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트레일러 뒷부분에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세미트럭은 와이드 턴을 하니 일반 승용차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그림입니다. 왜 이런 그림이 있을까요? 세미트럭이 우회전을 하다가 승용차를 들이받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세미트럭은 회전을 할 때 많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서 속도도 줄여야 합니다. 우측 깜빡이를 켜고 중앙 차선에서 꾸물거리는 트럭을 보고 일반 운전자는 “저 멍청이, 왜 저래?” 라고 생각하며 우측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트럭은 우회전을 하려는 참이었고 또 참으로 불운하게도 세미트럭의 조수석 쪽은 완전히 사각지대 Blind Spot 입니다. 앗 하는 순간에 트레일러와 승용차가 충돌하고 맙니다.
만약에 세미트럭이 와이드 턴을 하지 않으면 트레일러 뒷부분이 보도를 올라타 사람을 덮치거나 스톱사인 등의 교통표지판을 쓰러트리고 신호등을 망가뜨리며 전봇대를 쓰러트려 버립니다. 일반 승용차 운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트럭 운전사는 트럭을 운전하는게 아니고 트레일러를 운전합니다. 그러니 사거리에서 깜빡이를 켜고 꾸물거리는 트럭에게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운전자는 와이드 턴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자, 이제 Class 5 운전자께 드릴 말씀은 끝났습니다. 트럭커의 세상에 관심이 없으신 분은 이제 나가셔도 좋습니다.
트럭커는 트럭을 운전해서는 안 됩니다. 트레일러를 운전해야 합니다. 세미트럭은 다른 말로 트랙터-트레일러라고 합니다. 트랙터는 앞에서 끄는 놈이고 트레일러는 뒤에서 끌려가는 놈입니다. 둘이 한 몸이 되어서 달리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 와이드 턴을 하지 않으면 보도를 올라타기 일쑤입니다. 또한 짐을 주거나 받는 시설에서도 크게 회전하지 않으면 소화전이라든가 펜스 혹은 주차된 승용차들을 트레일러로 들이받게 됩니다.
경험 많은 트럭커들은 트럭스탑에서 되도록 맨 가장자리에 트럭을 주차하지 않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트럭스탑에 온 피곤한 초보 드라이버들이 자신의 뒤에 53ft 길이의 트레일러가 있다는 걸 망각하고 승용차 운전하듯이 회전하여 트레일러로 다른 트럭을 충격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번 당한 적이 있습니다. 자고 있다가 큰 충격에 나와 보니 어떤 사람이 자기 트레일러로 제 트럭의 디어 범퍼를 작살을 내놨더군요.
오랫동안 일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막 트럭커가 된 사람은 트랙터 대신 이 트레일러 뒷꽁무니를 운전한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합니다. 좌회전을 하다가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충격하고는 그대로 운전직을 그만둬 버립니다. 우회전을 하다가 뒷 꽁무니가 보도로 올라타 가로수를 들이받아 트레일러에 큰 구멍을 내서 운행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트럭커 경력을 포기합니다.
초보 트럭커는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트럭이 아니라 트레일러를 운전한다는 개념을 장착해야만 트럭커로 롱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게 아니죠. 저도 여러 번 아찔한 경험을 했는데도 계속 잊어버리다가 결국 조그마한 사고를 낸 이후에 이 개념이 정착됐으니까요.
트랙터와 트레일러의 불화는 턴을 할 때 뿐만이 아니고 계속 일어납니다. 짐을 가득 실어 무거워진 트레일러는 자기 주장이 강해집니다. 트랙터로 끌려고 해도 트레일러는 잘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려고 해도 트레일러는 계속 달리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트레일러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이 고집은 더 세지죠. 산길을 달릴 때, 오르막에서 트레일러는 안 올라가겠다고 땡깡을 부립니다. 내리막에선 트랙터보다 먼저 내려가겠다고 뒤에서 보채기 시작합니다. 트랙터 운전석에 앉은 트럭커는 뒤에 달린 트레일러를 달래가며 트랙터를 조종해야 합니다. 만약 트레일러 달래기에 실패하면 큰 사고가 일어납니다. 트레일러가 트랙터를 압도하는 순간 트레일러는 트랙터가 되고 트랙터는 트레일러가 됩니다. 트레일러가 트랙터를 덮치고 트랙터는 흉하게 꺾인 채로 트레일러에게 질질 끌려가서 어딘가에 처박히게 되죠. 이른바 잭나이프 Jackknife 라고 합니다.
짐을 하나도 안 실은 가벼운 트레일러는 안전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빈 트레일러는 노면에 따라 통통거리며 곧잘 깨방정을 부립니다. 특히 강풍과 아주 친하죠. 짐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로는 전혀 문제없는 바람이 빈 트레일러일 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위 동영상의 사고는 캘거리에서 레스브릿지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밥 먹듯 다니는 길입니다. 이처럼 강풍과 빈 트레일러의 조합은 치명적입니다. 때문에 와이오밍이나 몬타나 인터스테이트를 달릴 때 세미트럭 강풍 경보가 내리면 가벼운 트레일러는 운행을 멈추고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게 안전합니다.
이상 초보 트럭커가 최대한 빨리 체득하여야 할 개념과 Class 5 운전자 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트럭커가 실제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썰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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