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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요리 : 고르곤졸라 피자 집에서 만들어 먹기


피자라는 음식을 처음 들어본 건 꼬꼬마 시절 미국의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의 한글판을 통해서였다. 문고판의 이 얇은 잡지는 이발소라든가 은행 등에 비치되어 있었다. 이 잡지에서 피자 혹은 핏짜라는 새로운 음식을 바로 미국인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대충 미국 동부에 사는 이탈리아계에서 만든 이 음식이 젊은이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 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달처럼 동그란 밀가루 반죽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 화덕에서 구워 마치 달 뒷면처럼 울퉁불퉁하고 어쩌고저쩌고 묘사했다. 기사에 나온 토마토 소스, 치즈, 페퍼로니, 올리브 등등의 재료가 나로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었기에 그 맛이 상상조차 안되던 시절이었다. 다만 그 피자라는 어감이 신기해서 기억에 꽤 남았다.


피자라는 걸 처음 직접 경험해 본 것은 사회 초년생 때였다. 팀에서 회식을 하는데 여직원이 피자를 먹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마음 약한 팀장은 그 여직원의 청에 못이겨, 고기를 못 먹게 되어 불만으로 입이 쭉 나온, 나를 포함한 두세 명의 남자 직원을 이끌고 피자집으로 갔다.


피자집은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였다. 모두에게 앞접시와 포크와 나이프가 제공되었고 테이블 한 가운데 커다란 피자가 놓였다. 모두 한 조각씩 자기 앞접시에 피자를 올리고 우아하게 칼과 나이프를 써서 피자를 잘라 먹었다.


피자는 내 스타일의 음식이 아니였다. 하지만 피자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점차 넓어져 갔다. 직원의 요청으로 나도 사무실 내로 곧잘 피자 주문을 하도록 했고 같이 먹고는 했다. 미국 영화에서 자주 피자를 먹는 장면이 나와서 드디어 한국 사람들도 피자를 손으로 들고 먹는게 일반적인 형태가 됐다.


내가 먹어 본 가장 맛있었던 피자는 일본에서였다. 아내와 같이 묵은 호텔 1층에 피자집이 있었다. 내부엔 화덕이 있었고 거기서 직접 피자를 구웠다. 거기서 시킨 가장 대표적인 피자, 마르게리따 였나?, 는 자그마했고 그냥 치즈와 바질만 올라간 간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으로 담백하고 깔끔하고 감칠맛이 좋아서, 배가 불러지는게 아까워질 정도로 계속 먹고 싶었다. 그 이후로 피자에 뭔가 잔뜩 토핑이 올라간 것보다는 간단한 피자를 좋아하게 됐다.


코스트코나 월마트 같은 미국식 쇼핑센터가 한국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호기심으로 차로 1시간 떨어진 코스트코에 가 봤다. 여러 가지 식재료와 가격 때문에 자주 가는 마트가 코스트코로 결정됐다. 코스트코 푸드코트에서는 피자를 싸게 판다. 두 종류의 피자 중 치즈 피자를 가끔 사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는 했다.


코스트코에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치즈가 있었다. 그 중에 평소 궁금해 했던 블루치즈 계열의 고르곤졸라 치즈를 발견했다. 고르곤졸라 치즈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피자에 올려 먹는 것이다.


고르곤졸라 피자를 만드는 것은 요리라고 말하기에도 좀 껄끄럽다.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냥 시판 또띠아 위에 슈레디드 된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파란 곰팡이가 스며든 고르곤졸라 치즈를 스푼으로 떠서 듬성듬성 뿌려 놓으면 된다. 그리고 치즈가 녹을 동안 오븐에서 가열한 후 꿀에 찍어 먹으면 된다.


요즘 같이 추운 겨울엔 고열량의 고르곤졸라 피자가 안성맞춤이다. 또 아내도 무척 좋아하는 피자다. 집에 가면 오랜만에 한번 만들어 봐야징~


야매요리 : 지라시 스시 집에서 만들어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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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요리 :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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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요리 :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기


확실히 음식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은 중국식 간식인 탕후루가 한국에서 인기인 듯 하다. 그 전에는 마라탕이 유행해서 아내와 나도 1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마라탕이란 걸 먹어 본 적도 있다. 80년대부터 등장한 삼겹살도 변화를 거듭하여 대패니, 오겹이니, 통삼겹이니 하는 여러 분야가 발전하다가 몇 년 전엔 갑자기 이베리코라는 스페인 돼지의 삼겹살까지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베트남 쌀국수가 유행했고 현재는 좀 시들시들한 상태다.


