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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21) 트럭커의 살림살이

한 번 트립을 나가면 수일간 집을 떠나야 하는 OTR 트럭 드라이버에게 트럭은 곧 집이자 사무실입니다. 드라이버는 트럭에서 며칠간 일하며 먹고 잡니다. 따라서 드라이버는 꽤 많은 양의 살림살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드라이버가  먹고 마시는데 쓰는 살림살이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트럭에는 보통 배터리 전원을 AC 전원으로 바꿔 주는 인버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주로 사용하는 살림살이는 커피메이커, 냉장고 그리고 전자레인지입니다. 


먼저 커피메이커입니다. 사실 커피 메이커를 사용하는 드라이버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트럭 스탑에서 주유를 하면 보통 커피를 무료로, 혹은 아주 저렴하게 뽑아 마실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  트럭 스탑의 커피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커피 메이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트럭스탑의 커피 스탠드 입니다. 여러 종류의 드립 커피가 있고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추출해 주는 커피머신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나 팀호튼처럼 꾸준하게 동일한 맛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어떤 곳은 너무 진하고 어떤 곳은 너무 연합니다. 또 미리 뽑아 놓은 드립 커피는 무척 오래되어 불쾌한 맛을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큐리그 캡슐을 사용하는 싱글 서브 커피 머신을 이용합니다. 그간 4년 이상 커피를 사 마시다가 최근 1, 2년 전부터 커피 머신을 사용했는데요, 왜 진작에 사용하지 않았는지 후회될 정도로 좋네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맨 처음 하는게 커피 머신을 전원에 연결하고 커피를 내리는 일입니다. 부글부글 물이 끓다가 커피가 내려오기 시작하면 캡 안에 온통 커피 향기가 꽉 차죠. 그 향기를 맡으며 아침 먹을 준비를 합니다.


커피 머신을 사용하는데 있어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생수를 사용하지 마세요. 북미의 먹는 샘물은 석회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좀 지나면 스케일이 껴서 커피 추출이 잘 안 됩니다. 마트에 파는 물 중에 4L 혹은 1 갤런짜리 purified or distilled water 가 있습니다. 이런 물을 사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냉장고입니다. 성능이 아주 좋은 것은 콜맨사의 iceless cooler 입니다. 시거잭 9볼트 전원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내구성입니다. 트럭은 끊임없이 흔들거리며 진동합니다. 보통 2년 반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장납니다. 처음 이걸 살 때는 월마트에서 캐나다 달러로 100불 정도 줬습니다. 두 개가 고장 나서 버리고 세 번째 살 때는 400불이 넘었습니다. 현재 미국에 있는 트럭 스탑에서 미국 달러로 약 160불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이젠 미국에서 사는게 더 쌉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새 볼보 트럭을 새로 받았습니다. 여기엔 기본 정식 냉장고가 붙어있더군요. 얼음까지 얼리는 냉동고가 추가된 냉장고였습니다. 크고 좋더군요. 그런데 이런 트럭용 빌트인 냉장고도 자주 고장나는걸로 악명이 높습니다. 잘, 오래 버텨주길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자레인지입니다. 집 근처 월마트에서 100불도 안하는 RCA 브랜드의 것을 샀는데요, 7년 가까이 고장 없이 잘 버텨 주고 있습니다. 700W 자리입니다. 그런데 엔진이 꺼져 있거나 APU가 안 돌 때는 해동이나 데우는데 시간이 무척 걸립니다. 트럭의 배터리 상태가 메롱이라면 전자레인지를 쓰자마자 배터리 충전을 위해 apu가 가동을 시작합니다. 사용 빈도가 엄청 많은 가전입니다. 햇반도 데우고, 찌개도 데우고, 피자도 데피고, 컵라면도 이걸로 조리합니다.


이상 트럭 드라이버들이 주로 사용하는 살림살이 중에서 먹고 마시는데 쓰는 가전제품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참 궁상이네요. 흐~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6-class-5.html

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7.html

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8-part-1.html

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0-part-3-hos-rule.html

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1-part-4-tax-return.html

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2-part-5.html

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3.html

14) 팀 드라이빙의 세계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4.html

15) 무게를 재 보자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5.html

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6.html

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7.html

18) 로드킬과 범퍼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8.html

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3/19.html

20) 고기 검사와 코로나가 앗아간 것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3/20.html

21) 트럭커의 살림살이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20) 고기 검사와 코로나가 앗아간 것

제가 싣고 다니는 짐의 반수 정도가 고기입니다. 주로 캐나다의 비프 beef 를 싣고 미국으로 가서 미국산 포크 pork 를 싣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일이 많습니다. 캐나다 비프는 브룩스의 jbs 혹은 하이리버의 카길에서 싣습니다. 간혹 레드디어의 올리멜에서 돼지 껍데기를 싣고 미국에 있는 젤라틴 공장으로 가기도 합니다.


한번은 사스카추완의 무스조에서 돼지고기를 싣고 멕시코 국경 근처의 텍사스 라레도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이런 짐은 본디드 로드 bonded load 라고 해서 미국은 땅만 빌려 줍니다. 국경도시에 도착해서 제 짐이 바로 멕시코에서 온 트럭에 실리죠. 비슷하게 멕시코에서 열대 과일을 가득 싣고 와서 제 트럭에 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도 본디드 로드입니다. 캐나다 들어가기 전에 미국 국경 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VOID 마크를 받아야만 합니다.


소고기를 싣고 미국에 가면 다양한 장소에 갑니다. 보통은 냉장 창고로 가죠. 간혹 패키징 회사에 갈 때도 있습니다. 거기선 대량으로 받은 비프를 소포장하여 슈퍼마켓에 납품하죠. 소시지 공장에 갈 때도 있습니다. 또 북미에 살고 계신 분이라면 익숙하실 잭 링크스 Jack Link's 육포 공장에 가기도 합니다. 카길 Cargill 에서 받은 소고기는 이상하게도 미국에 있는 카길 공장으로 주로 갑니다. 시퍼 Shipper 가 카길 캐나다고 리시버 Receiver 가 또 카길 US 죠.



