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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인식혁명



저는 소니에서 나온 이북 리더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미 단종된지 오래된 물건입니다. 이게 전자잉크라는 디스플레이를 쓰고 있어서 사용시간도 길고 사전도 내장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눈이 참 편안해서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이걸 쓰고 있습니다. 특히나 부피가 작고 가벼워서 화장실에 갈 땐 항상 가지고 갑니다. 물론 이 분야의 강자는 아마존의 킨들이라는 제품입니다만 현재 쓰고 있는 것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여행 중에도 항상 소지하였는데요, 그만 이번 여름 여행 중에 온타리오의 바다 같이 넓은 Lake Superio 변의 PUKASKAWA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분실하고 말았습니다. 틀림없이 화장실에선 들고 나왔는데 그 후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놓고 나온 모양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사실을 빨리 알아챘다면 되돌아갈 것이었겠지만 이미 그곳에서 동쪽으로 500Km 이상 떠나온 참이었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숙소를 정하고 긴긴 밤을 보내는데 읽을거리가 없으니 아쉽더군요. 그래서 킨들이라도 살까 하고 스테이플스나 베스트바이를 들렀습니다만 구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포기하고 결국 오랜만에 종이책을 한 권 샀습니다.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라는 제목이고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라는군요.


아직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요, 개인적으로 참 재미진 책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지금까지 밝혀진 고고학적, 문화인류학적 사실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흥미진진하게 설명하는데 정말 매혹적이고 저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하네요. 읽는 즐거움을 이렇게 느끼는건 참 오랜만입니다.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막 아깝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며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20만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들은 아프리카에서 나와서 세계 각지로 진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때 이미 먼저 아프리카를 떠난 인간종들이 세계 각지를 선점하고 있었답니다. 유럽의 추운 지역에서 이미 네안데르탈인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고 지금의 인도네시아 부근엔 호모 에렉투스가 이미 백만년 이상 살고 있었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들과 가끔 사냥터나 채집터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며 살았는데요, 오랜 시간 공존했다고 합니다. 서로의 능력치에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사피엔스처럼 네안데르탈과 에렉투스도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했으며 소규모 무리생활을 했죠.


7만년 전쯤에 사피엔스의 두뇌에 돌연변이가 발생합니다. 갑자기 어떤 개체군에서 추상적인 상상을 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런 돌연변이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답니다. 이 후에 사피엔스는 개별적인 신체 능력으론 절대 당해낼 수 없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습니다. 또한 백오십만년간 살아오던 생존의 천재 호모 에렉투스를 고고학속의 존재로 추방시킵니다(호모 사피엔스는 등장한지 겨우 20만년입니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같은 종류의 먹이를 채집하고 사냥하던 경쟁자를 말살해 버렸습니다. 지구에 등장한지 13~14 만년이 걸린 성취입니다. 마치 아프리카 사자 무리가 같은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같은 고양이과 동물인 치타나 표범을 멸종시킨 것과 같은 것이죠.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갑자기 같은 호모속을 멸종에 이르게 한 능력을 얻은 과정을 인식 혁명 – Cognitive Revolution – 이라고 칭합니다. 구체적으로 이게 뭐냐 하면 상상력입니다. 이 즈음부터 인간은 벽화를 그리고 머리는 사자, 몸은 인간인, 세상엔 존재할 수 없는 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 즉 거짓을 만들고 믿는 능력에 의해서 같은 호모종을 멸종시킬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겁니다.


침팬지 등의 무리생활을 하는 유인원의 규모는 150 개체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아무런 조직 체계를 갖추지 않고 인간의 단순 친목 모임도 이와 같습니다. 유인원의 무리는 서로 잘 알고 있는 개체로만 이뤄집니다. 이 무리에 낯선 개체들이 등장하면 두 무리 사이엔 호전적인 적의가 등장하여 싸움이 일어나거나 약한 무리가 다른 곳으로 피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상상력 혹은 추상적인 것들을 떠올리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 추상적인 목표를 위해 돌진하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오늘 처음 만나는 다른 개체들을 동료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여 소규모의 네안데르탈 무리나 호모 에렉투스 무리를 압도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인식 혁명 이후에 인간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냥 단순한 대화가 아닌 가십을 즐기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자에 의하면 인간은 가십을 즐기는 동물입니다. 외과의사간에 혹은 명문대 물리학과 교수간의 심포지움 자리에서도 주로 들리는 대화는 수술 이야기나 최근의 끈 이론에 대한게 아니라 그냥 잡담이랍니다. 상상력과 대화를 통해 공통된 신화나 우화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신화가 현대 인류 문명의 시작점이라는군요.


제 상상력을 가미하면 이렇습니다.


- 얘들아, 예전에 아주 용맹한 곰이 있었는데, 그 곰이 굴속에서 마늘만 먹고 오래오래 살았는데, 천지신명이 그 곰을 사람으로 만들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였어. 우리는 이렇게 특별한 곰족이란다. 자 이걸 잊지 말고 우리 곰족의 표식으로 우리 콧볼에 이렇게 뼈다귀를 끼워놓도록 하자.


이제 오늘 처음 보는 놈이라도 코에 뼈다귀가 끼워져 있다면 같은 곰족이 됩니다.


- 얘들아, 우리 곰족은 말야, 사냥하거나 싸울 때 맨 처음 돌진하다가 죽으면 사실 죽은게 아냐. 우리 곰엄마가 평생 먹을 것을 주고 27명의 미인들에게 둘러싸여서 평생을 살 수 있는 거야. 자 오늘 저 네안데르탈놈들을 치기 위해서 5개 곰족 무리가 모였는데 어느 무리가 맨 처음에 설거냐?


이제 조직을 위해 헌신하고 죽음을 하찮게 여기게 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원숭이에게 – 너 지금 가지고 있는 바나나를 내게 주면 나중에(네가 죽은 후에) 1000개의 바나나를 줄게 – 라는 제안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원숭이는 절대 응낙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인식혁명 이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불확실한 내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호모종 친척들을 멸종시킨 것이죠. 나쁜 호모 사피엔스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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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간의 캐나다 동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PUKASKAWA 국립공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혹시나 잃어버렸던 이북 리더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공원은 이미 비수기 모드로 접어들어서 비지터센터도 문을 닫았고 공원 입장 키오스크도 무인 시스템으로 변했더군요. 물어볼데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결국 그 리더기는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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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넉 달 이상 장기여행을 위한 짐들이 차 속에 꽉 차 있었는데요, 그걸 정리하는 것도 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짐 구석에서 잃어버렸던 이북 리더가 아내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어떤 절대자가 저로 하여금 본문에 소개해드린 책과 인연을 맺어주려고 그 이북 리더를 차 속에 숨겼을 것입니다. 암요, 저는 호모 사피엔스인걸요. 이게 단순한 헤프닝일 수는 없는 겁니다. 제가 그 때 얼마나 샅샅이 리더를 찾기 위해 뒤졌었는데요, 내가 그 때 못찾았을리가 없지, 내가 그렇게 멍청할리가 없지. 뭔가가 있는게 틀림 없어.


2016.9.27


세이노의 가르침 13) 도둑맞은 가난!

 


박완서의 단편 소설 '도둑맞은 가난' 의 여주인공은 가난하고 가련한 여공이다. 하루에 연탄 반장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녀는 같은 처지의, 도금 공장에 다니는 청년과 단칸방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사실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 청년의 부자 아버지가 가난을 겪어 보라며 청년을 등떠밀어 공장에 다니다가 결국 그 여공과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공은 크게 좌절하여 부자들이 가난까지도 뺏어 간다며 절규한다.


젊은 시절 이 소설을 읽고 참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가난 속에서도 그래도 장래를 꿈꾸며 살고 있었다. 비록 연탄 반장을 아낀다는 핑계 였지만 그 청년과 알콩달콩 살 미래를 내심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동거하던 남자가 사실은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상실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가난이 부끄럽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계속 밝혀 왔듯이 나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나의 친척, 친구, 이웃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유년기와 소년기 그리고 청년기는 행복으로 가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았던 그 빈민가의 작은 집, 수도꼭지 하나를 세 가구가 공유하던 그 집에, 누군가 부자집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경하겠다고 위장전입을 해온다면 나는 무척 화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아니므로!


세이노가 박완서의 이 단편소설을 자신의 책에서 언급했다. 그리고 상당히 이상한 결론을 도출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 부잣집 도련님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관찰한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을 여러가지 언급한다.


그가 언급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은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저 부자들이 자신들의 종업원들이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가짐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예를들면 '돈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았던 돈의  액수 이하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등등 정확히 가진자들의 논리를 가난한 자들의 특징이라며 나의 가난한 친척, 친구, 이웃들을 모욕한다.


세이노는 두 딸이 있다. 두 번째 딸이 태어났을 때 이미 세이노는 부자였다. 그는 자신의 두 딸이 가난을 경험해 보길 원했다. 정확히 '도둑맞은 가난' 에서 부잣집 청년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래는 세이노가 그의 아내에게 말한, 두 딸에게 가난을 경험시켜 보기 위한 계획이다.