베트남 쌀국수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70년대 남베트남이 패망하고 수많은 보트 피플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정착한 곳마다 쌀국수집이 생겨났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영업하며 베트남계 사람들은 물론 현지인의 입맛도 사로잡아 버렸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난 온 북한 사람들이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을 남한에 유행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쌀국수라는게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르던 90년대에 쌀국수를 먹어 봤다. 호주 멜버른으로 출장을 갔는데 상대 회사 사람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고 멜버른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대접한게 쌀국수였다. 처음엔 무척 당혹스러웠다. 커다란 그릇에 철철 넘치도록 국물이 있었고 아직 벌건 고기점들이 얇게 썰려서 올려져 있었으며 처음 보는 잎사귀들이 둥둥 떠 있었다. 비록 강렬한 동남아스러운 향신료 냄새가 부담스러웠지만 국수와 국물은 먹을 만 했었다. 하지만 그 정체모를 잎사귀들, 아마도 민트와 타이 바질과 실란트로였을, 은 먹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쌀국수에 대한 첫 인상은 ‘내 돈 내고는 안 사 먹는다’ 였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요상하게 그 국물이 가끔 생각났다. 특히 술을 잔뜩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는 다음 날이면 그 쌀국수가 그리웠다. 하지만 그때 당시 한국에서는 베트남 쌀국수를 먹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베트남 쌀국수는 나와 인연이 없는 음식으로 점차 의식 속에서 멀어져 갔다.


2000년대 중반 무렵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근처 사무실에서 일할 때 직원 한 명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소장님, 베트남 쌀국수 드셔 보셨어요? 길 건너에 새로 생겼는데 가 보실래요?’


그 직원 때문에 10 수년만에 쌀국수와 재회했다. 한국 시장에 현지화되어 그릇은 좀 작아졌고 국물은 약간 맹해졌으며 향신료 냄새도 약했지만 반가웠다.


‘이 까만 소스를 한 바퀴 두르고요, 빨간 건 세 바퀴 둘러요. 그리고 요 작은 종지에다가 까만 거랑 빨간 거 적당히 섞어서 고기를 찍어 먹는 거예요.’


직원은 신이 난 듯 내게 쌀국수 먹는 법을 알려 줬다. 그 이후 포메인이라든가 포호아 같은 베트남 쌀국수 체인점이 여러 곳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숙취에 시달릴 때면 쌀국수 집에 가서 까만 걸 한 바퀴, 빨간 걸 다섯 내지 여덟 바퀴 둘러서 얼큰하게 국물을 들이키며 해장하곤 했다.


뚱딴지 같은 인생의 궤적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 골목 골목마다 중국집이 자리하듯이 베트남 쌀국수집이 많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외식거리가 쌀국수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하는 쌀국수 체인과는 달리 북미의 쌀국수집은 대부분 베트남계로 보이는 사람들이 운영한다. 따라서 쌀국수의 만족도는 한국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한국에선 쌀국수에 따라 나오던 양파절임이나 깍둑썬 단무지가 없어서 좀 서운하기는 하다.


아내와 나의 행동 반경 안에 쌀국수집이 7개나 있다. 어떤 집은 터프한 국물을 자랑하고 어떤 집은 맑고 깔끔하다. 어떤 집은 육수 향이 진하고 어떤 집은 국물이 좀 달다. 여튼 아내와 장을 보러 나갔다가 내키는 집에 들어가서 가벼운 마음으로 쌀국수를 들이키고는 한다. 나는 그 국물이 땡겨서 자꾸 국물까지 먹고픈데 아내는 그만 좀 마시라고 타박한다. 사실 나트륨과 MSG 투성이일 테니 건강에 딱히 좋은 건 아닐 터이다.


아이고, 웬 잡소리가 이렇게 길었나 모르겠네. 여튼 외식하면 먹는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꽤 재밌다. 그래서 쌀국수도 집에서 한번 만들어 보고자 했다. 여러 번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정착한 방법이다. 물론 완전 야매다. 하지만 베트남 쌀국수 식당에서 먹는 것과 99% 동일한 국물맛을 자랑한다.