미국은 사방에 도축장이 있습니다. 회사도 다양하죠. Cargill, Tyson food, Smithfield, Farmland 등등이 이런 회사입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1년 내내 쉴 새 없이 24시간 돌아가죠.


고기짐이 좋은 점은 보통 드랍 엔드 후크업 Drop And Hookup 시설이라는 점입니다. 트럭스탑에서 대기하다가 앱으로 트레일러 위치를 확인하거나 전화를 걸어서 짐이 준비된 걸 확인한 후 빈 트레일러를 내리고 이미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달고 출발하면 됩니다.


이외에도 고기를 사용한 가공품, 소시지나 햄 혹은 피자 토핑 등, 을 싣고서 캐나다로 향합니다.



고기짐이 안 좋은건 인스펙션을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캐나다에선 랜덤하게 검사를 받습니다. 짐이 국경을 넘는 순간 인스펙션을 할지 말지 결정됩니다. 국경을 넘은 후 정부 사이트에서 나의 짐이 인스펙션 대상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스펙션이면 해당 시설로 가서 몇 시간 대기한 후 검사를 마치고 서류를 받은 다음에 Loblaws, Costco, Walmart 등의 웨어하우스로 가서 짐을 배달합니다. 짐을 받는 장소에서는 맨 처음 하는게 인스펙션 유무입니다. 짐이 인스펙션 대상인데 스킵하고 그냥 왔다면 짐 받는 걸 거부합니다. 따라서 인스펙션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미국에선 모든 캐나다의 고기를 검사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닌게 여러 해 전에 알버트에서 광우병 소동이 있었거든요. 알버타/몬타나 기준 미국의 검사 시설은 국경을 넘자마자 있습니다. 두 개의 시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I47, 또 하나는 I264 라고 불립니다. 고기짐을 가지고 국경을 넘으면 둘 중에 한 군데 반드시 들려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과정을 스킵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합니다.


검사 시간은 상황에 따라 틀립니다. 엄청나게 바빠서 수십대의 트럭이 한꺼번에 몰리면 하루 온종일 걸릴 때도 있습니다. 한가할 때는 15분도 안 걸립니다. 가끔 랜덤으로 이콜라이 E. coli 세균 검사에 당첨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또 한 반나절 정도 까먹게 되죠. 저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이콜라이 검사를 받아 봤습니다.


예전에는 서류를 가지고 사무실에 가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운전사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차례가 되면 검사 직원이 몇 번 도어에 트레일러를 대라는 지시를 합니다. 그러면 다시 트럭으로 가서 지정된 도어에 댄 후 다시 사무실로 가서 또 수다를 떱니다. 검사를 마치면 직원이 서류를 직접 건네주죠. 그럼 인사를 하고 다른 운전사들에게 빠이빠이를 하고 목적지로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미트 인스펙션 시설은 일종의 사랑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이 사랑방은 사라졌습니다. 서류 봉투에 전화번호를 적고 서류를 건넨 후 자기 트럭에 앉아 있어야 하죠. 직원이 전화를 걸어 할당된 도어를 알려 줍니다. 그러면 지정된 도어에 댄 후 다시 전화를 기다릴 뿐입니다. 끝났다는 전화가 오면 다시 사무실로 가서 서류를 건네 받고 출발합니다. 검사 시설은 예전의 드라이버 라운지를 사무실로 확장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운전사들이 모여 복작복작하며 이야기 꽃을 나누는 장소가 없어져 버렸죠. 코로나 팬데믹이 할퀸 상처는 아직 이런 시설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의 옛날이 그립군요. 아 옛날이여~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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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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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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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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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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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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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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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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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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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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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1-part-4-tax-return.html

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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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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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팀 드라이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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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게를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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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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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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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로드킬과 범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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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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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기 검사와 코로나가 앗아간 것


히치하이커

12월 중순, 영하 20도를 근접하는 날씨에 알버타 테이버에서 버거킹용 프렌치 프라이를 가득 실었다. 꼬박 4박 5일을 달려 조지아주의 소도시에 도착해 짐을 내렸을 땐 한 여름 날씨로 탈바꿈되었다. 나도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얇은 바지에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다.


다음 짐은 루이지에나 소도시에서 A&W에 납품할 고구마 프라이를 실어야 한다. 이번 트립에서 나의 역할은 탄수화물 전달자다. 추운 곳의 감자를 튀겨 남쪽에 갖다 주고 따뜻한 곳의 고구마를 튀긴 걸 다시 북쪽으로 가져다 준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짐을 가져다 주는게 정확히 5일 전에 내가 감자튀김을 실었던 곳이라는 것이다.


조지아 주에서 알라바마와 미시시피를 거쳐 꼬박 하루를 달려 루이지에나의 델리라는 소도시 쉬퍼에 도착했다.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 짐을 실었다. 짐을 싣고 나니 밤이 어두워져 쉬퍼 야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옷을 입고 화장실에 갔다가 트럭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반갑지 않은 손님이 보였다. 파리 한 마리가 윙윙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짜증이 솟구쳤다. 파리가 캡 안에서 날아다니면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운전할 때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신경 쓰이게 만든다. 쓰고 있던 모자로 때려 잡으려 해도 날렵한 파리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놈을 잡는 거에 신경 쓰다가 사고를 낼 뻔한 적도 있다. 예전에 네브라스카 주의 스카일러에 있을 땐 한꺼번에 세 마리의 파리가 캡 안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 고생한 적도 있다.