(인용 시작)


나는 틀림없이 앞으로 더더욱 부자로 산다. 나는 딸들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고 싶다. 그 비결중 하나는 낮은 곳에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들이 중학교 수준이 되면 아빠가 갑자기 망했다고 말하고 거짓으로 재산을 몽땅 압류당하는 것으로 연극을 꾸미자. 그리고 판잣집으로 이사가서 단칸방 생활을 하자. 너는 파출부를 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뭐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모르겠다. 우리 둘은 허름한 옷을 입고 매일 아침 판잣집에서 나와 숨겨놓은 진짜 집에 가서 낮에 있다가 저녁에는 다시 애들이 있는 판잣집으로 돌아가자. 물론 애들에게는 돈이 전혀 없는듯 처신하고 등록금은 일부러 늦게 주자. 맛있는 것이 먹고 싶으면 우리끼리 몰래 밖에서 외식하고 들어가고 딸들에게는 수제비나 먹이자. 봉투 붙이는 일 같은 것도 가져와 딸들에게 시키자.


(인용 끝)


이 계획은 그의 부인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뭐 이렇게 복잡한 계획을 세웠는가 모르겠다. 그냥 소설 속의 부자 아버지처럼 딸들이 20 살이 넘었을 때 쫓아내 버렸으면 그만이었을 건데… 그러면 그의 두 딸은 공장에 다니다가 월세를 아끼기 위해 가난한 청년과 동거를 시작했을테고 가난한 사람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경험할건데 말이다.


혹시 아는가. 이를 통해서 세이노는 완벽한 사윗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 동거남은 오로지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일과 공부만 할 것이다. 가끔 성욕이 끓어오르면 세이노의 딸을 부둥켜 안을 것이다. 마치 세이노가 가난할 때 방에서 혼자 마스터베이션만 하고 지냈듯 말이다. 알콩달콩 사랑의 속삭임이나 데이트 같은 것은 절대 없다. 돈을 모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 동거남은 세상에 대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수틀리면 세이노가 했듯이 '에이 18, 맨날 좆 같네. 좀 나갑시다' 처럼 욕지거리를 하며 돌아다닐 것이다. 잠깐 대기줄을 착각한 사람에게 '야 앞에서 새치기하는 18새끼/놈아. 여기가 네 에미 보지구멍이냐. 아무데나 슬그머니 좃대가리 쳐박게?' 같이 시원하게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어느 정도 모인 돈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날파리라고 부르며 피할 것이다. 후배 직원이 일을 못 하면 개지랄을 떨며 난동을 부릴 것이다.


세이노의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사윗감이다. 세이노의 딸들은 가난을 경험함과 동시에 이상적인 신랑감을 구해올지도 모른다.


이 간단한 걸 모르고 아내에게조차 무시 받는 이상한 연극이나 계획하다니. 쯧쯧!


(계속)


에잇! 죽은 것은 쓰레기통으로…

 


오늘 트럭스탑에서 샤워를 하는데 치약이 다 떨어졌다. 힘을 주어 마지막 남은 걸 꽉 짜서 이를 닦았다. 완전히 비워진 치약 껍데기가 처량하다.


생명이 다한 치약통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사람으로 치면 죽은 것이다. 나도 조만간 저 껍데기 신세가 되겠지. 난 이제 한 3분의 1 정도 남은 치약이다. 나도 저 볼품없는 껍데기처럼 점점 짜여지면서 추하게 변해갈 것이다. 서글프다.


점점 줄어드는 머리숱과 흰머리를 못 견디겠는지 아내는 한 달마다 나를 붙잡고 강제로 염색을 해 준다. 점점 늙어 가는 내 얼굴이 보기 싫은지 세수만 하고 나오면 강제로 자기 옆에 앉히고는 로션을 처덕처덕 발라 주고 마스크팩을 해 준다. 다 의미 없는 발버둥이다. 어떻게 해도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외모가 전혀 변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다하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건전지가 그렇다. 마침 그저께 써모스탯 에서 건전지 교체 표시가 나서 바꿔 끼웠다. 3년 넘은 시간 동안 소모된 건전지가 새로 바꿔 끼는 것들과 외관상 차이가 없다. 다 쓴 것과 새것을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될 정도다. 사람도 건전지처럼 아름답게 수명을 다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적으로 조물주의 작품이, 특히 인간에 대한 결과물들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죽음이라는게 존재한다는 것 조차가 너무 싫다.


처음 지구상에 생명이 등장하고 수십억 년간은 단세포 생물의 시대였다. 이들은 세포 분열을 통해 번식했다. 그저 환경이 허락하는 한 생명은 계속 분열해 나갈 뿐이었다. 그래서 이 시대엔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수명이라는게 딱히 정의되지 못한다.


수십억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세포 생물이 출현했다. 그리고 섹스가 발명되었다. 성의 목적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유전자는 진화의 키인 돌연변이를 통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긴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유전자의 다양성 확보는 엄청나게 유리한 것으로 증명되어 왔다.


그래서 암수가 만나 섹스를 한다. 다시 한번, 섹스의 목적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섹스를 하는 생명체는 죽어야 한다. 어느 정도 후손을 만든 암수는 더 이상 유전자 다양성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다세포 생물의 죽음은 섹스의 댓가다.


다 짜여진 치약 껍데기를 보고 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 주책바가지다. 아마도 요즘 끄적거리는 '결혼 출산 육아' 시리즈 때문이리라.

샤워를 마치고 면도를 한 후 애프터 쉐이브로션을 발랐다. 로션 병을 보니 얘도 죽을락 말락 한다. 그래도 얘는 내용물은 점점 비워져도 겉모습은 젊을 때 그대로네! 건전지처럼은 못돼더라도 최소한 로션 병처럼 죽어가면 좋으련만…

에잇! 죽은 것은 쓰레기통으로…


이민자들의 삶은 영어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기밀 엄수 및 5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동종업계 활동 금지'


한국에서 마지막 회사를 사임할 때 날인하여야만 했던 각서의 핵심 조항이다. 이후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상당한 재산을 잃는 등 사회의 쓴 맛을 보고야 말았다. 하려던 일도 사기로 틀어지고 원래 했던 일도 각서에 의해 못하게 되었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사나 아내와 손가락을 빨며 고민하고 있을 때, 뉴질랜드에 있는 처형이 연락을 해 왔다.


'얘들아, 이리로 와! 여기 너희 같은 기술 가진 사람들 쉽게 올 수 있어.'


이때 처음으로 이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상의한 후 뉴질랜드는 너무 작을것 같아 그 옆 나라인 호주를 염두에 두었다. 출장으로 몇번 왔다갔다 해서 좀 익숙한 나라이기도 했다.


이민 신청을 위해 아이엘츠 IELTS 영어 시험을 보았다. 전형적인 한국인 성적 - 리딩과 라이팅은 높고 스피킹과 리스닝은 형편없는 - 을 받았다. 스피킹 성적이 호주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미달했다. 그런데 또다른 주요 이민 수용국인 캐나다는 내 점수로 전문인력이민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플랜 B로 캐나다에도 이민 신청을 해 놓고 좀 더 공부해서 아이엘츠 시험을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험 성적이 오르기는 커녕 더 떨어지는 것이었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되어 그냥 영어 성적에 맞춰 캐나다로 진로를 바꿨다. 즉 나의 영어 실력이 나를 캐나다로 인도한 것이다.


이렇게 영어라는 언어는 사람이 밤하늘에서 북극성을 볼지, 혹은 남십자성을 보고 살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전문인력으로서 캐나다로 건너 왔지만 나는 내 분야의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읽고 쓰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프로페셔널한 현장에서 듣고 말하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나는 프로젝트를 관리해야 할 입장인데, 나의 영어 실력으로 그런 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벼룩도 낯짝이 있지' 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거였다. 그래서 집착을 버리고 금방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현재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이 또한 나의 영어 실력이 겨우 허락하는 자리다.


썩 나쁘지 않다. 매일 아침 동틀 무렵, 동녘 하늘에 밝게 빛나는 금성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 발밑에서 도로는 최대 시속 7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 처음 트럭커가 된 사람의 90%가 3개월 안에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둔다는데 요행히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계속해서 풍경이 바뀐다.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을 만날 때도 있다. 12월에 후덥지근한 루이지애나에서 무단승차한 파리 한 마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하 20도를 밑도는 캘거리까지 3박 4일간 동행하기도 했다. 꼼짝없이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직업. 아직은 나쁘지 않다.


아내 또한 집 근처 리타이어먼트 센터에서 전무후무한 멀티 롤 워커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일하고 있다. 여러 파트가 아내를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두 파트에서 번갈아 혹은 동시에 일하며 혹사 당하고 있다. 아내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지만 역시 영어 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리다.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집에서 다음 트립을 위해 옷장을 뒤적이다 보면 예전에 애용하던 수트와 넥타이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것들은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주인을 만난 죄로 조만간 죄다 버려질 운명이다. 쓸데없이 멀리 한국에서부터 가져오는 수고를 했다.


도대체 무슨 헛된 희망을 품었던 거냐?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뉴질랜드로 갔을 걸! 그러면 최소한 아내가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이민자들의 삶은 영어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 씨, 영어공부좀 할걸!


자전거 7) 자전거 도둑으로 몰렸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기분이 나쁘다



일본사람들은 정말 자전거를 많이 탄다. 학생, 가정주부, 직장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생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누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와 전철역 근처에 주차하고 전철을 타고서 직장으로 출근하고는 한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국에는 없는 자전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위 사진과 같이 일본 전철역에는 대체로 유료 자전거 전용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면 전혀 자전거 도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일본에서는 자전거 등록 제도가 있다. 동네 파출소 같은데 가서 단돈 500엔만 내고 자전거를 등록할 수 있다. 자전거를 등록하면 등록 스티커가 나오는데 이것을 프레임에 붙이고 다닌다. 만약 자전거를 도난 당하면 신고할 수 있다. 경찰은 도난 신고된 자전거와 비슷한 자전거를 발견하면 등록 스티커를 살펴보고 도난 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어딘가에 방치된 자전거가 있으면 경찰이 수거해서 원래 주인에게 연락을 해준다. 등록 스티커가 없는 자전거는 일단 도난 당한 자전거로 의심 받는다. 한국보다는 확실히 자전거 도난에 대해서 걱정을 덜 수 있다.


