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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처럼 활자의 종말을 아쉬워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젊을 때 우리는 경박단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대충 진중하지 못하고 가볍고 짧고 얇고 작게 살아간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제 기성 세대의 끝자락에 걸친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 돌아보니 나는 중후장대의 시대를 살았다. 현 시대가 경박단소를 지나서 더더욱 파편화되어 초경 초박 초단 그리고 극소의 시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젊을 땐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자 중독 상태였는데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 동영상에 중독돼 있다. 그 동영상 마저도 점점 짧아져서 틱톡이나 쇼츠 등이 유행이다.


나 또한 소싯적엔 꽤나 심한 활자 중독자였다. 식당에서 밥이 나오길 기다리며 신문지에 코를 박고는 했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에게 신문을 빼앗겨 읽을게 없으면 돌아다니는 전화번호부라도 뒤적거려야 직성이 풀렸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신문을 봤다. 요즘은 모두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이 고정돼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활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예 검색을 유튜브에서 한단다. 궁금한 것을 동영상으로 찾고 그걸 플레이하며 배운다는 거다. PC 화면으로는 검색한 것을 플레이하고는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틱톡 같은 것을 보며 낄낄댄다.


숙명처럼 노안이 찾아온지 오래다. 누진 다초점 안경을 쓰고는 있지만 밥 먹을 때 안경을 쓰는게 불편하다. 식탁의 반찬이 흐릿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저를 들 때는 안경을 벗어 놓는다. 따라서 식사하면서 TV 같은 것을 보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혼자 밥 먹을 땐 팟캐스트를 듣고는 한다.


여러 주제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으며 밥을 먹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활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간상의 이득을 포기한다면, 목소리를 통해서만 얻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작금의 젊은이들이 주로 유튜브에서 궁금한 것을 검색하는게 이해되기도 한다. 점점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바야흐로 활자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꼰대처럼 활자의 종말을 아쉬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옛날에는 글자를 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지식이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과 일반 교육의 확산으로 인해 문맹은 창피한 것이 되었다.


과거엔 전문적으로 글자를 쓰는 ‘서기’ 라는 직업도 있었다. 기계식 타자기가 등장한 후 사무실엔 타이프라이터 - 타자수 - 라는 일종의 전문직도 있었다. 컴퓨터를 활용한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한 후 타이프라이터는 사라졌다. 아니 타이프라이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타이프라이터다. 컴퓨터 키보드를 통한 문서 작성은 현대 모든 사무실 근로자의 필수 소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전 글을 발표하는 매체는 책이나 신문잡지등 종이 인쇄물 뿐이였다. 현재는 모두가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판이라든가 블로그가 이런 역할을 훌륭하게 제공한다. 이젠 누구나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글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위에서 밝혔다시피, 세상은 활자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이미 블로그의 인기가 수직 낙하하는 중이다. 독자들이 사라지고 시청자들이 늘어난다. 이를 쫓아 블로거들이 유튜버로 변신중이다. 과거의 유명했던 블로거들이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고 있는 세상이다.


이 블로그의 말로를 예상한 카카오가 다음(daum.net)의 오래된 블로그 서비스를 폐쇄했다. 캐나다에 살고 있어서 이 움직임을 미리 알지 못한 나는 엄청난 피해를 봤다. 20수 년간 쌓아온 기록들과 사진들이 몽땅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본진은 잃었지만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진 잡글들을 끌어모아 다시 다른 블로그에 복구하는 중이다. 작업을 할수록 다음 블로그에서 잃어버린 글과 사진들이 너무 아쉽다.


다시 한번, 활자의 종말을 맞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는 짓이 한심해 보였는지 아내가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며칠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더니 뚝딱뚝딱 동영상을 만들어 낸다. 컨텐츠는 그간 내가 싼 똥글이다. 현재 그 동영상들의 조회수는 1 이다. 나만 봤다. 웃기다. 내가 만들어낸 활자가 동영상과 소리가 되어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니 낄낄낄 웃겨 죽겠다.


그런데 아내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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