비에 젖은 비웃을 단도리 한 후 파리를 때려잡기 위해 모자를 손에 들고 캡 안 중간에 가만히 서서 놈을 수색했다. 녀석은 나의 살기를 느꼈는지 어딘가에 숨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놈을 잡아 죽이는 걸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쳤다. 처음 출발했던 곳, 테이버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비가 그친 뒤 상쾌한 기분으로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잠시 후 날이 밝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제 그 파리놈이 내 눈앞을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 씨~”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욕이 나왔다. 왜 이렇게 파리는 뒷자석에서 날아다니지 않고 내 눈앞에서 붕붕거리는 걸까?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파리들이 이렇게 운전사를 짜증 나게 한다.


놈을 무시하며 달리는데, 자신이 무시당하는게 화가 나는지 놈이 대담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내 손등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다른 손으로 놈이 앉아 있던 내 왼손바닥을 내려쳤다. 트럭이 크게 흔들렸고 놈은 나를 비웃듯이 날아가 버렸다.


한참 후에 그 녀석은 GPS 화면 위에 앉아 돌아다녔다. 그리곤 가만히 멈춰 두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살그머니 모자를 벗고 녀석을 노려봤다. 그 녀석의 허점을 노려 모자로 gps를 내려쳤다. GPS 흡착판이 떨어졌고 트럭이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녀석은 나의 되도 않는 시도를 비웃는 듯이 다시 내 눈 주위를 몇 번 빙빙 돈 후 운전석 옆 차창에 자리를 잡았다. 놈을 놀래키지 않으려 조심하며 가만히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보통 이렇게 하면 파리들은 바람에 빨려 밖으로 쫓겨나곤 한다. 그런데 이놈은 그 경우가 아니었다. 창문이 열리기 시작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올라 뒷편 침대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성가시기 짝이 없는 놈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릴 땐 파리가 참 많았었는데 요즘은 그래도 보기가 힘들어진 셈이기는 하다. 특히 캐나다로 이사 와서는 집에서 파리를 접한 기억이 별로 없다. 여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나 가끔 파리를 본다. 근데 지금은 12월 말이다.


여튼, 어릴 때 파리와 관련된 기억이 참 많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디나 파리가 있었다. 대부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어서 파리를 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많았다. 독극물을 밥에 섞어서 접시에 놓아 두면 파리가 먹고 죽었다. 그 접시 주변으로 파리 시체가 즐비했다. 천장에 끈끈이를 쭉 매달아 놓기도 했다. 파리들이 끈끈이에 붙어 잔뜩 죽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파리채가 있었는데 그걸로 파리를 잡으며 노는게 나의 일상이기도 했다.


파리를 이렇게 잡아 대는 건, 이놈이 음식물에 앉으면 알을 까고, 곧 그 음식은 구더기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상에 올려져 있던 고등어구이에서 뭔가 꿈틀대 자세히 보니 한쪽이 완전히 구더기로 뒤덮여 있는 것도 봤다. 김치와 풀떼기 뿐인 밥상 위에서 유일한 단백질원이었던 고등어구이를 그렇게 못먹게 돼서 무척 화가 났었다.


파리에 대한 두서없는 잡상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이녀석이 또 내 눈앞에서 붕붕거린다. “너 인마 조심해! 나 어릴 때 너 많이 죽였어.” 놈에게 경고했다.


어릴 때 곧잘 파리를 가지고 놀았다. 비닐봉지로 파리를 생포하면 날개를 떼고 다리를 뽑으며 고문했다. 생포한 파리를 모기향 연기에 갖다 대고 죽는지 어떤지 실험하기도 했다. 결국 모기향 연기는 파리를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서서히 모기향 불꽃에 놈을 갖다 대고 불고문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파리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예전처럼 음식물을 바깥에 방치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놈이 나의 안전에 해가 될 확률은 0%에 근접한다.


어릴 때, 파리 흔적은 어디에나 있었다. 화장실에 가면 구더기들이 드글거렸다. 그놈들은 짧은 번데기 과정을 거쳐 파리로 변신할 거였다. 파리들은 음식을 먹은 후 벽에 붙어 다시 게워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빨아 먹는다. 파리가 그 짓을 한 후에는 검은 반점이 남는다. 집안 벽지와 천장과 형광등에 파리가 남긴 검은 반점들이 그득했다.


다음 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북쪽으로 올라가며 날이 선선해져서 살 만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파리놈이 다시 나타났다. “야 인마, 너 빨리 나가야 돼. 위로 올라가면 추워서 너 못 살아.” 놈에게 경고했다.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이놈은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나와 같이 여행하게 된 걸까? 이놈은 언제 태어났을까? 얘는 어디서 구더기 시절을 보냈을까? 번데기에서 파리로 우화했을 때, 놈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놈과 여러 가지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우리끼리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게 참으로 안타까워졌다.


“너는 알에서 깨어난 순간을 기억하니? 네가 알에서 나왔을 땐 조그만 귀여운 구더기였겠구나! 번데기에서 파리로 변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니?”


놈에게 두서없이 질문했다. 대답을 절대 들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시작한 대화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너랑 비슷한 경험이 있어. 몇 년 전에 갑자기 캐나다로 이사 왔어.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을 뒤로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게 된 거지. 완전히 인생이 리셋된 거야. 그러니 네가 갑자기 번데기에서 파리가 됐을 때 기분이 이해될 것도 같다.”


녀석은 내 앞에서 도발을 해도 내가 반응하지 않고 이상한 말들을 해대자 실망했는지 멀찍이 앉아 두 다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놈은 한국에서 보던 파리보단 약간 작은 몸집을 하고 있었다. 대시보드에서 이리로 걷다가, 저리로 걷다가, 가만히 앉아 두 다리를 비비다가, 그 팔로 다시 자기 머리를 쓸어내리기도 했다. 며칠 밥을 못 먹었는지 놈의 배가 홀쭉했다.