젊을 때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어느날 한국인 후배 직원이 여럿 들어왔다. 우리들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료' 라는 숙소에서 묵었다. 나는 선배로서 그들을 잠시 케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과 다른 일본의 에티켓과 전철 타는 방법 등등을 알려줬다.


그 중에 한 명이 경찰에게 잡혔다. 자전거를 훔친 것이다. 그 놈이 자전거 도둑일 줄 미리 알았더라면 일본의 자전거 등록 제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을 텐데, 신입 사원 중에서 자전거 도둑이 있을 줄 내가 상상이나 했겠냐고요! 여튼 망신을 당하며 간부들과 일본 본사 총무과가 겨우 사건을 무마 시켰다.


그는 일요일날 다닐 교회를 찾아보기 위해 자전거를 잠시 빌렸단다. 용무 후에는 제자리에 갖다 놓을 작정이었단다. 이게 도대체 말이여, 방구여?


한편, 나도 자전거 도둑으로 몰릴뻔 한 적이 있다. 바로 본격 MTB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다.


나는 몸에 딱 맞는 자전거 져지를 입어 본 적이 없다. 자전거 탈 때 나의 복장은 그냥 등산복이다. 헬멧도 쓰지 않는다. 어느날 야근을 하고 밤늦게 MTB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신호를 대기 하는 중이었는데 경찰 한 명이 나를 유심히 봤다. 자전거와 나의 복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더구나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경찰이 내게 다가왔다.


'아저씨 잠깐만요. 아, 싼 거구나! 그냥 가셔도 돼요.'


그 경찰은 아마도 자전거에 조예가 깊은 사람인 것 같았다. 슬쩍 내 자전거의 메이커와 프레임과 달려 있는 구동계 부품을 보더니 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아마도 내가 카본 프레임에 XTR 급 구동계 부품을 가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면 나는 자전거 도둑으로 몰렸을거다.


그런데 괜히 억울했다. 자전거 도둑으로 몰린 것보다 내가 아끼는 자전거가 무시당한게 더 기분이 나빴다. 무척 비싼 자전거는 아니지만 나는 내 자전거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무시를 당하다니!


비록 자전거에 정통한 선수들에게는 싸구려 취급을 받을만 한 메이커와 등급이지만 난 그 자전거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내 자전거는 탄탄하고 달릴때 잡소리 없이 그저 지이이잉~ 하는 멋들어진 소리만이 타이어와 아스팔트 사이에서 올라온다. 그간 체인 한번 빠진적이 없다. 더이상 바랄게 없었다. 그런데 정복을 입은 경찰관에게 싸구려라고 무시당했다.


도대체 값비싼 카본 프레임에 최상급 구동계를 쓴 자전거는 얼마나 좋으려나? 궁금하기도 하다만 절대 거기까지 가면 안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뭔가 또 한번 타락해 버릴 것 같아 겁난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계속)


Childhood's end - Sir Arthur C. Clarke - 2



강대국들간의 로켓과 핵무기 경쟁이 지속되던 냉전 시대, 갑자기 전 세계 주요 도시 상공에 거대한 외계 우주선이 출현한다(이 묘사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외계인 침략 장면으로 오마주되었다).


인디펜던스 데이와는 다르게 이 책에서 외계인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외계인은 자신들이 인간사에 개입할 것이며 어떠한 저항도 무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며 발전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힌다. 지구상의 정치, 문화, 종교, 경제 체계에 큰 충격을 불러온다. 모든 살상무기들은 무력화 되었으며 지구상에 전쟁, 학살, 기아 등이 일소 된다. 이들 외계인의 관리 감독 하에 인류는 골든 에이지를 맞이하게 된다.


인간들은 이들 외계인들을 오버로드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안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삶을 꾸려가기 위해 경제적인 활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국소적인 저항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지구인들은 오버로드의 지도하에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쩐 일인지 처음 50년간 오버로드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인간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직 인간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서 말이다.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인류는 점차 오버로드의 지배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절대신이라는 개념이 없던 불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사라졌다. 따라서 격렬했던 종교 분쟁과 그에 따른 학살도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구분이 없어졌다. 인종이나 남녀에 따른 차별도 없어졌다. 불치병이 없어졌다. 누구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직업은 단지 개개인의 선택일 뿐이었다.


여러 세대가 지난 후 처음으로 오버로드가 자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공개했다.


구부정한 어깨, 등에서 쭉 뻗은 큰 박쥐날개, 치켜올라간 눈꼬리, 툭 튀어나온 광대뼈, 매부리코, 뾰족하게 앞으로 튀어나온 턱, 이마에 붙어 있는 큰 두 뿔, 붉그스름한 피부, 가늘게 뻗어 나온 꼬리.


오버로드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묘사되는 바로 그 악마의 모습이었다.


(계속)


세이노의 가르침 12) 부자가 되는 방법 세줄 요약!

 첫째, 모든 시간을 일과 공부에 바쳐라.


(건강한 가난뱅이? 세이노의 가르침 - 10 참조)


둘째,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저축하라.


(와, 꼰대다! 세이노의 가르침 - 11 참조)


셋째, 일과 공부에서 얻어진 재테크 지식으로, 저축을 통해 이룩한 종자돈을 투자하라.


이 세 가지가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참 쉽다.


이렇게 하면 정말 부자가 될까? 그렇다. 세이노처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일례로 그는 경매에 통달했다. 그냥 부동산 경매를 통해서만 100억 원 넘게 벌었다. 그는 모든 부동산의 권리분석과 관련법률을 공부해서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떠한 중매인이나 경매 브로커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사회에 큰 격변이 일어나면 가난한 자들이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다. 반면에 부자들은 격변속에서 더더욱 큰 부자가 된다. 일례로 IMF 당시 부자들은 '이대로~' 를 외치며 건배를 했다고 한다.


세이노는 IMF 당시 이미 어느정도 부자였는데, 바로 그 외환위기를 이용하여 더욱 큰 부자가 된 무용담을 책에서 풀어 놨다.


동남아 각국이 먼저 외환위기를 겪을 때 국내 언론은 한국경제는 튼튼하다며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한국도 금융위기를 겪으리라 예상했다. 그는 먼저 IMF를 겪고 회복한 멕시코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명동, 이태원 등의 암달러상으로부터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때 환율이 890원 정도였다. 마침내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환율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외화를 파는 사람에게 자금출처를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세이노는 단기간에 100%가 넘는 수익을 남기며 수트케이스 2개에 가득 담긴 달러를 은행에 팔았다. 이때 환율은 달러당 2000원에 달했다.


IMF 극복을 위해 돈이 필요해진 정부는 일종의 '묻지마 채권' 을 발행했다. 채권 만기시 소유자에게 자금의 출처를 묻지 않는 조건이었다. 시중금리보다 쌌지만 이 채권은 엄청나게 팔렸다. 물론 부자들이 사갔다. 세이노도 이걸 샀다. 채권 만기가 도래 했을 때, 부자들은 증여세나 상속세 없이 부를 증여하거나 상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IMF는 세이노와 같은 부자들에게 재산증식 혹은 증여나 상속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을 뿐이다.


자 다시 한번 부자가 되는 방법 3줄 요약 : 


첫째, 모든 시간을 일과 공부에 바쳐라.

둘째,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저축하라.

셋째, 일과 공부에서 얻어진 재테크 지식으로, 저축을 통해 이룩한 종자돈을 투자하라.


세이노는 책 전반에 걸쳐서 이 간단하고 쉬운걸 왜 못하냐며 독자들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이게 정말 쉬울까?


첫째, 모든 시간을 일과 공부에 바쳐라. 이것부터가 보통 사람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다. 세이노가 요구하는 노력의 수준은 밥 먹는 시간조차 아끼기 위해 라면 부스러기를 부숴 먹으며 공부하라는 것이다. 고시 공부 보다 더한 수준의 노력을 요구한다.


또, 과연 공부를 한다고 해서 누구도 예상못한 IMF를 예측하고 환투기에 뛰어들만한 혜안을 갖게되는걸까? 이건 마치 공부를 하면 누구나 주식투자 승률 100%가 될 수 있다는 말 같은데? 우리 모두는 그게 불가능함을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노는 정말 부자가 되는 방법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용 시작)


… 한화로 예치하였는데 이때 100% 정도의 수익률로 수십억원을 벌었다. 당시 내조만 하던 아내는 통장에 찍힌 금액에 놀라서 내게 "다른 사람들도 당신처럼 공부하여 돈을 이렇게 쉽고 빠르게 벌어?" 라고 물었는데, 나는 "아닐걸. 그런데 내가 밤새워 공부하는 것이 쉬워 보였어?" 하고 간단히 답했다.


