 해빙기에는 지저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해빙기때 특히 조심해야 될게 있습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 굉장히 부드러워집니다. 해빙기에는 되도록 포장이 되지 않은 곳, 특히 트럭이 움직인 흔적이 없는 곳엔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왜냐하면 트럭 바퀴가 진흙에 빠져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작년 해빙기 때 제 트럭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회사 주차장에 주차했던 트럭이 녹아 버린 진흙 때문에 빠져나오질 못했습니다. 회사가 토우 트럭을 불러 줘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트레일러 주차장도 보통 비포장 야드입니다. 이런 야드에는 트레일러 레그를 위치하는 콘크리트 줄이 있습니다. 짐이 실린 무거운 트레일러 다리는 반드시 이런 콘크리트 위에 놓여야 합니다. 아니면 해빙기 때는 다리가 놓인 맨바닥이 푹 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봄에 아이오와 Sioux City 회사 야드에서 다른 운전사로부터 트레일러를 이어받기로 했습니다. 제가 한숨 자는 동안 그 운전사는 제가 이어받을 트레일러를 땅바닥에 내려놨는데요, 그는 초보 드라이버였고, 트레일러를 아무 곳에나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발견한 상태입니다. 트레일러 다리가 무게로 못 견딘 땅바닥을 뚫고 들어가서 도저히 체결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또 회사는 토우 트럭을 불러 트레일러를 옮겨야 했었죠. 이것 때문에 저도 한 세 시간을 까먹었습니다.




이상 트럭 운전사가 경험하는 해빙기 지저분한 일과 고난이었습니다.


아 근데 요즘 방문자도 없고, 이거 계속 해야겠나 모르겠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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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6-class-5.html

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7.html

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8-part-1.html

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0-part-3-hos-rule.html

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1-part-4-tax-return.html

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2-part-5.html

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3.html

14) 팀 드라이빙의 세계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4.html

15) 무게를 재 보자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5.html

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6.html

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7.html

18) 로드킬과 범퍼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8.html

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