갑자기 내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됐다. 파리에게 말을 걸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그냥 앞만 보며 운전에만 집중했다. 이상하게 눈동자 안에서 비가 오는 듯 윈드 쉴드 너머 풍경이 흐릿해졌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아내가 싸준 된장찌개를 해동해서 먹었다. 뒷정리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된장찌개에 버무려진 밥알 몇 개를, 마치 못 보고 실수로 빠뜨린 것처럼, 테이블 위에 남겨 놨다. 먹던가 말던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은 점점 추워졌다. 간간히 내리던 비는 눈으로 변한지 오래다. 히터를 틀어 놓은 덕분에 캡 안은 훈훈했다. 덕분에 파리놈은 내 앞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 “한계점은 넘었다, 인마. 넌 지금 나가면 10분 안에 얼어 죽을거다. 꼴 좋다.” 알아들을 리 없는 말을 놈에게 쏘아 줬다.


갑자기 어릴 때 tv에서 본 찰스 린드버그에 대한 흑백 영화가 생각났다. 그는 최초로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무착륙 단독 비행을 성공시킨 사람이다. 33시간 동안 그는 단 한숨도 못 자며 대서양을 건넜다. 영화는 33시간 동안의 그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완벽하게 혼자가 된 그에겐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그의 비행기에 몰래 탑승한 파리 한 마리였다. 그는 파리와 여러 가지 대화를 하며 대서양을 건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영화적인 설정일 뿐이다. 린드버그의 비행기는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창문조차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방한복을 잔뜩 껴입고 추위에 덜덜 떠는 장면까지 나온다. 그런 환경속에 어떻게 파리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린드버그와는 달리 나의 파리는 진짜다. 봐라, 이렇게 내 눈앞에서 붕붕거리고 있지 않는가. 차창 밖으로 세상은 눈으로 뒤덮인 완벽한 겨울 풍경이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는 겨울 풍경! 특이하면서 운치 있다.


“야 밖에 눈이 보이니? 파리 중에서 죽기 전에 겨울 풍경을 보는 놈이 과연 몇 마리나 될까? 너 임마 참 운 좋은 줄 알아라. 나 때문에 눈 구경도 하고 말이다. 히히!”


내 눈앞의 파리처럼 나도 이레귤러다. 태어난 나라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갑자기 다른 나라로 이사 가서 정착하는, 이른바 이민이라는 것을 하는 삶도 극히 드문 종류의 인생이다. 잘못 탄 트럭에 이끌려 겨울 속으로 끌려온 이 파리처럼, 나도 부지불식간에 삶의 흐름을 따르다 보니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을 하게 됐고,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트럭 운전을 하며 북미대륙을 누비고 있다.


그날 일을 마치고 며칠 만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히터가 잘 켜져 있는지 확인을 한 후 파리가 주변에 없는 것을 꼼꼼히 체크한 다음에 트럭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다시 한번 파리가 주변에 없는 걸 확인한 후 밖으로 나가서 재빨리 트럭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조심조심 트럭 안으로 들어왔다. 파리 녀석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밖으로 빨려 나간 것은 아니겠지, 약간의 걱정 속에서 잠 잘 준비를 했다.


다음 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날은 더욱 거칠어졌다. 수은주는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드디어 파리녀석이 기력을 되찾았는지 내 눈앞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야 이 녀석, 어제 밖에 빨려 나가서 얼어 죽었는 줄 알았다, 인마.” 또다시 주저리 주저리 되도 않는 말들을 파리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은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애완동물을 태우고 다닌다. 어떤 트럭 스탑에는 이런 애완견을 위한 Unleashed dog park 까지 있다. 우연하게 히치하이킹을 한 파리 녀석과 대화를 하다 보니 애완견을 태우고 트럭을 모는 운전사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트립을 처음 시작했던, 감자튀김을 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려 서류를 건내고 도어를 지정받을 때 같은 회사 운전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 지원했을 때 나를 테스트했던 운전사였다. 그때 그는 내 실력을 탐탁치 않아 했는데, 전화 면접을 한 사람의 요청으로 내가 전 직장을 미리 때려친 것을 알고 마지못해 합격시켜 줬었다.


“헤이~ 여기로 배달을 왔어? 흔하지 않은 일이군. 어디서부터 온 거야?”


“루이지애나”


“정말? 먼 데서도 왔네! 네가 거기서부터 올 실력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걸?”


“호,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 줄 수도 있어. 거기서부터 따라온 파리 한 마리가 내 트럭 안에 날아다니고 있거든. 한번 볼래?”


주변의 다른 운전사들과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12월에 어울리지 않은, 날아다니는 파리라는 그림이 그들을 빵 터뜨렸을 것이다.


배달을 마치고 오코톡스의 회사 야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보통 집에 가기 위해 회사 야드를 향할 땐 무척 즐거운 기분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 파리놈을 어떡하지? 집에 데려가면 제일 좋으련만 이놈이 순순히 잡혀 줄 것인가?


걱정 속에서 회사 야드에 도착했다. 빈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파리 녀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도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시동을 끈 트럭 내부는 점차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주차장에 주차된 내 차를 트럭 옆에 세웠다. 트럭 캡에서 짐들을 승용차 트렁크로 옮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캡 안을 살폈다. 주변 풍경과 캡 안의 기온은 더 이상 날아다니는 파리가 어울리지 않은 상황이 됐다. 트럭 문을 쾅 닫았다. 내 마음의 문도 쾅 닫혔다.