(인용 끝)


사실은 그 자신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자백하고 있다. 그런데 세이노는 왜 이렇게 모든 이들에게 부자 되는 방법을 따라하라고 책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것일까? 그야 물론 일반인들이 세이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세이노와 같은 가진자들에게 더더욱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다음편 쯤에서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계속)


공산당 만세 8) 빨갱이 자본주의



공산당 만세 - 목차

자본가 계급의 등장

민주주의의 도입

자본주의

자본의 속성

자본주의 침공

재갈물린 자본주의

자기 거세의 시대

현대 계급론

선거 게임

 

빨갱이 자본주의


이 글의 2편 자본의 속성에서, 자본은 집중과 증식의 속성을 가지며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가 가장 손쉬운 증식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등장 이후 자본가는 노동자계급을 무차별적으로 착취할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 노동법과 규제때문에 자유방임시대 때보다 노동자를 쓰는게 너무 비싸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의 발전은 자본가에게 또다른 옵션을 부여했다. 바로 자본 증식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을 배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비스업에서 자본가의 자본 증식 극대화를 위한 노동자 배제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있다. 즉 우리 모두는 노동자를 죽이는 공범이다.


맥도날드에서 우리는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한다. 맥도날드는 주문을 받아들일 노동자를 줄일 수 있게됐다. 프라핏!


월마트에서 우리는 셀프계산대를 이용하여 자본가에게 돈을 벌어주는 노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월마트는 많은 캐셔를 해고할 수 있었다. 프라핏!


은행에서 우리는 ATM을 이용하거나 인터넷 뱅킹을 사용한다. 은행 텔러는 점점 구석기의 유물이 되어간다. 프라핏!


자본가를 위한 이런 교묘한 장치는 점점 더 사회에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노동자 동지의 일자리를 뺏음과 동시에 자본가를 위한 자발적인 볼런티어를 하고 있는 세상이다.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다. 현재 많은 제조업과 사무직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을 채용하고 있다. 점점 인간 노동자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운송업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는 350만명의 트럭 운전사가 있으며 이들이 전체 물동량 70%를 책임진다. 운전사에게 지급되는 페이는 운송업에서 가장 큰 비용요소이다. 현재 기술은 자본가에게 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즉 자율주행 트럭의 등장으로 이들이 조만간 다 사라질 운명이다.


단순히 운전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미에는 길 위에서 먹고자는 롱홀 트럭커를 위한 인프라와 거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장 수백군데의 트럭스탑들이 없어지며 거기에 종사하는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같이 쓸려나간다. 트럭커를 위한 레스토랑이나 모텔들 또한 사업을 접어야 한다.


자본가에게 운전사의 일자리, 식당이나 모텔 같은 소규모 비즈니스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다. 결국 조만간 도로에는 무인 트럭들만이 질주할 것이다.


아마존 같은 곳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 사람을 채용하고 해고한다. 이를 통해 인건비 비싼 매니저 직급을 없앨 수 있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서는 요상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이런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징은 노동자 계급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10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거느렸던 이스트만 코닥이 파산했을 때, 비슷한 일을 한다고도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라는 회사가 페이스북에게 거금 10억달러에 인수됐다. 이 때 인스타그램의 직원 수는 단 13명이었다.


우버나 스킵더디쉬 같은 플랫폼 사업자는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직업을 구할 수 없는 개인들이 할수없이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서 차를 구하고 보험을 든 후 개인사업자로서 일할 뿐이다. 이들이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사고가 나도 우버나 스킵더디쉬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업자는 이들에게 커미션 외에 어떠한 혜택 - 의료보험, 유급휴가, CPP contribution 등등 - 도 줄 필요가 없다. 다시, 어마어마한 프라핏!


이와같이 자본가 계급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성공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경제활동으로 부터 배제시키고 있다. 괜히 요즘 청년 실업률이 높은게 아니다.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다. 노동의 종말이 코앞이다.


자본주의의 두 축은 생산과 소비다. 어느날 사람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노동자 계급이 생산활동에서 빠르게 배제되면 소비는 누가하지?


기본소득제 혹은 UBI 가 대두된 이유다.


사람들이 제대로 돈을 못벌면 저비용으로 생산을 해도 의미가 없다. 그걸 소비할 사람이 없으면 자본가는 이익을 가져갈 수 없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냥 돈을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이 대두된 것이다.


이 건으로 세계 여러나라에서 여러가지 연구와 실험이 진행중이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지, 이것이 과연 사람들의 노동 의욕이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활발한 담론이 학계, 재계, 정치계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누구도 빨갱이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거다. 역사적으로 하층민에게 뭔가를 주려 할 때, 항상 빨갱이 소리가 나왔다. 처음 노동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처음 일반 의료보험을 주도한 세력은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처음 학교 무상급식을 주도한 세력은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지금 전 국민에게 그냥 돈을 나눠주자는 공산당스러운 이야기를 하는데 그 누구도 빨갱이 소리를 입에 담지 않는다. 재밌는 현상이다.


조만간 공산주의의 이상이 더 발전된 형태로 실현될 전망이다.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를 지향했던 그 때 보다 어쩌면 더 진일보한 형태다. 자본가 계급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산한다. 그로 인해 증식된 자본을 노동자 계급에게 헌상하고 노동자는 다만 생산된것을 소비만 하는 세상이 코앞이다.


인류는 이제 노동에서 해방될지도 모르겠다. 노동이 신성하다느니 자기실현의 수단이라느니 하는 말도 다 자본가들이 예전에 만든 불싯이다.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매일 나가야하는 직장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이제 자본가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서 프롤레타리아에게 봉사해야만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UBI가 도입되면 이제 노숙자는 없어질 것이다. 신용불량자는 사라질 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 또한 없어질 것이다. 모든 정치적인 아귀다툼도 조금은 단순해질 것이다. 그냥 올해의 UBI 인상폭을 크게 하는 정치인이 더 인기를 끌 것이다.


향후, 자본주의는 완전히 빨갱이가 되어 우리에게 봉사할 것이다. 아 씨, 너무 일찍 태어났어!

(끝)

자전거 6) 타락해 버린 육체와 고급 자전거의 역설


오래된 동네의 시장 골목 입구 쯤에는 보통 허름한 자전거포가 있다. 입구에 세발 자전거부터 아동용 자전거들 그리고 짐 자전거들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애용하던 유사 MTB 혹은 철티비들도 있었다. 대충 맞춤한걸 찍어 놓고는 흥정을 했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15만원 주쇼.'

'12만원에 하시죠?'

'에이~ 13만원에 가져가쇼.'

'딜!'


이런식으로 자전거를 사고는 했다.


제주도에서 자전거의 신기원을 경험한 후 나도 자전거 전문점을 갔다. 거기에는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분위기에 알맞는 와인을 추천하는 소믈리에가 있듯이 자전거 전문가인 '메카닉'이 있었다. 나는 메카닉에게 제주도에서의 경험과 나의 자전거 용도에 대해서 설명했다.


메카닉은 나의 신장을 대충 보더니 먼저 프레임 사이즈를 정해줬다. 와, 고급 자전거는 사람 키에 따라서 프레임사이즈까지도 정해지는구나, 깨달았다. 한참 후에 나에게 24단 시마노 구동계를 가진 검은색 입문용 MTB가 주어졌다. 비록 이쪽 계통의 자전거 중에서는 싼 거였지만 나로서는 자전거에 처음 지출하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새로 맞춘 자전거는 제주도에서 경험했던 자전거 보다 더 한층 좋았다. 나는 자전거란 모름지기 항상 소리가 나는 물건인 줄 알고 있었다. 항상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끼익끼익 해야 자전거지! 그런데 나의 새 자전거는 소리가 안나! 오로지 바람 소리와 타이어가 포장도로와 만나 마찰하는 소리만이 들려 왔다. 지이이이잉~ 하는 타이어와 도로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나에게 황홀경을 줬다.


나는 싸구려 철티비로도 빠른 라이딩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면 속도를 올려 따돌리곤 했다. 헬멧을 쓰고 몸에 착 달라붙는 저지를 입고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쓰고 비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나는 곧잘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내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내면 앞서가던 라이더가 놀라서 선두를 양보하고는 했다. 그런 나에게 본격적인 mtb는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나는 자전거 도로에서 무적이였다. 단, 로드바이크는 빼고!


이제 더 한층 즐거운 자전거 출퇴근을 즐길 일만 남았는데, 맙소사! 세상 일이란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나는 더 이상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수 없게 됐다. 한동안 자전거 출퇴근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이 본격적인 mtb는 틀림없이 곧 도둑 맞을거다. 이것을 밖에 묶어 두고 회사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시 옛날에 타던 싸구려 철티비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나의 타락한 몸이 더 이상 싸구려 자전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걸핏하면 체인이 벗겨져 버리는 싸구려 구동계는 나에게 좌절감만 주었을 뿐이다.


