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달력을 지배하고 달력은 인간을 지배한다.
1년은 365일이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은 이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다. 이집트인들은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에 생존을 의지했다. 그들은 지평선에 시리우스 별이 나타날 때 나일강이 범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별의 주기가 365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에 따라 시리우스력이라는 달력을 만들었다. 즉 세계 최초의 달력은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도 아니고 태양을 기준으로 한 양력도 아닌 별을 기준으로 한 성력인 것이다. 시리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와 함께 각종 종교 의식이 진행됐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정권을 차지한 후 태양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달력을 제정했는데 이를 율리우스력이라고 한다. 이 달력은 1,50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었다.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하여 새로 만든 그레고리력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달력이다.
동양에서는 달의 움직임을 따라 달력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계절의 변화를 잘 반영하지 못하여 따로 24절기라는 것을 만들어 농사에 사용했다.
철새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듯 인간은 달력에 따라 활동한다. 그래서 달력은 인간의 정치, 경제, 종교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동양에선 권력자가 바뀌면 연호를 사용했다. 중국과 한국, 베트남 등에서 사용된 연호는 왕정의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입헌 군주국인 일본에선 아직도 연호를 사용한다. 쇼와, 헤이세이를 거쳐 현재는 레이와 6년째다.
기독교 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후 전 세계는 예수 탄생을 전후로 한 연호를 사용한다. Before Christ 와 Anno Domini, 즉 BC 와 AD 가 그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AD 2024년 이다.
사회 구조가 복잡다단해지면서 하루를 잘게 쪼개기 시작했는데 바로 시간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해의 움직임이나 물이 떨어지는 양을 측정하여 해시계나 물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 현대는 하루를 24시간으로 잘게 쪼개 쓴다. 수탉이 울면 일어나고 해 떨어지면 자던 사람들이 현대에 들어서는 시계바늘에 쫓겨 다닌다.
이 모든게 가능한 이유는 우리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변두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구는 태양이라는 유일한 항성을 가졌다. 그래서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라는 격언이 가능하다. 해가 여러 개 있는 항성계에선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어떤 날은 해가 두 개 뜨고 어떤 날엔 북쪽에서 뜨거나 남쪽에서도 뜰 수 있는 세상이 있을 수 있다.
많은 항성계가 쌍성계다. 즉 하나의 항성계에 태양과 같은 항성이 하나만 존재하는게 오히려 드물다. 보편적인 항성계가 쌍성계이기 때문에 Type 1a 형태의 초신성이 폭발하며 이를 통해 인류는 멀리 떨어진 은하의 거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초신성을 관찰하다가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연구자들은 노벨상을 받았다. 쌍성계가 일반적이 아니었다면 알아내기 힘든 사실이다.
우리 지구가 은하의 중심부에 있었다면 여러 개의 태양을 가진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소설 Nightfall 이 그런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어떤 행성이 10개 정도의 태양이 있는 시스템에 존재했다. 그 행성에 문명이 싹텄는데 행성 거주민들은 ‘밤’ 과 ‘암흑’ 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항상 한 개 이상의 태양이 하늘에 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어두움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본 적도 없다.
이 행성의 고고학자와 천문 물리학자가 만나 대화를 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고고학자는 자기 행성의 문명이 몇 천년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멸망한 흔적을 발견했다. 물리학자는 잠시 후에 모든 태양이 행성 뒤로 돌아가서 하늘에 태양이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 시기가 곧 온다는 걸 알았다. 마침내 이 행성에 몇천 년 만에 밤이 찾아왔다. 행성 거주민들은 몇 백 세대 만에 처음 밤을 경험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무수하게 반짝거리는 별들이 나타났다. 행성 주민들은 단체로 패닉에 빠졌다. 이들은 어둠을 쫓기 위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에 불을 질렀다. 온 세상이 암흑 속에서 불길에 휩싸여 또 다시 문명은 멸망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재미있는 상상력이지만 실제론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리학에서 삼체 문제 Three Body problem 라는게 있다. 세 개의 천체가 있다면 서로의 중력에 의해 일관된 궤도를 그리는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이작 뉴턴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들러 붙었다. 이 문제는 1800년대 후반 앙리 푸앙카레에 의해 풀리는데, 결론은 “절대 알 수 없다” 이다. 즉 별이 세 개 이상인 세상에선 결코 달력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다.
알파 센타우리 삼체 시스템에 살고 있는 삼체인들은 이런 가혹한 환경에 처해 있다. 이들에겐 달력도 없고 시간도 없다. 오직 크게 stable era 와 chaotic era 가 있을 뿐이다. stable era 는 그들의 행성이 하나의 항성에 붙잡혀 잠깐 동안 예측 가능한 낮과 밤이 있는 때이다. 또한 환경도 활동하기에 적당해진다. chaotic era 는 세 개의 항성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난잡한 궤도를 그릴 때이다. 삼체의 행성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혼란한 궤도를 그리게 된다. 그래서 삼체 문명은 계속해서 멸망한다. 어떨 땐 혹한에 빠져 문명이 얼어붙고 또 어떨 땐 온 세상이 불에 타 문명이 무너진다. 심지어 세 개의 항성이 일직선상에 놓여 행성 자체를 잡아 뜯어 버리기도 한다.
오랜 기간 이 행성에선 이렇게 문명이 생겨났다가 멸망하기를 9000번 이상 반복했다. 그리고 삼체 행성의 구천 몇백번째 문명에서 우연찮게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된다. 1년이 항상 365일 수 있는 세상은 그들에게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라는 천국을 차지하기 위해 함대를 조직하여 지구로 출발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된다.
(계속)
삼체 The Three Body Problem
목차
1) 모택동 때문에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이야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1.html?m=1
2)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2.html?m=1
3) 총균쇠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3.html?m=1
4) 개미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4.html?m=1
5) 폰 노이만과 어둠의 숲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4/5.html?m=1
6) 나는 무엇인가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9/blog-post.html
7) 1년은 365일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