예열이 덜 되어 아직도 끼릭거리는 엔진소리가 요란한 오래된 내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의 중고 승용차처럼 오래된 내 가슴 속의 뭔가도 계속 끼릭거렸다.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

아직 겨울이 끝나려면 멀었는데 요즘 날이 푹하네요. 덕분에 제 신발과 바짓가랑이는 진흙투성이입니다. 트럭 안도 신발에 따라 올라온 진흙 때문에 지저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로 이외의 트럭 주차장이나 쉬퍼, 리시버의 야드가 비포장인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 5일 쉬다가 회사야드에 왔더니 눈 녹은 물로 야드가 진흙 투성이였습니다. 신발이 진흙속에 푹푹 들어가더군요. 그런 상태에서 빈 트레일러를 찾고 연결하고 브룩스의 jbs 야드로 갔습니다.


jbs 야드 또한 회사의 야드와 마찬가지로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고 푹푹 빠지는 진흙밭이 됐습니다. jbs는 드랍앤 후크업 시설입니다. 빈 트레일러를 지정된 곳에 드랍한 후 이미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다시 연결하면 되죠. 이와 상반되는 짐은 라이브로드라고 합니다. 트레일러를 도어에 대고 짐이 실릴 동안 트럭 안에서 대기하는게 라이브로드입니다.


여튼 빈 트레일러를 내리고 다시 짐이 실린 트레일러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수차례 트럭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진흙밭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신발과 바짓가랑이는 물론, 트럭 안까지 진흙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거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 해빙기에는 지저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해빙기때 특히 조심해야 될게 있습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 굉장히 부드러워집니다. 해빙기에는 되도록 포장이 되지 않은 곳, 특히 트럭이 움직인 흔적이 없는 곳엔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왜냐하면 트럭 바퀴가 진흙에 빠져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작년 해빙기 때 제 트럭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회사 주차장에 주차했던 트럭이 녹아 버린 진흙 때문에 빠져나오질 못했습니다. 회사가 토우 트럭을 불러 줘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트레일러 주차장도 보통 비포장 야드입니다. 이런 야드에는 트레일러 레그를 위치하는 콘크리트 줄이 있습니다. 짐이 실린 무거운 트레일러 다리는 반드시 이런 콘크리트 위에 놓여야 합니다. 아니면 해빙기 때는 다리가 놓인 맨바닥이 푹 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봄에 아이오와 Sioux City 회사 야드에서 다른 운전사로부터 트레일러를 이어받기로 했습니다. 제가 한숨 자는 동안 그 운전사는 제가 이어받을 트레일러를 땅바닥에 내려놨는데요, 그는 초보 드라이버였고, 트레일러를 아무 곳에나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발견한 상태입니다. 트레일러 다리가 무게로 못 견딘 땅바닥을 뚫고 들어가서 도저히 체결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또 회사는 토우 트럭을 불러 트레일러를 옮겨야 했었죠. 이것 때문에 저도 한 세 시간을 까먹었습니다.




이상 트럭 운전사가 경험하는 해빙기 지저분한 일과 고난이었습니다.


아 근데 요즘 방문자도 없고, 이거 계속 해야겠나 모르겠네!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6-class-5.html

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7.html

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8-part-1.html

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0-part-3-hos-rule.html

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1-part-4-tax-return.html

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2-part-5.html

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3.html

14) 팀 드라이빙의 세계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4.html

15) 무게를 재 보자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5.html

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6.html

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7.html

18) 로드킬과 범퍼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8.html

19) 봄의 불청객 - 해빙기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8) 로드킬과 범퍼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왕복 2차선 시골길을 오랫동안 달려야 될 때도 많습니다. 이때 참 많은 로드킬을 봅니다. 족제비나 스컹크 같은 작은 동물도 있고 사슴 같은 건 부지기수로 죽어 있습니다. 봄에는 귀여운 프레리독 들이 포장도로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습니다. 얘들이 죽은 흔적이 참 많죠.


저도 일광욕을 하고 있던 프레리독을 한번 깔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으악하며 뒤를 보니 뒤쪽으로 붉은 점이, 점점 색이 옅어 지면서, 점점이 찍혀 있더군요. 마치 바퀴에 붉은 잉크를 묻힌 후 도로 위를 굴러가듯이요. 참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밤에 다니다 보면 참 많은 동물들을 봅니다. 사슴은 물론 안텔로프도 많고요, 집채만한 엘크가 길가에서 풀을 뜯고 있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그만 짐승이 길가를 휙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날이 따뜻할 땐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윈드실드에 부딪칩니다. 뭔가 투명한 것이 퍽퍽 터질 때 보면 주변에 양봉하는 벌집이 쌓여있는 걸 볼 수 있죠. 역시 기분이 안 좋습니다. 특히 어두워지면 나방이나 하루살이 같은 것이 자꾸 부딪쳐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가 됩니다. 워셔액을 뿌려도 단백질 성분이 윈드실드를 덮어서 시야에 방해가 되죠.


이렇게 되면 트럭 스탑에 들러 닦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고 항상 트럭 스탑이 있는 것도 아니죠. 저는 다목적 세정제를 가지고 다닙니다. 쉴 때 윈드쉴드 바깥에 세정제를 뿌리고 한참 후에 워셔액을 뿌리면 말끔히 씻겨 내려갑니다.


가끔 새들도 차에 부딪칩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역시 쓸데없는 살생을 한 기분이 들어 언짢습니다. 예전에 길가에 쉬고 있던 캐나디안 구스가, 제가 접근하자 날아오르다가 그 중 한 마리가 제 오른쪽 후드위 보조미러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그 큰 새는 길가로 나가 떨어졌고요, 제 미러도 충격에 떨어져 사라져 버렸습니다. 세미 트럭의 오른쪽 조수석 쪽은 완벽하게 사각지대입니다. 오른쪽으로 추월하는게 금지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른쪽 후드 보조 미러는 어느 정도의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없어져서 저는 한동안 우측 차선 변경을 할 때 신경이 바짝 곤두서고는 했습니다.


사슴이나 작은 동물의 시체는 까마귀나 레이븐 - 큰까마귀 - 의 먹이입니다. 보통 죽은 놈들 위에 걔들이 몇 마리 앉아 있곤 하죠. 까마귀 놈들은 머리가 좋은지 길 위에서 죽은 동물을 먹으면서도 차가 접근하면 충돌 직전에 곧잘 피하고는 합니다. 얘들이랑은 한 번도 충돌한 경험이 없네요.


