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잠자기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 한 문단이 끝나기 전에 잠이 팍 올 정도로 읽는게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 작가가 195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문장이 상냥하지 않다.
특히 오버로드와 인간들간의 형이상학적인 대화가 오갈땐 미간이 찡그려지면서 '이게 도대체 뭔 소리여~' 할 때가 많았다.
해서 이 소설을 읽는 과정은 마치 전륜구동 아반떼를 몰고 진흙탕과 모래밭과 구덩이가 혼재한 오프로드 길을 달리는것 같았다. 이 소설을 끝내고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Killing Commendatore - 기사단장 죽이기' 를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포르쉐를 몰고 아우토반을 최고속도로 달리는 기분이다.
예전에도 여기 어떤 글에서 쓴적이 있는데, 영어 원서를 처음 읽기 시작한 분들은 비영어권 국가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된 것을 추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물론 처음 히브리어로 쓰여진 '사피엔스' 도 영어원서를 도전할 때 참 좋은 책이었다.
각설하고, 이 작품은 기독교적인 코드가 많다. 우선 오버로드가 그 정체를 궁금해 하면서도 명령을 받드는 오버마인드라는 존재가 나온다. 인간에게 대입하면 신과 같은 존재다. 기독교도들도 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여튼 신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재미있는건 오버마인드, 오버로드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다. 오버로드는 인간이 최종 진화하여 결국 오버마인드와 통합되는걸 안다. 그리고 오버로드 자기자신은 절대 오버마인드와 통합될 수 없는 운명인 것도 안다. 때문에 오버로드는 인간에 대해 약간 질투의 감정을 표할때도 있다.
영화 콘스탄틴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인간을 질투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냥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가서 하나님 옆에 있을 수 있는 특권' 을 줬다고 말하며 심술을 부린다. 가브리엘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천사라는 존재지만, 만약 인간이 죽은 후 천당에 가서 하나님 옆에 선다면 그 즉시 인간보다 지위가 추락하는 체계인가보다. 아마 천당에 간 사람들로부터 '흥~ 천한 천사 나부랭이 주제에…' 하며 무시당했나 보다.
그래서 이들 3자의 관계를 보면서 하나님과 천사와 인간 3자간의 관계가 떠올랐다.
나에게는 기독교의 천당이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모든 개성을 상실한 채 하나로 합쳐진 마인드가 되어 오버마인드와 통합된다는 개념을 보니, 혹시 이게 천당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렴풋이 기독교의 천당과 신과 하나됨을 이해할 것도 같다.
오버로드는 지적 탐구심이 강한 종족으로 나온다. 인간은 물론 지구상의 동물에도 관심이 많다.인간이 오버마인드와 통합하기 전에 지구가 파괴될 것을 알고 있던 오버로드는 동물 표본들을 자기 별로 실어나르기 바쁘다. 마치 노아의 방주와 닮았다.
인류가 모든 개성을 상실하고 하나의 마인드로 된 상태에서 바로 오버마인드와 통합하는게 아니다. 인간의 통합된 마인드는 여러개의 개체로 이루어진 어린아이 모습을 한 포스트휴먼을 조종한다. 이들은 하나의 정신으로 조정되어 광야를 배회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힘을 탐색하고 강화시키다가 결국엔 알을 깨고 부화하듯이 지구를 파괴한 후 오버마인드와 통합된다.
예수도 자기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바로 알지 못했다. 그는 광야에서 사십일간 단식 기도하며 헤매다가 비로소 자신이 야훼의 독생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탄의 세가지 시험을 통과한 후 세상에 나오게 된다. 통합된 인간 마인드가 지구상에서 오랜기간 헤매면서 자신의 능력을 이모저모 시험하다가 결국 오버마인드와 통합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오버로드는 사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실 오버로드는 유사 이전에 지구에 온 적이 있다. 아직 원시인 수준의 지구인을 보고 오버로드는 '아이고, 우리가 너무 일찍 왔나 봐요. 다음에 또 올게요. 그런데 저희가 다시 올 때에는 곧 당신들의 세상은 없어질 거예요.' 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무심결에 종말의 예언을 하고 간 오버로드는 이후 등장한 기독교에서 사탄의 이미지가 돼버렸다. 냉전 시대 다시 지구를 방문한 오버로드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악마로 묘사되는 지구의 문명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게 바로 오버로드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던 연유다. 아유, 재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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