결국 자전거 출퇴근은 포기하고 주말에만 레저 삼아서 새로산 MTB 라이딩을 즐겼다. 이거 뭐냐! 오히려 자전거를 더 못 타게 되어 버렸다.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 차라리 제주도에서 그 시마노 구동계를 쓴 자전거를 안 만났더라면 나는 지금도 행복하게 자전거 출퇴근을 했을 텐데… 부처님 말씀이 맞다. 좋은 것은 항상 나쁜 걸 동반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회사에 개인 사무실과 24시간 지하 주차장 이용권한이 생겼다. 드디어 자전거를 회사의 내 방이나 주차장 차 안에 보관할 수 있게 됐다. 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옛날처럼 마실을 다니다가 자전거를 묶어놓고 카페나 식당을 간다든가, 쇼핑을 한다든가 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전거를 모셔야만 하는 이런 상황이 싫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계속)


진화론이 부정된다면 과학자들이 가장 열광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광속 불변의 법칙 하에서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길이가 수축하고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는 정밀한 시계를 비행기에 탑재한 실험에서 사실로 증명되었다. 여기서 유도된 공식 하나 -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광속의 제곱 - 에 의해 인류는 핵발전을 하고 핵폭탄을 만든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는걸 발표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이다. 개기일식 하에서의 별관측을 통해 사실임이 밝혀졌다. 평소 햇빛에 가려져서 볼 수 없었던 별은 방정식에 의해 예상됐던 왜곡된 지점에서 정확히 발견됐다. 인류는 중력에 의해 공간이 뒤틀리고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괴상한 현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지구상에 GPS 위성들은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을 보정하며 작동하고 있다. 즉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하지 않고서는 GPS가 작동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살펴보다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론상의 문제일뿐 실제로 이런 천체가 존재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게 바로 블랙홀이다. 현재 우리는 우주 공간 곳곳에 블랙홀이 그득그득 존재함을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을 통해 천체의 중력에 큰 변화 - 예를 들어 중성자별의 충돌 같은 것 - 가 생기면 중력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파장은 너무나 미미하여 인간의 기술로는 결코 검출할 수 없으리라 예상했다. 2015년 인류는 드디어 중력파를 직접 검출했다. 관련자들은 노벨상을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에 의하면 우주가 수축하거나 팽창해야 함을 깨달았다. 안정되지 않은 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라는걸 도입하여 방정식을 보완했다. 관측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 도입을 철회했고 자기 인생의 최대 오점이라고 여겼다.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의 양자역학을 혐오했다. 그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라고 닐스 보어에게 일갈했다. 새까만 과학계 후배인 닐스 보어는 물러나지 않고 '신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지는 우리가 왈가왈부 할 바가 아닙니다' 라고 되받아쳤다.


결국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고 있는 걸로 밝혀졌다. 현재 우리는 양자역학에 의해 동작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 토론장에서 신을 들먹거렸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계에서는 조롱의 아이콘이다.


단지 방정식만으로 상상조차 힘든 블랙홀과 중력파가 예견됐다. 그리고 우주가 정적으로 영구히 존재할 수 없음을 예견했다. 현재 인류는 블랙홀의 사진을 찍었고 중력파를 직접 검출했다. 우주는 가속팽창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수학이 우주를 기술하는 언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이며 과학의 위대한 점이다.


이렇게나 위대한 아인슈타인도 증거가 드러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과거의 주장을 철회했다. 과학의 위대한 점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룩한 위대한 성과는 새로운 분야에서는 아무런 권위를 발휘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은 꾸준히 발전하여 현대 디지털 문명을 일궜다. 과학의 위대한 점이다.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미덕으로 여긴다. 과학은 모든걸 의심하면서 시작한다. 모든 의심을 넘어섰을 때에야 이론으로서 정립된다. 종교가 근거 없는 권위로 아무리 부정해도 과학은 발전한다. 아무리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해 봤자 '그래도 지구는 돈다'. 조잡한 지적 설계론을 들이대도 진화론은 백수십년간 깨지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과학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만약 진화론에 반하는 증거(아주 쉽다. 공룡과 유인원 화석이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기만 해도 진화론은 와르르 무너진다)가 나와서 진화론이 부정된다면 과학자들이 가장 열광할 것이다. 난공불락의 뉴턴역학을 상대성이론으로 깨부순 아인슈타인이 슈퍼스타가 됐듯이 진화론을 깨부순 과학자도 일약 슈퍼스타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대체할 새로운 이론을 찾아 연구에 돌입할 것이다. 새시대의 다윈이 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종교가 실세계에서 힘을 잃어 과학과 일상생활에서 영향력이 약해진 이 시절, 이 장소에서 살고 있는게 너무 다행이다. 신께 이 행운을 감사드린다.


세이노의 가르침 11) 와, 꼰대다!

 


"뜨거운 물이 안 나와!"


메인 베드룸 욕실에서 샤워 하던 아내가 소리쳤다. 기계실에 내려가 물탱크를 살펴보니 열심히 도시가스를 태우며 물을 데우고 있는 중이었다. 항상 출근하기 전에 30분 이상 샤워를 하던 아들과 아내가 동시에 샤워를 하고 있었다. 이미 아들녀석이 더운물을 다 써버린 이후 였으니 지금은 미지근한 물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내에게 사정을 얘기한 후 물탱크를 살펴보느라 더러워진 손을 씻기 위해 나도 욕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었다. 우리 집엔 세 식구가 있는데 욕실이 세 개다. 아들녀석만 샤워 시간을 짧게 가진다면 동시에 세 명이 샤워를 해도 된다.


내가 어릴 땐 세 가구가 마당에 있는 단 하나의 수도꼭지를 공유했다. 지금은 일인당 하나씩 화장실과 욕실이 있다. 장족의 발전이다.


복습 : 가난뱅이들의 행진! 세이노의 가르침 - 4


한지붕 세가족이 마당에서 양치질하고 세수했다. 샤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그저 1, 2주에 한 번씩 대중목욕탕에 가는게 고작이었다. 겨울에는 큰 냄비에 물을 끓여서 찬물과 섞어 머리를 감았다. 한겨울 강추위 속에서 바깥에서 세수 하는게 고역이었다. 연탄 가스 중독 사고 이후에 연탄보일러를 내 방에 설치했는데 외부 방바닥 밑부분의 밸브를 열면 더운 물이 졸졸 나왔다. PVC 파이프를 통과하며 방바닥을 뎁힌 그 물은 강렬한 플라스틱 냄새를 내 뿜었다. 그 물로 머리를 감은 나는 그 불쾌한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녔다.


지금 내 아들의 나이때 나는 그렇게 집에서는 샤워도 못하고 대충 마당에서 간단한 세수만 한 후 회사에 다녔고 지금의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돌아다녔다. 내가 젊었을 때 내 맘대로 샤워를 못 했던 그 생활환경의 업보가 역으로 내 아들에게 나타나, 그 애는 매일 아침 30분 넘게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는 샤워를 하고 회사를 가나 보다.


원할 때 맘대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결혼하고 신혼집을 구했을 때였다. 상가 건물 3층에 위치한 신혼집은 거실이 있고 방이 두 개였으며 욕실도 딸려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집 앞 바로 앞에 철공소가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1년만 살고 이사를 가기로 했다. 배가 남산만해진 아내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양재동 서울 시민의 숲 뒤편에 서울시와 과천시 경계부분에 연립주택을 구했다. 이번엔 방 3개짜리 전세였다. 공기도 좋고 전망도 좋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2년 넘게 살았다.


대학생 때 일요일 날 TV를 보노라면 '전원일기' 라던가 '한지붕 세가족' 같은 드라마를 하고는 했다. 나는 그런 드라마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혹은 우리 세입자들처럼, 나도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걸로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예상보다는 엄청 호화로운 신혼생활을 했다. 그동안 내 월급을 관리하던 모친이 선뜻 신혼자금을 대준 덕분이다.


비록 마음대로 샤워도 못 하던, 수도꼭지 하나를 세 가족이 공유하는 환경이었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절을 아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 아들을 갑자기 내가 자랐던 그 환경으로 끌고가서 살라고 한다면 그 애는 행복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요즘 세대는 단칸방은 아예 논외고, 빌라나 연립주택도 기피하며,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러한 기대수준이 최근의 만혼 혹은 비혼 현상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내가 여기서 '나때는 말이야…' 하며 우리 집에 세들었던 신혼부부나 나의 상가건물 생활을 떠벌리면 영락없는 꼰대다. 그냥 생활환경이 높아졌으니 그렇게 인식이 변하는 것으로 이해할 뿐이다. 계속 내가 자랐던 환경을 내 아들 세대에게 강요한다면 뒤로 뒤로 계속 퇴보 하여 다시 동굴에서 살라고 해도 불만을 말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나의 시대를 살았고 지금 세대는 현대를 살아야지! 우리가 아무리 단칸방이나 빌라에서 살아왔다 해도 상하수도도 없는 초가집 움막에서 살 수는 없었을 거다. 요즘 세대에게는 단칸방이나 빌라가 우리 세대가 바라보는 초가집 움막일 수도 있는 거겠지!


+++


세이노도 젊을 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그는 그 때 차고를 빌려 방처럼 꾸미고 살았다. 그는 거기서 비참하게 살았다. '3분이상 잡담 할 거면 떠날 것' 이라는 말을 벽에 붙여 두고 친구가 오면 보여 줬다. 그리고 오로지 부자가 되기 위한 준비만 했다.


세이노는 말한다. 당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자신처럼 살아라.


부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집은 자신의 직장과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통근 시간을 절약하고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비결은 돈을 최대한 절약하는 것이다. 직장 옆에 자신처럼 아무 집이나 최대한 싼 곳을 구해 들어가 살아라. 최대한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며 저축하라. 현재의 행복은 사치일 뿐이다.


만약 결혼을 했다면 신혼살림 같은 것은 절대 사지 말아라. 각자 쓰고 있던 살림들을 모아서 살아야 한다. 침대? 사치일 뿐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 가족과 친구와 기타 등등의 지인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 알콩달콩 신혼생활도 사치다. 신부는 신랑이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만 할 수 있도록 내조하라.


당신이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여기저기 그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세이노는 이들을 날파리라고 부른다. 가족 날파리, 친구 날파리, 기타 등등의 날파리를 조심해라. 그들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그저 당신이 부자가 되는걸 방해하는 날파리들일 뿐이다. 최대한 돈을 움켜쥐어라. 그리고 그동안 공부를 통해 쌓은 지식을 사용하여 몸값을 높이며 재테크를 해야 부자가 된다.