일본말로 바보를 바카라고 하는데요, 말 마자와 사슴 록자를 씁니다. 한국말로 읽으면 마록이고 일본 발음으로는 바카가 되죠. 말이 왜 바보인지 모르겠는데 사슴이 바보인 건 확실합니다. 그간 저도 네 번 사슴을 쳤습니다. 이놈들 제가 접근하는 걸 보고 반대편 차선으로 피하다가 제가 막 지나치려는 순간 홱 방향을 바꿔 제 앞으로 돌진하기 일쑵니다. 마치 일부러 자살하려는 거 같다니깐요.


세 번은 제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서 잠깐 퉁 치는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밤에 상대편 차가 하이빔을 쏴서 제 앞의 사슴을 미처 발견 못 하고 전속력으로 들이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Kenworth T680 모델 트럭을 몰았는데요, 얘 그릴이 망사로 되어 있습니다. 디어 범퍼를 뚫고서 사슴 머리가 그릴에 부딪혀 가지고 움푹 파여 버렸습니다. 그래도 뭐 운전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서 오랫동안 그 트럭을 몰았습니다만, 망사그릴이 움푹 들어간 걸 볼 때마다 슬퍼졌죠.


온타리오에는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형에는 무스가 살죠. 한국어로는 말코 손바닥 사슴이라고 하는데요, 얘가 어마 무시하게 큽니다. 아무리 세미 트럭이라고 해도 무스와 부딪치면 트럭의 안전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쪽 지역을 자주 오가는 세미 트럭은 무스 범퍼를 장착합니다. 그리고 제 트럭에는 디어 범퍼가 장착되어 있죠.


만약 운전하시는 트럭에 이러한 범퍼가 없다면, 왕복 2차선 시골길을 달리실 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디어 범퍼가 없는 상태로 사슴 한 마리를 빠른 속도로 쳤을 때 그릴이 깨지고 냉각수가 터져 나와 운행 불능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올해는 사슴, 새 혹은 그밖에 작은 동물들을 죽이지 않고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날벌레들은 도저히 어쩔 방도가 없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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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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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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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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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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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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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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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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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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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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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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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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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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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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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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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게를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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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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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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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로드킬과 범퍼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북미 서부와 동부에는 산이 참 많죠. 따라서 트럭을 운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산을 많이 넘어야 합니다. 특히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알버타를 거쳐 뉴멕시코까지 뻗어 있는 로키산맥과, 동쪽에서 캘리포니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악명 높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밴쿠버에서 캘거리로 가는 로키산맥 여정, 중부에서 시애틀로 넘어가는 Snoqualmie pass, 네바다 르노에서 새크라멘토로 가는 Donner pass 가 지랄 맞은 곳이죠. 아, 물론 겨울에 말입니다. 겨울을 제외하면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없이 오르막길을 거북이 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엔진에 무리가 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르막길 갓길에 문제가 생긴 트럭들이 후드를 열고 서 있는 걸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엔진은 끊임없이 굉음을 내며, 과열된 엔진을 식히기 위한 팬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내리막길 전에는 강제적으로 몇 분간 정차해서 브레이크 체크를 해야만 합니다. 내리막이라고 일반 승용차처럼 신나게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제이크 브레이크를 걸고 또다시 굉음을 내며 천천히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가야 하죠. 가끔 초보 드라이버가 과도한 풋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트레일러 액슬에서 연기가 풀풀 풍기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설치된 runaway ramp 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신경이 바짝 곤두섭니다.


시련은 겨울에 찾아옵니다. 폭설이 내리면 이런 길들은 곧잘 폐쇄되곤 합니다. Donner pass 는 아예 ‘트럭만 통과 금지’ 표시가 뜰 때도 있지요. 길이 다시 뚫릴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죠.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돈을 벌 수 있는 트럭커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입니다.


눈이 내리는 산길을 오르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곧잘 트럭에게 체인 설치 명령이 떨어집니다. 갓길에 트럭을 세우고 낑낑대며 체인을 설치해야 하죠. 체인 설치는 힘들고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Donner pass 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지정한 체인 설치 대행업자들도 많습니다. 제가 이틀 전에 체인을 하고 그 길을 넘었습니다. 겨우 4마일의 거리를 한시간 동안 기어갔습니다. 체인을 설치했던 후유증으로 근육통을 얻었는데 아직도 이곳저곳이 아프네요.


밴쿠버는 레인쿠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울에 거의 매일 비가 오기 때문이죠. 태평양 상공의 덥고 습한 공기가 로키 산맥을 만나면서 위로 올라가다가 냉각 응결되어 비가 내립니다. 그런데 이게 산 위에서는 눈으로 변한다는게 문제입니다.


몇 년 전에 BC 주의 호프라는 소도시에서 네슬레 브랜드의 생수를 가득 실었습니다. 취수장에서 바로 실은 것이죠. 배달지는 캘거리 근처의 월마트 웨어하우스였습니다. 캐나다 짐이기에 미국 짐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로키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급경사를 오르다 보면 체인 설치가 필요한지 아닌지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저는 체인 설치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점점 진눈깨비를 거쳐 폭설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길이 점점 미끄러워지면서 무거운 짐 때문에 운행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길에는 저와 같은 신세의 트럭이 여러대 있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최대한 갓길에 붙여 체인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경사이고 캐나다 표준에 맞춘 무거운 짐 때문에 체인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헛바퀴를 돌다가 결국은 체인이 끊어졌는지 어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도로 일부를 막으며 운행 불능이 되었습니다.


