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글은 아래 글의 속편격이다.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blog-post_15.html
여튼 처음에 이런저런 일상 글들, 예를들면 나는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너 어디서 왔니?' 나, 어느날 갑자기 노화에 대한 자각을 한 존재의 슬픈 자화상 '그때 나는 꿀이었고 내 심장은 달달했었지' 같은 뻘글들을 써제낀 후 아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니 영 내가 쓴 글들과 겉도는거였다. 물론 그때 모국에서 대통령 선거 전후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내가 뭔가 게시판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뭔가 약간 울컥해져서 '우 씨, 나도 정치글 쓸 수 있는데…' 하며 공산당 만세를 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반응도 뜨뜻 미지근하고, 아내도 이런 글은 좋아할것 같지 않고, 쓰고있는 나 자신도 흥이 안나서 때려 칠려고 했다. 그런데 이후에 게시판에 방문한 아내가 의외로 공산당 시리즈를 무척 재미있어 하는 거였다.
특히 아내가 좋아하는 BTS 를 0.01% 정도 가미한 5편 자기거세의 시대에서부터 아내는 공산당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더니 6편 현대 계급론에선 '빨리 다음편을 내놓아라' 하는 분위기가 되버렸다.
아내가 일상 다반사를 묘사한 꽁트보다 이런 하드보일드 정치경제 꽁트를 더 좋아할지 전혀 몰랐다. 아내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 아내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게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다. 나도 저절로 신이나서 현실 정치에 대한 내용이 잔뜩 들어간 7편 선거 게임을 후다닥 써서 올리고 다시 집을 나섰다.
어제밤 카카오톡 보이스콜로 나의 제 1 독자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7편 재밌었어요?'
'웅! 웅!! 재밌어! 재밌어!!'
'다행이네요!'
'웅! 웅!! 공산당 끝나면 다음엔 종교글 써줘. 종교글!!'
'종교글???'
나는 뼛속까지 무신론자다. 아내도 내가 하드코아 무신론자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나의 종교글을 원한다. 무슨 속셈일까?
그간 생각해 놨던 여러가지 글거리들, 예를들면
루이지애나에서 캘거리까지 히치하이커 태우고 온 얘기,
인도 바라나시 강가에서 부녀간으로 오해받아 아내에게 들이대는 인도 청년들과 대적할뻔한 얘기,
라오스 메콩강에서 이틀동안 보트타고 떠내려간 얘기,
태국 숲속 강가에서 코끼리들과 물장난한 얘기,
미국 세콰이어 국립공원 트레일에서 그리즐리 베어랑 눈싸움한 얘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일에서 김치찌개 먹은 얘기,
헬리코박터파일로리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애들을 뱃속에서 다 죽인 얘기
같은거를 쓸려고 했는데 이런게 갑자기 다 사라지고 이상한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찰스 다윈, 리처드 도킨스, 유발 하라리 같은 이름들이 떠오르며 여러가지 글거리들이 떠오른다. 예를들면,
신이라는 상상력이 인류문명발전에 끼친 영향,
유일신 종교에 뿌리깊게 남은 다신교의 흔적들,
석가모니는 아트만교 신자였다,
자살해도 괜찮은 자이나교,
카스트제도는 지배층에게 개꿀같은 제도,
그 때 두 시크교도는 왜 나때문에 싸웠을까?
선악과를 먹고 각성한 후 처음 이브가 지은 표정
같은거, 우와 주제가 무궁무진 하잖아!
그런데 까딱 잘못하면 대차게 욕처먹고 ***에서 도편추방당하기 딱 좋은 주제이기도 하다.
아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중이다. 어우, 아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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