글쎄, 난 차마 남들에게 샤워도 맘대로 못 하던 시절의 '나처럼 살아라' 라는 말을 못 할 것 같은데, 세이노는 서슴치 않고 그런 말을 한다. 나는 결혼 전에 내 모든 월급을 모친께 바쳤는데 세이노는 가족을 날파리라고까지 하네? 성공한 부자니까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이겠지!


(계속)


공산당 만세 7) 선거 게임



공산당 만세 - 목차


자본가 계급의 등장

민주주의의 도입

자본주의

자본의 속성

자본주의 침공

재갈물린 자본주의

자기 거세의 시대

현대 계급론


<...전략…>


당신이 1 에서 10으로 나뉘어진 계급 구조 속에서 1, 2 등급의 상위 계급이라면 당신은 틀림없이 보수 혹은 우파다.


당신이 4, 5, 6 층위의 중간에 위치한다면 선거 전략가들은 당신을 진보 혹은 좌파로 간주한다.


다시 당신이 9, 10 분위의 하위층이라면 당신은 언제나 보수 혹은 우파에 투표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즉, 선거라는 게임은 자본가를 포함한 상위 계급과 극빈층 계급이 연합하여 중간 계급을 포위하고, 중간 계급은 자신의 분포 영역을 위아래로 넓히기 위한 싸움에 다름 아니다. 아주 단순히 말해서 3, 7, 8 층에 위치한 계급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왜 부자와 빈민은 같은 편일까? 다음편에서 살펴보자.



선거 게임


복잡다단한 이익그룹인 자본가 집단은 최고 권력을 쟁취한 후, 서로 유혈 충돌 없이 권력을 영구히 향유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정치체제였던 민주주의를 발굴해내 채택했다고 이 글의 처음에 말했다. 사실 이 때는 민주주의라는 말은 너무 과대평가다. 그저 다수결로 현안 문제에 대처하고 필요한 법률 및 제도를 만들어 나갔다.


자본가 계급 집단은 서서히 두 당파로 헤쳐모였는데 현재 체제에 만족하는 파벌, 그리고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체제를 수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파벌이었다. 전자를 보수파라 하고 후자를 진보파라고 한다. 보통 보수파가 진보파보다 한층 더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보파는 제도 개혁을 통해 보수파의 과잉된 자본을 쟁취하려 시도했다.


이들 혹은 이들을 대변하는 의원들은 의사당에 모여 현안을 토의하고 다수결로 정책을 결정했다. 이 때 보수파가 주로 오른쪽에 앉아서 이를 우파 혹은 우익이라 하였으며 진보파가 좌측 자리를 차지하여 좌파 혹은 좌익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 때의 투표는 젠트리, 즉 자본가 계급 이후에 등장한 유산계급만의 특권이였다. 그런데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보수파를 이기기 힘들었던 진보파는 투표권을 점차 일반 시민 계급에게 확대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물론 우파의 강경한 반발에 부딪쳤지만 일반 시민 계급의 후원을 등에 업은 좌파의 개혁이 점차 힘을 얻었다.


약 100년에 걸쳐 점점 투표권이 확대되었다. 처음엔 젠트리, 그 후엔 도시의 중산 계급, 다시 도시의 소시민과 노동자, 또 농촌과 광산 노동자, 30세 이상의 여자 등등으로 투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진보파는 투표인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신들이 유리한 국면일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고 오히려 점점 보수파가 유리한 투표결과가 나오게 된것이다.


현재와 같은 완전한 보통선거는 1928년 영국에서 우파의 주도로, 그리고 좌파의 강렬한 반대속에서 이뤄졌다. 다시한번 반복한다. 보수파가 진보파의 반대를 누르고 보통선거라는 민주주의 의식을 일반 대중에게 하사했다.


물론 보수파가 선하고 이타적인 집단이라서가 아니다. 보수파는 빈민 계급이 우익 자본가 계급의 강력한 아군임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왜 보수파의 편인가?


아무리 고민해도 이 글을 읽는 일부 사람들의 기분을 안나쁘게 하면서 논할 방법이 없다. 바로 들어가자. 뭐, 욕먹고 오래살고 말지, 까짓거!


첫째, 빈민층은 교육수준이 낮다. 그들은 현상을 넓게 살피지 못한다. 그래서 부자나 권력자의 주장이나 의견을 그냥 그대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여론조작의 희생자가 될 확률이 무척 높은 계급이다.


둘째, 빈민층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진짜 보수주의자들이다. 하루벌어 하루먹는 상황에서 뭔가 크게 변화가 생긴다면 그 하루벌이 조차도 뺏기게 되는것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이는 어느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사회에 격변이 생기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계층이 이들이다.


셋째, 이전 글 현대 계급론에서 언급한 명품 소비와 카푸어 현상과 관련이 있다. 빈민층은 자신을 부자나 권력자와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자본가의 마인드로 생각하고서 철저한 보수주의자가 된다. 이들이 바로 폐지를 주으며 종부세, 상속세 세금폭탄을 부르짖는 이들이다. 이들이 감옥에 간 삼성가 이재용을 불쌍해 하는 계층이다. 이 극빈층들은 투표를 할 때 만큼은 - 마치 명품을 사듯, 중고 외제차를 사듯 - 자본가로 빙의하여 보수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다.


공산당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공포는 이해할만 하다. 러시아에서 적백내전 이후에 귀족, 지주, 자본가의 말로를 지켜본 상황에서, 그리고 소련의 성립 이후에 차츰차츰 자신들의 국경쪽으로 다가오는 공산주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오줌을 지렸겠는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본주의에 재갈을 물리고 자신들의 피같은 자본을 풀어내어 노동자들을 쁘띠 부르주아로 부유하게 만들어 공산혁명을 저지하였겠는가 말이다.


중간층 계급은 공산주의에 대해 현대사회를 조각해낸 한 축, 혹은 안타까운 그 무언가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빈민층은 아직도 공산당에 대한 혐오감을 자본가 계급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 자본가의 공산당에 대한 무차별한 여론 조작에 더해서, 자신들에게 그래도 하루하루 먹을걸 제공해 주는 자본가 나으리를 처단한다는 공산당이 싫었을 것이다. 또한 빈민층은 대부분 독실한 종교인인데 공산주의는 무신론적 이데올로기이니 이 부분도 하층 계급의 공산당 혐오증에 한 몫을 했을 거였다.


아무튼 이제 좌파와 우파는 본격적으로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다. 큰 틀에서는 자기가 대변하는 자본가 계급을 위해 일하지만 표피적으로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일반 대중의 취향에 맞춰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전술했다시피 상위 1, 2 계급은 고정된 보수파다. 중간 4, 5, 6 계급은 거의 대부분 진보파다. 다시 하위 9, 10 계급은 역시 보수파다. 이제 빼앗아와야 할 것은 3, 7, 8 계층이다. 제 3 계급은 어느정도 자산을 갖고 교육받은 계층이다. 이쪽은 그저 정책만을 보고 어떨때는 우파에, 어떨때는 좌파에 투표한다. 또한 유권자의 수도 한줌에 불과하다. 따라서 격전장은 7, 8 계급이 된다.


보수파의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이 7, 8 계층, 즉 평균보다 약간 아래 계급 혹은 극빈층보다 약간 윗 계급을 닮아간다. 말끝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낙태에 경악하고, 격렬한 반공주의자에다가, 고전적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추구한다.


이래도 문제는 없다. 1, 2, 3 계급은 철저히 자기의 이익에 따라서 투표하는 사람들이므로 보수파의 정치인들이 하층민을 사로잡기 위해 어떠한 광대짓을 해도 문제삼지 않는다. 진보파의 정치인들은 이 부분에서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4, 5, 6 층의 유권자는 고리타분한 후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표를 기권하거나 제 3의 파벌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불만을 표출한다.


우파의 정치인이 이런 유리한 싸움터에서 아주 효율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바로 낙인찍기다.


'저자는 빨갱이다.'

'저 좌파 후보는 무신론자다.'

'저 진보 여자 후보는 낙태를 찬성한다.'

'저놈은 전과자다.'


이런 낙인을 진보파 후보에게 붙여버린다. 하위 계급은 대부분 유신론,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의 보수적인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진보계층의 가치와 충돌한다. 때문에 어떠한 정책이나 비전보다 이런 딱지가 대부분의 7, 8 계층의 마음을 뒤흔들며 이에 더해 9, 10 계층의 충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진보파 정치인의 과거 업적이나 공약은 이러한 딱지 아래 철저히 가려진다.


또한 진보파의 정책에 대해서도 낙인찍기가 횡행한다. 트럼프 집권 이후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라는 집회에 참석한 일단의 빈민들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Affordable Care Act로 보호받고 있다. 빨갱이 오바마가 만든 오바마케어를 빨리 태워버려야 한다.'


음… 참 웃을수만은 없는 희극인데, Affordable Care Act 가 바로 오바마케어다. 공화당이 민주당의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 이름을 오바마케어라고 딱지붙여 빈민층이 이를 오해한 것이다. 이처럼 낙인찌기는 강력하다.


또다른 효과적인 전략은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할 때 소위 스타워즈 계획을 수립하여 소련과의 갈등을 심화시켜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또한 마거릿 대처도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신자유주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외부의 적은 내부의 반대와 불만을 잠재우는 강력한 도구다.


내부의 정치 이슈에서 있지도 않은 내외부의 적을 만들어 혐오를 불러일으키는데 탁월한 정치인이 혐오정치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미국의 극빈층이 가난한 이유를 불법 이민자 때문이라고 규정했고 멕시코에 장벽을 쌓는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백인 빈민층들은 트럼프에 열광했다.