토우트럭을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봤습니다. 그런데 통화 불능 지역이었습니다. 회사에 나 대신 토우트럭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응답이 늦었습니다. 취수장에서 여러 대의 같은 회사 트럭을 봤는데 아마도 그들도 곤경에 처해 있어서 야간 디스패치가 무척 바쁜 모양인가 봅니다. 전화도 먹통이요 회사는 응답이 없는 와중에 저는 고속도로 일부를 가로막고 있는 상태네요. 와, 환장스러워라.


결국 경찰차가 저한테 접근해서 상황을 보고는 저 대신 토우트럭을 호출했습니다. 만약 제가 체인 설치 경고판을 무시하고 올라왔다면 딱지를 받았을 겁니다. 여튼 경찰이 불러 준 토우트럭에 매달려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서 토우트럭 기사는 제 사인만 받고 또 다른 트럭을 구조하기 위해 내려갔습니다. 아마 비용은 회사에 청구하겠지요.


여튼 겨울에 눈 내리는 상황에서 산맥을 넘는다는 건 이런 과정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상용 트럭의 무인 자율 운전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갑니다.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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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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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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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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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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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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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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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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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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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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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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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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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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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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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게를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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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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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몇 주 전에 미국 중북부에 혹한이 몰아닥쳤죠. 영하 40도에 근접하는 강추위로 테슬라 등 전기 자동차들이 방전되어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세미트럭도 이와 유사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디젤 연료는 혹한의 날씨에 겔화 됩니다. 물처럼 출렁출렁해야 할 연료가 꿀처럼 꿀렁꿀렁 해지죠. 그래서 연료 계통에 잘 흐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시동이 꺼지고 운행 불능이 되죠. 회사에서 보내 준 메일에 의하면 지난번 혹한으로 백여대의 트럭과 리퍼 트레일러가 연료의 겔링으로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는 무사히 잘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인도인 청년과 팀 드라이빙 할 때 저희도 트럭이 극한의 날씨에 얼어붙어 토우 트럭으로 샵까지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수리는 별게 없습니다. 그냥 전기 히터를 사용하여 트럭 밑으로 계속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더군요. 몇 시간 후 연료 계통에 있던 끈적끈적해진 연료가 다시 흐르게 되어 저절로 수리가 됩니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 지침이 있습니다.


첫째, 윈터 프론트를 사용할 것.


트럭 그릴 앞부분에 천대기 같은 걸 붙여서 차가운 바람의 유입을 어느 정도 막아 주는 것입니다. 회사의 매뉴얼은 화씨 30도(섭씨 -1.11) 에서 장착하고 36도에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아주 귀찮아 죽겠습니다. 예전에 인터내셔널 트럭을 운전했을 땐 필요 없었던 작업입니다. 인터내셔널 트럭은 온도에 따라 공기 유입량을 조절하는 뭔가 장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 적절한 연료를 주유할 것.


디젤 연료는 현지의 사정에 맞게 첨가제가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추운 지역의 주유소는 좀 더 추위에 강한 연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짐을 남쪽에서 받아서 북쪽으로 올라간다면 최대한 북쪽까지 올라가서 주유를 하는게 회사의 방침입니다. 남쪽의 연료를 북쪽으로 가져가면 추운 날씨에 100% 끈적끈적 해지거든요.


추운 지역에 있는 오래된 트럭 스탑에는 간혹 #1 디젤 연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한시에는 되도록 #1 디젤 연료를 주유하도록 지시받습니다. 약간 효율은 떨어지지만 일반적인 디젤 연료에 비해 추위에 훨씬 강합니다.


만약 캐나다 지역을 운행한다면 Petro-Pass 라는 캐나다 회사의 주유소를 이용해야 합니다. 추운 나라답게 아주 추위에 강력한 디젤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첨가제를 사용할 것.


연료가 끈적해지는 걸 방지하는 여러 가지 제품이 있습니다. 트럭스탑에서 잔뜩 쌓아 놓고 팔고 있지요. 추운 날씨엔 주유할 때마다 연료 탱크에 이걸 넣어 줍니다. 냄새도 독할 뿐더러 아주 귀찮아 죽겠습니다. 화씨 30도일 때부터 사용하는게 정석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화씨 20도 정도 때부터 써도 됩니다.


넷째, 시동을 끄지 말 것.


화씨 14도(섭씨 -10) 이하에서는 트럭 시동을 끄면 안 됩니다. 혹한이 지속되면 24시간 계속 엔진이 돌아야 합니다. 잘 때도 엔진을 켜 놓고 잡니다. 리퍼는 Continuous mode 로 전환합니다.


다섯째, 연료통을 반 이상 비우지 말 것.


다른 말로, 자주 주유하라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추운 날씨에선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연료통의 연료가 소모될수록 외부 공기가 연료통에 유입됩니다. 공기에는 수분이 있습니다. 연료통이 햇빛을 받으면 내부 공기가 따뜻합니다. 외부 연료통은 무척 차갑습니다. 기름통 내부에 이슬이 맺히게 됩니다. 이런 수분은 연료통 바닥에 가라앉습니다. 여름엔 연료 필터가 수분을 걸러 주므로 문제가 없습니다만, 겨울엔 이 수분들이 사방에서 얼어붙어 버립니다. 결국 연료 계통이 얼음으로 막히고 트럭은 도로 중간에서 시동이 꺼져 버립니다.


하여간 겨울은 트럭커에게 시련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추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눈보라와 빙판길이죠. 트럭커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고는 눈 폭풍 속의 미끄러운 길 위에서 일어납니다.


트럭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도대체 앞으로 무인 자동 트럭 운전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네요.


어서 빨리 이 겨울이 지나가길…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6-class-5.html

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7.html

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8-part-1.html

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0-part-3-hos-rule.html

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1-part-4-tax-return.html

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2-part-5.html

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2/14.html

15) 무게를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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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5) 무게를 재 보자


트럭커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게 있는데, 여기저기에 트럭을 위한 저울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무게로 정산을 하는 데가 많습니다. 도살장에서 돼지나 소를 실은 트럭이 오면 먼저 무게를 잽니다. 그리고 라이브스탁을 내린 후 다시 빈 트럭과 트레일러의 무게를 잽니다. 그 무게의 차이로 정산됩니다.