중국계 T&T 슈퍼마켓을 잘 뒤져 보면 이런 걸 찾을 수 있다. 이거 업소용이다. 15불 미만으로 산 것 같은데 이거 한 통으로 20인분의 쌀국수 육수를 만들 수 있다. 통 안에는 육수 페이스트와 향신료 패킷이 들어 있다. 향신료 패킷은 두 개가 들어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한꺼번에 10인분씩 두 번 만들 수 있다.

원래 레시피는 고기 덩어리와 함께 끓이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뜨거운 고깃덩어리를 꺼내 써는 걸 상상하니 귀찮아진다. 그래서 이런 소고기 육수 큐브를 넣기로 했다.


큰 들통에 대파, 양파, 생강, 팔각, 통후추와 위 페이스트통의 내용물 절반과 육수 큐브 세 개를 넣었다. 팔각과 통후추는 집에 돌아다니기에 그냥 넣었다. 생략해도 된다. 그리고 물을 적당량 넣고 불에 올렸다. 물이 끓는 동안 양파 절임을 만든다. 양파 반 개를 최대한 얇게, 길게 썰고 락앤락 통에 넣는다. 그리고 적당량의 식초와 물과 설탕을 넣고 통을 밀폐한 후 쉐킷쉐킷 흔들어 준다. 나중에 양파절임과 함께 이 식초물을 쌀국수에 넣으면 라임 대용으로 쓸 수 있다.

물이 끓으면 간을 본다. 아마도 무지 짤 것이다. 적당히 간이 맞을 때 까지 계속 물을 추가한다. 그리고 끓고 나면 위와 같은 그럴듯한 비주얼이 나올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향신료 패킷을 투하하고 15분간 더 끓여 준다. 그리고 향신료 패킷과 나머지 양파, 후추 등을 모두 건져낸다. 이 단계에서 온 집안에 향기가 가득 찰 것이다. 베트남 쌀국수 식당 문을 열면 맡을 수 있는 바로 그 냄새다.

육수가 준비되는 동안 쌀국수도 불려 놓고 숙주, 타이 바질, 실란트로 등도 준비해 놓는다. 아시안 마트에서 파는 얇게 썬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육수에 데친다.

그릇에 쌀국수, 야채, 양파절임, 고기를 넣고 육수를 부으면 이런 모습이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호이신 소스와 스리라차 소스 - 까만것과 빨간것 - 를 취향대로 넣고 즐기면 된다.


남은 육수는 아내가 요리할 때 곧잘 사용한다. 순두부 할 때도 넣고, 또 올해 1월 1일 아내가 해 준 떡국에서는 이상하게도 국물에서 익숙한 동남아의 향기가 났었다. 아, 물론 아주 맛있었다.


야매요리 : 지라시 스시 집에서 만들어 먹기

 가물에 콩나듯이 집에서 요리를 하면 아내가 아주 좋아한다. 가끔은 뭐, 부엌 어지럽힌다고 혼날때도 있지만, 언제나 내가 요리를 하면 환영받는다. 한국에 있을 땐 주로 만만한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스시가 있다. 아내와 나는 일본 생활 경험이 좀 있다. 아, 사실 아내를 처음 만난게 일본에서였다. 그래서 한국에선 아직 스시라는 음식이 인기를 얻기 전부터, 아내와 나는 일본에서 본토 스시를 자주 경험해 봤다. 때문에 나에게 있어 스시의 질에 대한 요구사항은 허들이 좀 높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고 이제 모든걸 포기한 상태다. 집 근처에 있는 킨조니, 타쿠미 스시에서 파는, 국적불명의 스시에도 타협하는 몸이 돼버렸다. 아내는 더욱 더 퇴보하여 킨조 스시 세트를 맛있게 즐겨 먹는다. 따라서 나도 자주 먹는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인 캘리포니아 롤이니 다이너마이트 롤 같은건 아직도 용납을 못하겠다.


스시의 근본은 니기리 스시다. 일본말로 니기루 - (손으로) 잡다, 쥐다 정도의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밥을 손으로 쥐어서 모양을 만든 후 생선회등을 올린 스시다. 여기서 밥을 쥐지 않고 그냥 그릇에 담은 후 여러가지 생선회를 덮밥처럼 올리면 지라시 스시(일본어 발음법칙상 정확하게는 지라시즈시라고 한다) 가 된다. 일본말 지라스 - 어지르다, 흐뜨러트리다에서 파생됐다. 한국에서 직장생활 할 때 회사 근처의 일식집에서 푸짐한 지라시 스시를 팔았다. 아내와 점심때 자주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는 했다.