'그래, 우리가 이모양 이꼴인건 저 불법 이민자, 난민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여덟살때부터 억만장자였던 트럼프가 미국 레드넥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가 상위 1% 를 위한 감세안을 발표할 때 백인 빈민들은 연단 아래에서 환호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극우 경향의 정치인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젊은층의 우경화도 목격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중산층이 붕괴하여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7, 8, 9, 10 계급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하위 계급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우경화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 큰 문제는 유권자의 이런 수준에 발맞춰 점점 더 많은 정치인들이 난민이나 이민자같은 소수자 혹은 타민족을 향한 혐오의 정치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한편 저 멀리 극동의 남한에서 최근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선거에 승리한 측의 선거운동이 주목을 끈다. 이들은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을 부추겨 선거에 승리하는데 성공했다. 과거에는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지역갈등을 유발하여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던 당파였는데 이제 새로운 방식의 신박한 혐오정치를 고안해냈다. 누구하나 통합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대갈등을 이용한 증오와 분열의 선거운동이 '세대포위론' 이라는 현명한 방법이라며 자화자찬이다. 다음에는 뭐를 갈라서 혐오하려나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아주 나쁜 생각이다.


. 중산층이 두터운 항아리형 계급구조는 진보쪽에 유리한 형태다.


. 빈곤층에 인구가 많은 피라미드형 계급구조는 보수쪽에 유리한 형태다.


. 신자유주의 체제 이래로 항아리형 계급구조에서 점차 피라미드형 구조로 변했으며 이에 따라 각국이 보수화,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신자유주의는 보수파가 주로 주도한 체제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과연 우파는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라는 현 상황을 진정으로 개선하고 싶어할까?


(계속)


족 됐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진짜 족 됐다



'조~옥 됐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진짜 족 됐다.'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의 인상적인 도입부다. 화성에서 홀로 조난당한 과학자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싸게 세일을 하고 있길래 샀다. 이 때가 나도 영어 소설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후에 이 소설이 영화화 됐을 때 아내와 같이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극장을 방문하게 된 계기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


이제 가벼운 영어 소설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가지 읽을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를 읽다 보니 어떤 통찰이 생겼다. 먼저 외국 작품이 영어로 번역된 경우 읽기가 참 쉬웠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참 쉬운 영어로 쓰여져 있더라. 영미 작가가 여러 가지 기교를 섞어서 쓴 문장보다 일본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 나같은 외국인 독자 입장에서는 읽기가 훨씬 쉬웠다.


스티븐 킹 같은 경우는 사전에도 없는 요상한 단어들을 지 맘대로 만들어서 여기저기 쓰고 있더라. 또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오래된 작가들의 문장은 어찌 자연스럽게 읽히지가 않더라.


여튼 영어문장을 읽는다는게 이제 더 이상 정신 노동이 아니라 여흥의 한 부분으로 나에게 다가와서 참으로 기뻤다.


내친김에 캐나다 중고생들의 필독서라는 The Giver 라는 소설도 사서 읽었다. 이 책은 나보다 내 아내가 너무나 좋아해서 시리즈로 나온 후속편 2권까지 모두 샀다.


여행을 다닐 때에는 전자책에다가 주로 한국 책을 넣어서 읽었다. 그런데 수개월간 북미를 여행하다가 그만 전자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어야 되는데 읽을거리가 없어져서 곤란해졌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근방 상가의 서점에서 하얗고 두꺼운 어떤 책을 아주 싸게 세일하고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은 사피엔스였다. 이스라엘 작가가 쓴 책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었다. 여행 중에 자기 전에 읽으려고 샀다. 그리고 그 책에 홀딱 빠졌다.


사피엔스는 가벼운 소설이 아니다.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경제 문화 종교에 대한 인문 교양서적이다. 이 책이 자주 인용했던 총 균 쇠도 원서로 읽었는데 역시 아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나도 이제 심각한 책도 영어로 읽을 수 있구나 하며 에햄 내심 잘난척 했는데 최근 큰 코 다쳤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아이고야 도대체가 문장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문장 속에 여기저기 쉼표가 난무하며 관계대명사 행진에 도대체 해석이 안 돼, 내가 책을 읽으면서 즐기는 건지 내 스스로 공부 하는 건지 어느 순간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이게 검은게 글자고 하얀게 종인데, 나는 도대체 이걸 보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공자 - 중국의 고대 철학자 - 님이 나에게 찾아오고 뇌의학의 어려운 단어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서 나 스스로 고문하는 수준이 되면서, 이게 뭐 하는 건가 수개월간 회의에 빠져 있다가, 최근에야 드디어 책장을 닫게 되었다. 만세!


하여튼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스스로 영어 독해를 잘 한다는  자신감을 깡그리 잃어버렸다. 자려고 누워서 이 책을 펴면 미처 한 문장을 채 읽기도 전에 잠에 곯아 떨어졌다.


'2 더하기 2는?'


다음 책으로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사서 읽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나는 눈을 떴는데 생판 모르는 방에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 관이 꽂힌채로 발가벗겨서 눕혀져 있으며 내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딘지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와중에 누군가가 2 + 2 답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역시 마션의 작가답다. 흥미진진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 드디어 주인공 나에게 룸메이트가 생겼다. 까무룩 잠들기 위해 책을 폈는데 3시간이 넘게 훌쩍 지났다. 결국 늦잠을 자서 오늘 배달에 늦을 뻔 했다. 밥도 못 먹고 5시간을 꼬박 쉬지 않고 달려서 겨우 10분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휴~ 책이 너무 재미없어도 문제, 너무 재밌어도 문제다.


내가 심심했던 이유는 어려운 책때문이었다. 다음 책으로 미치오 카쿠의 인류의 미래가 대기 중이다. 요새 안 심심하다. 신난다.


Childhood's end - Sir Arthur C. Clarke - 1


제목과 같은 책을 읽었다. 저자인 아서 C 클락은 세계 3대 SF 작가 중 한명으로 유명하다. 그의 명언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가 많이 알려져 있다.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타당하다. 수천년 전에 살던 고조선 사람을 백수십여년 전의 구한말 시대에 떨궈놓으면 별 어려움 없이 농사지으며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세기 전의 사람을 현대에 이동시키면 그 사람은 온통 마법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볼 것이다. 자동차, 지하철, 비행기 등등이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을 목격하며 어안이 벙벙해 지겠지! 인터넷이니 컴퓨터니 휴대폰이니 하는 것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과연 현대에 떨어진 구한말 사람은 이 마법과도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최근 이러한 마법과도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고 있는데 GPT-4 가 그것이다. 지식 노동자들은 이제 큰일났다. (자율주행이 먼저 나올 줄 알았더니 의사나 변호사를 능가하려 하는 인공 지능이 먼저 나올 줄은 몰랐다. 제길!)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수천년의 변화보다 최근 100여 년 간의 변화가 훨씬 과격하다. 그리고 나도 이러한 진화에서 점점 뒤쳐지고 있다. 프린터의 와이어리스 다이렉트 기능을 쓰려고 애를 쓰고, 겨우 음식 주문을 하나 하기 위해 앱을 깔려다가 장시간 헛고생을 하는 등, 최신 트렌드에 점점 적응하기가 힘들다. 평생 컴퓨터를 사용해서 밥벌어먹고 살던 놈이 이제 점점 컴맹이 되고 있다.


'유년기의 끝' 으로 번역된 위 책은 인류와는 비교도 안되게 고도로 발전된 외계 문명이 지구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계속>


자전거 5)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다. 그리고 타락하다.



여러해 전 휴가 때 아내와 같이 3박 4일간 제주도 자전거 일주 여행을 했다. 제주 시내에서 두 대의 자전거를 렌트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중간 중간 만장굴도 가고 우도도 들리고 성산 일출봉이니 섭지코지니 하는 관광 명소를 둘러 봤다.


이 일은 이것 대로 행복한 추억이지만 나에게는 심오한 자전거의 세계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도 자전거를 잃어버려서 비싼 자전거는 전혀 사지 않았다. 어차피 두 바퀴가 굴러가는 것일진대, 비싼 자전거는 뭐 특별나게 다를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래서 항상 도둑맞아도 아깝지 않을 만한 10만원대 자전거만 타고 다녔다.


싼 가격의 자전거라도 보통 12단에서 21단 정도의 기어가 달렸다. 흔히 유사 MTB 라고 불린다. 핸들바에 기어 조정을 하는 노브가 있었는데 이를 잘 조정하여 달리면서 기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기어를 변경하다가 체인이 빠지곤 했다. 그래서 기어 변경은 최대한 자제하며 자전거를 탔다.


어쩔 수 없이 기어를 변경해야 할 때는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절대 큰 힘이 체인에 가해져서는 안된다. 달리고 있는 속도보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서 기어를 조정해야 했다. 그러니까 오르막에서 낑낑거릴때는 절대 기어를 조절해선 안된다. 해서 오르막 오르기 전에 기어를 미리 조정해 놔야 한다. 안 그러면 체인이 빠져버려서 손에 기름때를 묻히며 다시 체인을 걸어야 한다. 특히 체인이 뒷바퀴 스프라켓 사이에 끼어 버리면 낑낑 용을 쓰며 빼내야 했다.


제주도에서 빌린 자전거는 신세계였다. 기어 변경 노브가 디지털 식이였다. 딸깍 딸깍 이쪽 레버를 누르면 기어가 올라가고 딸깍 딸깍 저쪽을 누르면 기어가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와! 자전거 기어 변경이 이렇게나 쾌적할 수 있는 것이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어 변경이 가능했다. 그리고 절대 체인이 빠지지 않았다. 아! 이래서 비싼 자전거를 사는 거였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자전거에 대해서 좀 공부했다. 생각보다 자전거의 세계는 심오했다.


