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면 좋습니다.
저의 경우입니다. 어려서 별로 축복받은 환경이 아니었기에 포기하는데 익숙했습니다. 딱히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편이 아닙니다. 어차피 원하는 것을 많은 경우에 얻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의외의 효용이 있습니다.
첫째, 가열찬 노력끝에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환희보다는 지쳐버리는 성격입니다.
둘째, 원하는 목표는 어차피 이뤄지기 힘듭니다. 반 포기 상태에서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결국 실패했을 때에도 그 데미지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셋째, 간혹 운이 좋아서 설렁설렁 하던게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투입, 즉 노력 대비 성과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더 큰 기쁨과 충만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젊었을때 부터 뭔가 간절히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고 3 때, 대입 학력고사를 마치고 단체미팅을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때가 모친을 제외하고 처음 이성과 마주친 때입니다. 아주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 후에도 여성분으로부터 경멸에 찬 시선을 몇 번 받고나서 제 자신을 살펴봤습니다. 겨우 160 센치대 중반 미치는 단신, 여드름에 뒤덮인 얼굴, 두꺼운 안경, 곱슬머리, 홀어머니에 외아들... 거울속의 제 자신이 추하더군요. 그럴만 했습니다. 그 때 부터 독신주의를 자처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관심을 끊었습니다. 과의 이성 동료나 후배 여자사람들에게 데면데면하게 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를 포기하니 그 뭔가가 제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교 학창시절에 연애 경험이 꽤 됩니다. 갑자기 친구의 여친이 제게 고백했습니다. 후배가 손수 조끼를 떠서 제게 선물했고 저는 그 후배를 피해서 도망다녀야만 했습니다. 두 여자가 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점점 책임질 일이 늘어갈 때 비슷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몇 개월간 공들인 프로젝트가 허사가 되었을때 참 허탈했습니다. 불쑥 찾아온 일본인에게 프로젝터도 아닌 A4 출력물로 건성건성 솔루션을 설명하고 헤어졌는데 4 년간 최고의 고객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큰 기대를 안하고 건들건들, 되던 말던, 건성건성, 그냥 면피 정도만의 노력을 하는게 제 삶의 지혜였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건 되고 안될건 안되더군요. 예상외로 되면 더 기쁘고, 역시 안되면 그럴줄 알았다~ 하며 소주 한잔에 금방 잊을 수 있고...
그래서 추석 연휴 첫날에 담배를 끊기로 했을 때, 사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한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금방 금연을 포기할 예정이었으니까요. 제가 잘 될리가 없죠, 뭐. 그래서 아무에게도 제가 담배를 끊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를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저는 궁지에 빠졌고 결국 금연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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