그레인 엘리베이터에도 반드시 저울이 있습니다. 곡물을 싣고 온 트레일러는 무게를 잰 후 그레인을 비우고 다시 빈 트레일러의 무게를 잽니다. 곡물을 실으러 온 트럭도 먼저 빈차의 무게를 잰 후 그레인을 가득 실은 다음 또 무게를 측정합니다. 늘어나거나 줄어든 무게가 총 곡물의 양이 되죠. 그 무게에 따라서 정산됩니다.


또한 미국의 도로교통법상 세미트럭의 총 무게 제한이 있습니다. 총 8만 파운드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총 무게가 그렇고, 또 액슬 당 무게 제한도 있습니다.



위 그림과 같이 세미 트럭은 세 개의 액슬이 있습니다. 먼저 스티어링 액슬은 12,000 파운드까지입니다. 그리고 드라이브 액슬과 트레일러 액슬은 각각 34,000 파운드까지 허용됩니다. 북미의 도로 곳곳엔 이런 무게에 대한 위반 사항을 적발하기 위해 웨이 스테이션이 산재합니다. 따라서 과적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트럭커는 짐을 실은 후 트럭스탑 등에서 자신의 전체 무게를 확인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전체 무게가 8만 파운드 미만이지만 드라이브 액슬이나 트레일러 액슬이 34,000 파운드를 초과하면 어떻게 할까요? 보통 트레일러 액슬 위치를 조정하여 균형을 맞춥니다.


트레일러 액슬은 앞뒤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 액슬이 무겁다면 트레일러 액슬을 앞으로 보냅니다. 거꾸로 트레일러 액슬이 무겁다면 뒤로 보냅니다. 트레일러 액슬 핀을 고정하는 구멍이 여러 개 있는데요, 이 핀을 조정하면 구멍 하나당 400 ~ 500 파운드를 원하는 액슬에 보내거나 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레일러 액슬을 한없이 뒤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주마다 길이 제한이 있습니다. 가장 제한이 많은 주는 산악 지형이 많고 급커브가 많은 캘리포니아입니다. 트레일러 액슬을 캘리포니아에 맞추면 북미 전역을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마다 트레일러 액슬 간격이 법으로 정해진 데는 사정이 있습니다. 만약에 트레일러 액슬이 트레일러 맨 끝에 위치한다면 트럭커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와이드 턴을 해야만 합니다(6편 참조). 트레일러 액슬이 맨 끝에 위치한 상태에서 아예 턴이 불가능한 도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 주의 트레일러 액슬 위치는 그 주의 도로 사정에 맞춰서 정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트레일러 액슬이 한참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항상 테일 스윙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그래서 짐을 실은 후 트럭커가 처음 하는 일은 자신의 무게를 재고 트레일러 텐덤 위치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아마 자기 체중보다 더 자주 자신의 트럭과 트레일러의 무게를 측정하게 될 것입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코스트코에 납품할 커클랜드 마가리타를 싣기 위해 왔습니다. 북미 중북부 지역은 영하 40도에 근접하는 강추위였는데 이곳은 에어컨을 틀어야 될 정도로 후덥지근했습니다. 쉬핑 오피스의 여자분께서 제 트레일러가 뭔지 물어봐서 리퍼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짐이 리퍼에 싣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왜 리퍼를 가져왔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왜 리퍼가 필요한지 압니다. 옛날에, 소주가 21-23도인 시절에, 태백산에 혼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 속에 정상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잤습니다. 텐트 안에서 가져온 팩 소주를 따르니 소주가 얼어붙어 슬러시가 되어 잔을 채우더군요. 마가리타는 리퍼로 보온을 해 주며 캐나다까지 가야 합니다.


짐을 실제로 실어 주는 포크 리프트 운전사까지 와서 고민을 하더군요. 총 27개의 스키드인데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저와 함께 고민했습니다. 일단 실어 보기로 했습니다.


짐을 실은 후 근처 트럭스탑에서 무게를 쟀습니다. 딱 캘리포니아 법에 맞춘 상태에서 트레일러 액슬이 약 650 파운드 정도가 초과됐습니다. 다시 쉬퍼로 가서 짐을 내리느냐, 아니면 모험을 해야 되느냐 선택의 기로였습니다.


트럭커를 위한 앱을 켜고 네바다 주까지 상황을 봤습니다. 네바다 주 경계까지 약 250마일이고 그 중에 웨이스테이션은 딱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상태가 Closed 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단 핀을 하나 뒤쪽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저는 캘리포니아 핀 규정을 하나 어겼고, 트레일러 액슬은 규정보다 100 ~ 200 파운드 무거운 상태입니다. 점점 어둠이 깔리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웨이 스테이션이 가까워져 옵니다. 웨이 스테이션 직전 도로 바닥에는 Weigh in motion 센서가 있습니다. 센서가 좀 무거운 트럭을 발견하면 웨이 스테이션으로 들어오도록 신호를 합니다. 그리고 정밀하게 무게를 재죠. 저에게 웨이 스테이션에 들어오라는 신호가 왔습니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웨이 스테이션 앞 전광판이 Closed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웨이 스테이션이 다른 트럭들로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전에 표시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행운입니다.


몇 시간 후 저는 캘리포니아 주 경계를 넘어 네바다로 들어섰습니다. 마음 놓고 다시 홀 하나를 뒤로 옮겼습니다. 저는 이제 액슬 포지션과 무게 모두 합법인 상태가 됐습니다.


휴, 진땀 뺐습니다.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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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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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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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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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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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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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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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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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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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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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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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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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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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게를 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