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궤변을 끄적거리기: 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4) 팀 드라이빙의 세계

저는 초보 트럭커에게 팀 드라이빙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초보 시절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좁디좁은 캡을 생판 모르는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보 시절의 팀 드라이빙은 안전을 위해 권장합니다.

저는 인캡 트레이닝을 받을 때 6주간, 중국인 트레이너와 팀 드라이빙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5개월간 젊은 시크교 청년과 같이 운전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 중국인 트레이너는 중국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인텔리 였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캐나다로 이민 온 그는, 그의 학교 동기들이 급속한 중국의 경제성장을 틈타 모두 부자가 되었다며, 이민 온 것을 후회하고는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낀 연휴 기간 일이 없을 때, 토론토에서 그의 친구와 만나 아시안 뷔페에서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시크교 청년과도 재밌게 지냈습니다. 그의 터번 밑에는 조선시대 사람처럼 상투가 있더군요. 그에게 상투를 튼 조선시대 사람 사진을 보여주며 서로 낄낄댔습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날 땐 “야, 너네 마을이다” 하며 농담하기도 했죠. 그에게 육포를 먹였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육포를 씹으며 맛없어 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쇠고기를 먹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몇 번 햄버거를 사 줬더니 나중엔 그의 최애 음식이 되었습니다. 코스트코의 크로와상을 한 번 줬더니 너무 맛있어 해서 자주 싸갔습니다. 새로운 트립을 위해 며칠 만에 만나면 그가 “노자야, 크 뭐시기상 가져왔어?” 물었고 저는 “크만아, 넌 나보다 크로와상이 더 반갑냐?” 하며 쫑코를 주고는 했죠. 그는 계란과 양파를 요리해서 짜파티라는 밀가루 전병에 감싸 먹었습니다. 자주 나에게도 먹이고는 했죠.

제 인생에 전혀 없을 것 같았던 ‘버디로드 무비’를 찍던 시절이었습니다.

팀 드라이빙의 최대 수혜자는 사실 트럭킹 회사입니다. 값비싼 돈을 주고 산 트럭이 24시간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어 큰 이득입니다. 또한 짐의 이동 속도도 싱글 드라이버 대비 두 배가 되므로 더 많은 로드를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회사는 팀 드라이버를 하는 트러커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합니다. 간혹 오너 오퍼레이터들이 부자간 혹은 부부간에 팀 드라이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트럭 할부금을 순식간에 갚아 버릴 수 있거든요.

초보 시절 팀 드라이빙의 의의는 위기의 순간에 빛납니다.

새벽녘에 중국인 트레이너가 갑자기 저를 깨웠습니다. 은하수까지 보일 정도로 별이 쏟아지는 한밤중이었습니다. 나와서 살펴보니 트럭은 비포장된 도로에 멈춰서 있었고 사방은 양배추인지 양상추가 심어진 밭 한가운데였습니다. 파트너가 농산물 배송 센터를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플래시를 비추며 엄청나게 긴 거리를 가이드하여 그가 후진하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초보 시절 후진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트레일러 뒷바퀴가 밭으로 빠지려 할 때마다 저는 그를 멈춰 세웠고 그는 다시 전진하여 길 가운데로 트럭을 위치한 후 다시 후진을 시작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공터 같은 곳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를 안내하여 유턴을 하도록 했습니다.이 과정에서 트레일러 타이어들이 밭을 침범하여 농작물을 좀 짓밟았습니다.

인도 청년과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몬타나의 뷰트 트럭스탑에서 주유한 후 농가 도로를 고속도로 진입로로 착각하여 들어갔습니다. 고속도로 진입로가 나올 걸 기대하며 그는 한참 직진하였고 마침내 길은 비포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결국 새벽 1시에 저를 깨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시 저는 후레쉬를 들고 그의 후진을 밖에서 도왔습니다. 한참을 거북이 걸음으로 후진하다가 캠핑장을 발견하였습니다. 캠핑장 앞마당이 유턴을 할 만한 넓이로 보였습니다. 저는 재빨리 트럭에 올라탔고 크만이에게 캠핑장으로 불법 침입을 한 후 유턴을 하여 도망치라고 말했습니다. 굉음을 내며 캠핑장에서 유턴을 했습니다. 모두 불이 꺼진 텐트며 트레일러들에 전등불이 켜지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약간의 작물을 망친 것과 캠핑장에 불법 침입하여 소음과 먼지를 일으킨 일에 대해, 관계자분들께 사과 드립니다.

짐을 싣거나 내릴 때, 그리고 트럭 스탑에서 주차할 때 자주 후진을 해야 합니다. 후진시 트럭커에게는 GOAL 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Get Out And Look 의 약자입니다. 후진시 트랙터와 트레일러가 꺾이기 때문에 한쪽 면은 완전히 사각지대가 됩니다. 게다가 53ft 길이의 트레일러를 좁은 세미트럭 사이나 트레일러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은 초보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트럭을 세우고 밖으로 나와서 살펴보라는 의미입니다. 팀 드라이빙을 할 때 한 사람은 밖에서 지켜보고 또 한 사람은 후진을 한다면 상시 GOAL 상태가 됩니다. 초보 시절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팀 드라이빙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두 사람이 복작복작 거리는 것도 불편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트럭에서 잠을 자는 것도 힘들뿐더러 하염없이 짐을 기다리며 2층 침대에서 둘이 누워 있는 것도 뻘쭘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트레이닝 목적을 제외하고, 팀 드라이빙이 아예 없습니다. 대부분의 트럭이 단 한 개의 침대만을 가지고 있지요.

지금은 망해 버린 제 첫 직장은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팀으로 움직였습니다. 거의 모든 드라이버가 인도인이었고 영주권 취득을 위해 운전하고 있었죠. 영주권을 취득한 트럭커들은 곧 그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러니 제가 팀 드라이빙을 추천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회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네요. 체계가 잘 잡힌 회사는 초보 드라이버를 단독으로 내보내기 전에 많은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디 단독 트립 전에 많은 연습과 경험을 얻으신 후 모험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class-1.html

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