일반적인 니기리 스시보다 지라시 스시는 직접 만들기가 쉽다. 밥을 손으로 쥐는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손쉽게 집에서 지라시 스시를 만들어보자.

아시안 마트에 가면 이런게 있다. 스시초다. 이걸 뜨거운 밥에 살살 뿌려서 섞어주면 시큼달달한 스시용 밥이 딱 만들어진다. 귀찮게 집에서 식초와 물과 설탕을 섞어서 촛물을 만들 필요 없다.

중국계 T&T 수퍼마켓에선 이런 사시미와 날치알을 판다. 사시미셋트엔 세 가지 사시미가 세 조각씩, 그리고 생새우, 북방대합조개, 다마고가 각 두 조각이 들어있다. 대충 3인분의 지라시 스시를 만들 수 있다.


역시 한국 마트, 중국 마트에선 이런 냉동된 장어구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내 경험상 이런 장어는 크면 클수록 부드럽고 맛있다. 싸다고 작은놈을 고르면 실망한다. 이것의 요리는 전자랜지를 사용하거나, 오븐을 사용하거나, 그냥 봉지채로 끓는 물에 집어넣는거다. 전자랜지는 쳐다보지도 말자. 오븐에 가열하면 좀 마르는 느낌이 든다. 그냥 끓는 물에서 가열했을 때 가장 부드럽고 촉촉하고 맛있었다.

참고로, 회를 생략하고 장어만 잔뜩 올리면 바로 장어덮밥이 된다.

초밥을 그릇에 담고 위 재료를 밥 위에 올려준다. 그럴듯한 지라시 스시 완성이다.


아내와 아들에게 칭찬받은 후 나는 지라시 스시를 안주삼에 반주하며 행복한 저녁을 보낸다. 치어스~


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한국음식 중에선...

 ... 보신탕 빼고는 다 잘먹습니다.



담배를 끊은 후 나름 식도락 취미에 약간 발목을 담가서 이민오기 전에는 집에서 맥주랑 전통주도 빚어먹고 참치(혼마구로) 대뱃살(오도로)같은것도 주문해서 직접 해동해 먹곤 했지요. 그리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선 주는대로, 있는대로 먹습니다. 아내와 떨어져 기러기 생활할 때는 몇달간 김치없이 지냈습니다. 저는 김치 없어도 평생 잘 살수 있습니다. 암요...


운이 좋아서 직장일로 세계 곳곳을 출장다닌일이 많았는데요, 제가 싫어하는 일중 하나가 외국 나가서 한국 음식점 가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사람이 움직이는 출장길에 저 혼자 행동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특히 사회 초년병땐 말이죠.


한번은 부서장과 같이 도꾜로 출장을 갔습니다. 이양반이 일본 주재원 생활을 꽤 오래 한 사람이라 여기저기 저보다 훨씬 빠삭하더군요. 호텔에 짐을 푼 당일, 일정이 없기에 이양반이 주재원 시절 자기가 자주 가던 식당이 있다면서 긴자로 가자고 하더군요. 전 드디어 오랜만에 사시미라던가 스시라던가를 긴자의 고급 식당에서 먹는가보다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긴자 번화가의 뒷골목 허름한 건물 지하의 전라도식 추어탕집이었습니다. 도대체 일본까지 가서 왜 남원추어탕을 먹어야 하나요.


미국 워싱턴에 같은 사람과 출장을 갔습니다. 오랜 비행시간에 지쳐있는 와중에 이양반이, "모처럼 미국에 왔으니 고기먹으러 가자. 근처에 고깃집 알아놨다" 하더군요. 전 속으로, '와 드디어 미국식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어보나보다' 하고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한국식당이고 먹은 음식은 들척지근 양념 범벅의 특이할 것 없는 한국식 갈비...


