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올린 잡글에 어떤분이 탕수육 부먹, 찍먹 논쟁에 대한 답글을 올리셔서 써보는 글.
평소에 최루탄 냄새 자욱한 잔디밭에서 새우깡에 막걸리를 마시거나 학교 후문 주점에서 1200원짜리 찌개안주에 25도짜리 소주를 들이킨 후 외상으로 시계나 학생증을 저당잡히곤 하던 때다. 간혹 선배나 막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은 물주를 잡으면 학교 근처 허름한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짬뽕 국물에 빼갈이나 소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당시의 탕수육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녹말물에 버무린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후 다시 웍에 목이버섯, 당근 등의 야채를 넣고 소스와 함께 강한 불로 뒤적뒤적 요리한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소스가 흥건하지 않았다. 그저 딱 알맞은 소스가 탕수육 하나하나에 완벽하게 코팅된채로 나왔다.
가난한 학생들에겐 더할나위없는 사치였다. 김이 모락모락하는 한 점을 집어들고 입가에 가져가면 먼저 새콤한 냄새가 침샘을 아프게 자극한다. 입에 넣으면 소스의 새콤달콤한 맛이 혀를 유린한다. 이를 씹으면 약간 기분좋게 '바삭' 한 다음, 뭔가 쫄깃하고 쫀득한 식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신선한 육향이 화룡정점을 찍은 후 이 모든게 입안에서 합쳐지면서 극락으로 뿅 가게된다.
우리 무리는 장학금을 타거나 아르바이트 돈을 받거나 군 입대 전에 두둑히 용돈을 받거나 하면 이런 사치를 누렸다.
세월이 변하면 모든게 변한다. 탕수육도 세월과 함께 변해갔다. 먼저 중국집들이 배달 중심으로 변하면서 튀김과 소스가 분리됐다. 그리고 튀김도 배달될 동안 눅눅해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좀 딱딱해졌다. 더이상 쫄깃쫀득한 식감을 즐길 수 없게 됐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우리들도 중국집에서 더이상 탕수육을 찾지 않게 됐다. 양장피나 고추잡채나 깐풍기가 주 메뉴가 됐다. 세월이 스쳐지나며 더이상 중국집 자체를 찾지 않게 됐다. 이젠 횟집이나 참치집, 양구이집이나 장어구이집에서 모임을 갖게 됐다.
가끔 고급 중국집에서 비즈니스상 코스요리를 먹을 때, 옛날 방식의 탕수육을 접할 경우가 있었다. 물론, 튀김과 소스가 강한 불로 웍 안에서 버무려져 나온다. 서버께서 인원수대로 소분해서 나눠주면 이를 먹으며 옛날 대학생 시절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한 칠팔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들과 양꼬치구이 집에서 만났다. 내겐 생소했던 양꼬치였는데 친구 한놈이 꿔바로우라는걸 시키더니 먹어보라 권했다.
'야, 이거 우리 옛날에 먹던 탕수육 비슷해. 맛있어. 먹어봐.'
녀석의 말대로 새콤달콤한 소스와 고기튀김이 한몸으로 어울리며 바삭쫄깃쫀득한 맛이 일품이었다. 모양은 약간 달라도, 좀 과하게 달긴 했어도 20대 초반의 가난한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여튼, 이제 탕수육은 소스가 완전히 분리된게 표준이 됐다. 셰프의 전문적인 스킬에 의해 웍에서 버무려진 진짜 탕수육은 이제 고급 중국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느냐, 찍어먹느냐를 가지고 논쟁중이라 한다. 부먹파와 찍먹파가 대차게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참 재밌다.
만약 어떤 청년이 내게 부먹파인지 찍먹파인지 물어보면 나는 아마도 이 글에 나온 내용을 주절거릴지도 모르겠다. 원래 탕수육에 찍먹부먹 따위는 없었던 거라고 말이다.
큰일날 소리다. '나때는 말야…' 하며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100% 꼰대각이다.
그래, 어차피 딱딱한 돼지고기 튀김이다. 이도 아프다. 그러니 흥건한 소스에 불려서라도 먹어야지 뭐.
'예, 저는 부먹파입니다.'
하고선 깨작거리다거 계산이나 해줘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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