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세상의 온갖 종교가 다 있다.
대다수 인도인이 믿는 힌두교, 오랜 기간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제국의 이슬람교, 제국주의 시대에 전파된 신교와 구교의 기독교가 있고 불교와 자이나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의 친근한 이웃인 푼자비들의 종교, 시크교도 인도의 푼잡 지역에서 유래했다. 그야말로 종교의 잡탕밥이다.
힌두교도 북인도와 남인도가 좀 분위기가 다르다. 하지만 모든 힌디들의 성지, 바라나시 갠지스강 순례는 남북이 공유한다. 해서, 돋떼기 시장같은 바라나시의 시장길을 걸을라치면 세상 재미진다. 오토바이와 뚝뚝이와 릭샤와 승용차와 소와 떠돌이 개들이 난장판으로 뒤엉킨 속에서 북방 힌두교인, 머리를 빡빡 민 남방 힌두교인, 온 몸을 검은 차도르로 둘러싼 이슬람교 여인네들이 물결을 이루며 지나간다. 그야말로 이세계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한솔로와 함께 사막 행성에서 무법자 외계인들이 모여드는 선술집에 들어서서 생전 처음보는 이세계인을 구경하는 심정이 아마 이럴 거다.
남부 동해안의 폰디체리는 한때 프랑스 점령지여서 성당이 많다. 성당 거리를 걷노라면 마치 몬트리올에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선 힌두사원이 나타나고 커다란 코끼리가 지나다니는 사람들 머리를 코로 툭툭 치며 축복을 내려주기도 하여 이곳이 인크레더블 인도임을 웅변한다.
힌두교는 참 재밌다. 그런데 좀 들여다 보면 잔인한 종교이기도 하다. 바로 카스트제도 때문이다. 사람을 출신 성분으로 차별하는게 교리에 들어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심한 차별의 문화가 있다. 남편이 죽어서 화장을 할 때, 아내가 그 불속에 뛰어들어 자살하는게 커다란 미덕으로 전해내려왔다. 옛날엔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바로 죽은 목숨이었다. 과부에게 환각제 등을 먹여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하는게 비일비재했다. 사티라고 한다. 1987년에 와서야 공식적으로 사티가 금지됐다.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도 힌두교 만큼은 아니지만 여성차별이 심하다. 일단 이브의 구성성분이 아담의 갈비뼈다. 또한 아담을 꾀어 선악과를 먹게한 죄인 취급을 받는다. 월경을 하는 여성은 불결하게 여겨져 신전 출입이 금지됐다.
어렸을때 조부모에게 위탁된적이 있다. 전기도 없는 시골마을이었는데 조부모가 성당에 다녔다. 나도 일요일날 한시간 가량 시골길을 걸어서 처음 성당에 가게 됐다. 남녀가 분리되어 앉아서 예배를 봤다. 특이하게 여자들은 모두 하얀 천대기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미사보라고 한다. 여자들은 죄를 지어서 미사보를 써야 한다나?
유대 근본주의자들인 하레디들도 이슬람교 만만치 않다.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목, 팔, 다리를 노출하면 안된다. 그리고 성경의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가르침에 따라 피임을 죄악시한다. 하레디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7.5 명이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에 일조를 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의 여성 차별은 뭐 워낙에 악명이 높아서…
인도의 푼잡 지역은 곡창이라고 한다. 드넓은 평야에서 아주 많은 농작물이 산출된다고 한다. 푼잡이라는 말이 다섯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캘거리에 Five Rivers 라는 인도식당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푼잡지역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다.
푼잡에서 기적의 종교 시크교가 태동됐다.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장점을 짬뽕해서 만들었는데 아주 혁명적이게도, 두 종교의 공통된 악습을 없애버렸다. 시크교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카스트제도도 없다. 여성 차별도 없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남녀도 평등하다.
인도의 유서깊은 카스트제도는 여러가지 일상생활에 뿌리내렸는데 사람들의 성씨에도 스며들어 있다. 인도인들은 상대방의 성을 보면 대충 상대의 카스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해서, 서로 처음 만난 인도인들은 상대의 성씨를 물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고 한다.
시크교는 이런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카스트제도를 극도로 혐오하여 모든 시크교도의 성을 통일해 버렸다. 시크교도의 남자 성은 '싱 Singh' 이다. 여자는 '카우르 Kaur' 다.
시크교도 남자는 면도를 하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 않으며 터번을 쓴다. 이제 당신은 캘거리에서 아주 쉽게 인도에서 온 싱서방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시크교 사원에서 공짜로 누구나 밥을 먹을 수 있고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종교, 인종, 성별에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사원에 들어갈 수 있다. 단, 맨발이어야 하고 간이 터번을 써야 한다.
뉴델리의 시크교 사원인 구루드와라 방글라 사힙을 방문한적이 있다. 더운 날씨에 지친 참이었는데 인공 호수변 그늘막엔 천정에서 선풍기도 돌며 선선한 바람을 만들어줘서 간만에 오아시스같은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벽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뻗고 앞을 보니 바로 앞에 호수였고 건너편이 바로 사원이었다.
그때였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앞으로 쭉 뻗은 내 발을 손가락질하며 뭔가 기분나쁜 뉘앙스로 말했다. 아차 싶었다. 더러운 발을 이들의 성전을 향해 뻗고 있는 무엄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얼른 다리를 오므리고 사과했다.
그런데 수염이 덮수룩한 청년이 끼어들었다. 갑자기 나를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벌였다. 아마도 멀리서 오신 손님에게 너무 무례하지 않느냐 하고 청년이 따지는듯 싶었다. 언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성분이 기분이 상해서 물러갔고 청년도 내게 가볍게 목례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고, 괜히 무신론자가 시크교도의 성소에서 분란을 만들었다.
여튼, 시크교는 차별과 여혐의 종교인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융합하여 좋은것을 취하고 나쁜것을 모두 버린 기적과도 같은 종교다. 만약 무신론이 불법이 되고 의무적으로 하나의 종교를 가져야만 하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시크교도가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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