먼저 프레임 소재. 하이텐강을 쓰느냐 크로몰리를 쓰느냐 알루미늄 합금을 쓰느냐 혹은 카본 소재를 쓰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하늘로 솟구쳤다. 비쌀수록 프레임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 진다.


구동계의 부품도 등급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빌린 자전거에는 시마노의 초보적인 등급이 사용됐었다. 그런데 이게 알투스니 투어니니 알리비오니 데오레니 XTR 이니 여러 등급이 있고 높은 등급은 엄청난 가격이 형성 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보다 가볍고 튼튼하며 정밀하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 왔으면서 전혀 몰랐던 세계였다. 드디어 자동차 한 대 값의 자전거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여튼 나는 아직도 도난 걱정 때문에 비싼 자전거를 사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동계는 최소한 시마노 혹은 그에 준하는 부품을 쓰는 자전거를 사게 됐다. 그래서 자전거 구매 가격이 과거보다 몇 배나 올라가 버렸다.


모르는게 약일 때가 있다. 나는 쌀가게 배달용 짐자전거를 타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시마노 구동계가 달린 자전거를 한번 맛본 뒤로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싸구려 자전거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돼버렸다. 타락해 버렸다.


(계속)


통관을 기다림


 나는 북미를 누비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다.


트럭 운전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직업 같지만 어떤 때는 한 장소에서 꼼짝없이 장시간 기다려야 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짐을 싣거나 내릴 때 쉬퍼 Shipper 나 리시버 Receiver 의 사정에 의해 하루, 이틀 기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2시간 이내에 다 끝난다. 왜냐하면 2시간 이상 기다리면 회사는 시간당 얼마씩 운전사에게 수당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수당은 쉬퍼나 리시버도 부담한다.


트럭이 고장나 하루 이상 수리할 때도 한정 없이 기다려야 한다.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방 소도시에서 트럭이 고장나 3박 4일간 호텔 생활을 한 적도 있다. 물론 이 호텔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그리고 하루당 150불 정도 수당이 지급된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혹은 그 반대로 짐이 운반될 때는 미리 edi에 의해 전자적으로 통관절차가 진행된다. 운전사는 통관 서류를 이메일로 받고 이거를 트럭스탑에서 인쇄하거나 자체적으로 인쇄하여 국경을 통과하면 된다. 그런데 간혹 이 통관절차가 한정없이 길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국경 근처에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이런 일은 1년에 보통 두 번 정도 일어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캔사스에서 냉동 피자를 실을 때는 여름이었다. 에어컨을 켜고 1박 2일간 달리고 달려 국경 근처까지 왔지만 아직 통관이 안 됐다. 그리고 지금 트럭을 멈춰 세운 채 추워서 히터를 틀어 놓고 10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미 캘거리 근처에 도착했어야만 하는데 아직 노스타코타 깡촌 트러스탑에 묶여 있다. 1시간 40분만 가면 사스카추완 국경인데 통관 서류 없이 갈 방법이 없다. 더욱 안 좋은 것은 통관에 지체된 시간에 대해선 회사에서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꼼짝없이 공짜로 인생을 낭비하는 중이다. 젠장 맞을...


날은 이미 어두컴컴해졌다. 만약 지금 통관이 된다면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꼼짝없이 캘거리까지 12시간 이상 밤 운전을 해야 한다. 차라리 이 밤을 지나고 내일 일찍 통관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디스패치가 일정을 재 조정 하고 좀 여유를 얻을 수 있겠지. 물론 나의 수입은 팍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2023.11.15


아내가 무서워진다. 아내는 무자비하고 치밀한 조련의 여왕이다


사진설명 : 아내는 처음 만난 코끼리마저 조련해 버린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나는 아내의 조련 대상이자 내 모친의 조련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갑자기 아내가 무서워진다. 아내는 무자비하고 치밀한 조련의 여왕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모친은 아내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소싯적에 아내는 어마무시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고기 뷔페에서 모친에게 아내를 소개한 후 아내는 고기를 가지러 자리를 떴다. 모친이 테이블 너머로 상반신을 쑥 내밀어 내 근처로 가까이 숙이고서 속삭이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디게 이쁘다 야! 곱기도 하다! 너 재주도 좋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청상과부인 모친은 나를 홀로 키웠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나는 홀어머니와 자란게 아니라 마치 홀아버지와 자란것처럼 느껴진다. 모친은 호쾌한 남자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거친 세월, 홀로 아들을 키우기 위해 그렇게 변하셨을 게다.


결혼 후 첫 김장을 할 때 아내는 모친의 비법을 보고 신기해 했다. 모친의 김장김치는 꽤 맛있다. 진하게 고은 사골 국물을 풀처럼 섞어서 김치를 만든다.


김장김치가 적당히 숙성이 됐을 때, 아내가 감탄하며 내게 말했다.


'나 지금까지 우리 엄마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와! 이거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인 걸!'


나도 일찌기 장모의 김치맛을 알고 있었지만, 뭐 그렇게까지 많이 차이가 나는건가? 생각했다. 그래도 아내가 모친의 김장김치를 더 맛있어 한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엄니. 엄니 새 아기가 말하길, 엄니 김치가 자기 친정엄마 김치보다 몇 배나 더 맛있다 그러네!'


혼자 모친의 집에 들렀을 때 아내가 김치를 맛있어 한다고 말해 줬다.


모친은 무심한 듯


'그러냐?'


대답하며 쭈구려 앉아 바닥에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모친의 얼굴을 목격했다. 입이 찢어져서 양 귀에 걸렸다. 양 볼에 홍조까지 띠었다. 지금까지 모친과 살면서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찐으로 행복하고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모친이 여자가 되어 있었다.


결혼한지 3년 정도가 지나서 모친과 같이 살기 시작했다. 모친과 아내는 사이가 좋았다. 둘이 같이 공중목욕탕에 다니기도 하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일요일에 소파에 드러누워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노라면 저쪽 부엌 바닥에선 모친과 아내가 마늘 같은 것을 까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끔은 키득키득 하고, 나를 보면서 소곤소곤 말하는게 둘이서 꼭 나를 흉보는 거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얼굴엔 항상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모친은 점점 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같이 살기 시작한지 어느 정도 지난 후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어떡하지? 나 친정 엄마 보다 어머님이 더 좋아지는 거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사실 둘이서 좋아 죽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 둘이서만 놀면서 나 혼자 심심한 걸 뭐.


언젠가 모친과 둘이 있을 때, 아내가 해줬던 말을 전해 드렸다.


'엄니, 어멈이 자기 친정 엄마 보다 엄니가 더 좋다는데?'


'에이, 그냥 하는 말이겠지, 진짜 그러겠냐.'


모친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또 보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양 입가가 찢어져서 두 귀에 걸렸다. 세상 행복한 표정이다.


이 즈음에 아내는 모친의 자랑거리였다. 누구에게나 당신의 며느리를 자랑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영천댁의 이쁘고 착한 며느리를 칭찬하기 바빴으며 부러워하곤 했다. 심지어 모친은 나에게까지 당신의 며느리를 자랑했다.


'이놈아, 내가 인복이 있어 가지고 네가 어멈이랑 만난거여. 고맙지? 이놈아.'


내가 결혼을 할 때 친구들은 아직 대부분 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결혼 생활이 보통인줄 알았다. 고부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주말 드라마에서나 과장되게 묘사되는 것일 뿐이고 실제 생활은 모두 나와 비슷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친구들이 점점 결혼을 하고, 술자리에서 자기 아내와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나의 아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은 고부갈등이라는게 뭔지를 이해조차 못하는 나를 신기해 했다. 아니 모친과 같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사실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나도 이상한 점을 느껴 여기저기 알아보니, 드디어 내가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로또에 연속으로 두 번 당첨된 것과 같은 상황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모친은 말년에 딸이 생겼다. 같이 장도 보고 목욕탕도 가고 수다도 떨고, 항상 웃음기가 얼굴에 맴돌았다. 아내는 완벽한 기교와 치밀한 작전으로 시어머니를 자신에게 홀딱 빠트렸다. 아내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엄청난 행복을 모친에게 선사한 것이다.


오래전 모친은 암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약 일년간에 걸친 병수발은 몽땅 아내의 몫이였다. 아내는 마치 친딸처럼 병상을 지켰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한없이 면목이 없다.


세월이 지나며 아픔이 가라앉은 후 아내는 다시 조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아내의 조련 상대는 오롯이 나 혼자다. 아내의 능수능란한 조련 기술에 의해, 나는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 마냥, 꼬리를 흔들어 제끼고 배를 뒤집어 까고 어쩔줄 몰라하는 강아지마냥, 아내에게 홀딱 빠져 버린다.


아내의 조련 기술에 걸리면 마법이 일어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데 또 사랑에 빠져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 반해버리는 말도 안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아내를 볼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이유다.


나는 전생에 생사를 넘나들며 나라를 여러번 구했나 보다. 혹시 나는 이순신 이었을지도…


*****


아내의 이러한 마수는 아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현재 일어나고 있다. 여기저기 파트들이나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내를 요구하고 있다. 매니저는 아내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로운 스케줄표가 나오면 여기저기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다. 이 때문에 아내는 때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할 때도 있다. 10일 연속으로 휴일 없이 일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언젠가 다른 글에서 계속… 할지 안 할지는 나중에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