또 한번은 전시회 및 컨퍼런스 참가차 싱가폴에 갔는데 거진 막판에 관광 분위기였습니다. 현지의 여행사 가이드가 일단의 참가자들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며칠간은 정말 현지 음식들을 즐기고 있었습다. 스팀보트며 피시볼 누들이며 호강하는 와중에 가이드가 '오늘 저녁은 어디서 드실래요? 한국식당? 현지식당?'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을 꺼네기도 전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한국식당이요.', '맞아, 며칠 김치를 못먹었더니 속이 느글느글 하네...' 하며 웅성웅성 하더군요. 식사비는 이미 전시회 참가비에 포함되어 있기에 어쩔수 없이 싱가폴에서 맛없는 된장찌개를 먹는 저는 속으로만 불만을 삭혀야만 했습니다. 누군가 김치찌게를 뜨며 말하길 "역시 한국놈은 김치를 먹어여 해~". 전 속으로 '난 한국놈 아니고 지구인이거든. 넌 편식하는 인간일 뿐이지, 흥' 하며 궁시렁 거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거하게 음식을 즐긴 출장도 꽤 됩니다. 특히 중국 상해로 일주일간 출장갔을땐 호텔 조식을 제외하고 하루 두 끼을 매일매일 중국 현지의 식장에서 코스로 즐겼는데요, 물론 메뉴는 못고르니 주는대로 먹었습니다만, 모두 중국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사천식이니 북경식이니 징기스칸이니 오리구이니 하며 지루하지 않게 즐겼습니다. 나중엔 일은 뒷전이고 식사시간만 기다려 지더군요.


중국에선 각 지역별 중국음식을 즐겼다면 호주에 약 한달간 출장땐 그야말로 하루에 두 나라씩 가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민의 나라답게 세계 각국의 음식이 있었는데요, 점심은 말레이시아, 저녁은 미국, 다음날 점심은 베트남, 저녁은 태국, 다음날 점심엔 중국에서 딤섬을 먹고 저녁엔 그리스에서 지중해식 만찬을 즐기는 식이였습니다.


세상은 넓고 먹을건 많더군요.


전 캐나다 오면 호주에서와 비슷한 식생활을 누릴 줄 았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착각이였습니다. 스시를 먹어도 맛이 없고 중국집의 오렌지 치킨은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딱딱하고 에도니 테리야끼니 하는 식당에서 일본음식이라며 파는 국적 불명의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울 수단일 뿐입니다.


제가 처음만난 주변의 이민자와 공통점을 찾는 주제중 하나가 캐나다 음식 흉보기입니다. 이런식이죠...


걔 : "캐나다 오니깐 어때?"

나 : "응, 좋아, 음식 빼고..."


이렇게 한마디만 하면 걔는 눈이 똥그래지면서 맞짱구를 쳐주며 함께 캐나다 음식을 흉보면서 breaking ice를 하게 되는 식이죠. 중국사람이던 콜롬비안이던 상관 없이 말이죠. 단, 영국에서 이민온사람에겐 피해야할 방식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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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맛있게 처음 경험한 음식중에 하나가 인도음식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커리 소스가 상 가운데 서빙되고 이를 안남미로 지은 밥이나 난이라는 화덕에 구은 넓적한 밀가루 전병과 먹는 음식이었는데요, 참 인상깊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서 서울 동대문 근처와 종로에 인도인이 만든 인도식, 파키스탄식 식당이 몇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에서의 생각이 나서 아내와 함께 그 식당들중 하나에 가서 음식을 즐겼는데요, 아내도 참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자주 동대문과 종로의 인도식당을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지금 살고있는 집 근처에 샤프란이라는 무지 장사가 잘 되는 테이크아웃 전문 인도식당이 있습니다. 인도음식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그 음식을 테이크아웃 해서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잠시 음식을 오물거리던 아내가 한 말은...


"... 여기서 다시 사먹을 일은 없겠다 ..."


저도 동감입니다.


사방에 일본식당, 인도식당, 중국식당이 많지만 모두 캐나다인 입맛에 맞춰져 변형된 형태고, 그리고 이사람들 입맛은 틀림없이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ps

1. 며칠 전에 끄적인 글에 캐나다 맛집에 대한 요청글이 있어서 약 1년 전에 캐나다 이민자 모임 카페에 올린 글을 약간 수정하여 올립니다. 사실 캐나다 음식이 그렇게 심하진 않을꺼에요. 예전에 외국에서 접대 비슷한걸 받은 거고 지금은 생활이니까...


2. 저와 다른 식성을 가지신 분이 기분나쁘시라는 글이 전혀 아닙니다.


2015.7.5


탕수육! 부먹? 찍먹?

최근 올린 잡글에 어떤분이 탕수육 부먹, 찍먹 논쟁에 대한 답글을 올리셔서 써보는 글.


평소에 최루탄 냄새 자욱한 잔디밭에서 새우깡에 막걸리를 마시거나 학교 후문 주점에서 1200원짜리 찌개안주에 25도짜리 소주를 들이킨 후 외상으로 시계나 학생증을 저당잡히곤 하던 때다. 간혹 선배나 막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은 물주를 잡으면 학교 근처 허름한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짬뽕 국물에 빼갈이나 소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당시의 탕수육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녹말물에 버무린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후 다시 웍에 목이버섯, 당근 등의 야채를 넣고 소스와 함께 강한 불로 뒤적뒤적 요리한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소스가 흥건하지 않았다. 그저 딱 알맞은 소스가 탕수육 하나하나에 완벽하게 코팅된채로 나왔다.


가난한 학생들에겐 더할나위없는 사치였다. 김이 모락모락하는 한 점을 집어들고 입가에 가져가면 먼저 새콤한 냄새가 침샘을 아프게 자극한다. 입에 넣으면 소스의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유린한다. 이를 씹으면 약간 기분좋게 '바삭' 한 다음, 뭔가 쫄깃하고 쫀득한 식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신선한 육향이 화룡정점을 찍은 후 이 모든게 입안에서 합쳐지면서 극락으로 뿅 가게된다.


우리 무리는 장학금을 타거나 아르바이트 돈을 받거나 군 입대 전에 두둑히 용돈을 받거나 하면 이런 사치를 누렸다.


세월이 변하면 모든게 변한다. 탕수육도 세월과 함께 변해갔다. 먼저 중국집들이 배달 중심으로 변하면서 튀김과 소스가 분리됐다. 그리고 튀김도 배달될 동안 눅눅해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좀 딱딱해졌다. 더이상 쫄깃쫀득한 식감을 즐길 수 없게 됐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우리들도 중국집에서 더이상 탕수육을 찾지 않게 됐다. 양장피나 고추잡채나 깐풍기가 주 메뉴가 됐다. 세월이 스쳐지나며 더이상 중국집 자체를 찾지 않게 됐다. 이젠 횟집이나 참치집, 양구이집이나 장어구이집에서 모임을 갖게 됐다.


가끔 고급 중국집에서 비즈니스상 코스요리를 먹을 때, 옛날 방식의 탕수육을 접할 경우가 있었다. 물론, 튀김과 소스가 강한 불로 웍 안에서 버무려져 나온다. 서버께서 인원수대로 소분해서 나눠주면 이를 먹으며 옛날 대학생 시절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한 칠팔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들과 양꼬치구이 집에서 만났다. 내겐 생소했던 양꼬치였는데 친구 한놈이 꿔바로우라는걸 시키더니 먹어보라 권했다.


'야, 이거 우리 옛날에 먹던 탕수육 비슷해. 맛있어. 먹어봐.'


녀석의 말대로 새콤달콤한 소스와 고기튀김이 한몸으로 어울리며 바삭쫄깃쫀득한 맛이 일품이었다. 모양은 약간 달라도, 좀 과하게 달긴 했어도 20대 초반의 가난한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여튼, 이제 탕수육은 소스가 완전히 분리된게 표준이 됐다. 셰프의 전문적인 스킬에 의해 웍에서 버무려진 진짜 탕수육은 이제 고급 중국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느냐, 찍어먹느냐를 가지고 논쟁중이라 한다. 부먹파와 찍먹파가 대차게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참 재밌다.


만약 어떤 청년이 내게 부먹파인지 찍먹파인지 물어보면 나는 아마도 이 글에 나온 내용을 주절거릴지도 모르겠다. 원래 탕수육에 찍먹부먹 따위는 없었던 거라고 말이다.


큰일날 소리다. '나때는 말야…' 하며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100% 꼰대각이다.


그래, 어차피 딱딱한 돼지고기 튀김이다. 이도 아프다. 그러니 흥건한 소스에 불려서라도 먹어야지 뭐.


'예, 저는 부먹파입니다.'


하고선 깨작거리다거 계산이나 해줘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