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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트럭커의 모든 것 18) 로드킬과 범퍼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왕복 2차선 시골길을 오랫동안 달려야 될 때도 많습니다. 이때 참 많은 로드킬을 봅니다. 족제비나 스컹크 같은 작은 동물도 있고 사슴 같은 건 부지기수로 죽어 있습니다. 봄에는 귀여운 프레리독 들이 포장도로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습니다. 얘들이 죽은 흔적이 참 많죠.


저도 일광욕을 하고 있던 프레리독을 한번 깔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으악하며 뒤를 보니 뒤쪽으로 붉은 점이, 점점 색이 옅어 지면서, 점점이 찍혀 있더군요. 마치 바퀴에 붉은 잉크를 묻힌 후 도로 위를 굴러가듯이요. 참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밤에 다니다 보면 참 많은 동물들을 봅니다. 사슴은 물론 안텔로프도 많고요, 집채만한 엘크가 길가에서 풀을 뜯고 있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그만 짐승이 길가를 휙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날이 따뜻할 땐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윈드실드에 부딪칩니다. 뭔가 투명한 것이 퍽퍽 터질 때 보면 주변에 양봉하는 벌집이 쌓여있는 걸 볼 수 있죠. 역시 기분이 안 좋습니다. 특히 어두워지면 나방이나 하루살이 같은 것이 자꾸 부딪쳐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가 됩니다. 워셔액을 뿌려도 단백질 성분이 윈드실드를 덮어서 시야에 방해가 되죠.


이렇게 되면 트럭 스탑에 들러 닦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고 항상 트럭 스탑이 있는 것도 아니죠. 저는 다목적 세정제를 가지고 다닙니다. 쉴 때 윈드쉴드 바깥에 세정제를 뿌리고 한참 후에 워셔액을 뿌리면 말끔히 씻겨 내려갑니다.


가끔 새들도 차에 부딪칩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역시 쓸데없는 살생을 한 기분이 들어 언짢습니다. 예전에 길가에 쉬고 있던 캐나디안 구스가, 제가 접근하자 날아오르다가 그 중 한 마리가 제 오른쪽 후드위 보조미러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그 큰 새는 길가로 나가 떨어졌고요, 제 미러도 충격에 떨어져 사라져 버렸습니다. 세미 트럭의 오른쪽 조수석 쪽은 완벽하게 사각지대입니다. 오른쪽으로 추월하는게 금지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른쪽 후드 보조 미러는 어느 정도의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없어져서 저는 한동안 우측 차선 변경을 할 때 신경이 바짝 곤두서고는 했습니다.


사슴이나 작은 동물의 시체는 까마귀나 레이븐 - 큰까마귀 - 의 먹이입니다. 보통 죽은 놈들 위에 걔들이 몇 마리 앉아 있곤 하죠. 까마귀 놈들은 머리가 좋은지 길 위에서 죽은 동물을 먹으면서도 차가 접근하면 충돌 직전에 곧잘 피하고는 합니다. 얘들이랑은 한 번도 충돌한 경험이 없네요.


일본말로 바보를 바카라고 하는데요, 말 마자와 사슴 록자를 씁니다. 한국말로 읽으면 마록이고 일본 발음으로는 바카가 되죠. 말이 왜 바보인지 모르겠는데 사슴이 바보인 건 확실합니다. 그간 저도 네 번 사슴을 쳤습니다. 이놈들 제가 접근하는 걸 보고 반대편 차선으로 피하다가 제가 막 지나치려는 순간 홱 방향을 바꿔 제 앞으로 돌진하기 일쑵니다. 마치 일부러 자살하려는 거 같다니깐요.


세 번은 제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서 잠깐 퉁 치는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밤에 상대편 차가 하이빔을 쏴서 제 앞의 사슴을 미처 발견 못 하고 전속력으로 들이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Kenworth T680 모델 트럭을 몰았는데요, 얘 그릴이 망사로 되어 있습니다. 디어 범퍼를 뚫고서 사슴 머리가 그릴에 부딪혀 가지고 움푹 파여 버렸습니다. 그래도 뭐 운전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서 오랫동안 그 트럭을 몰았습니다만, 망사그릴이 움푹 들어간 걸 볼 때마다 슬퍼졌죠.


온타리오에는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형에는 무스가 살죠. 한국어로는 말코 손바닥 사슴이라고 하는데요, 얘가 어마 무시하게 큽니다. 아무리 세미 트럭이라고 해도 무스와 부딪치면 트럭의 안전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쪽 지역을 자주 오가는 세미 트럭은 무스 범퍼를 장착합니다. 그리고 제 트럭에는 디어 범퍼가 장착되어 있죠.


만약 운전하시는 트럭에 이러한 범퍼가 없다면, 왕복 2차선 시골길을 달리실 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디어 범퍼가 없는 상태로 사슴 한 마리를 빠른 속도로 쳤을 때 그릴이 깨지고 냉각수가 터져 나와 운행 불능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올해는 사슴, 새 혹은 그밖에 작은 동물들을 죽이지 않고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날벌레들은 도저히 어쩔 방도가 없고…


(계속)


지난글 목차


0) Class 1 면허를 딴 후 트럭커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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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를 어느정도 해야 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1_19.html

2) 트럭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2_23.html

3) 어떤 운전면허 학원에 가야 할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2/3_30.html

4) 어떤 트럭킹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 (Feat 착취의 구조)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4-feat.html

5) 학원 수강과 실기 시험 시 유의 사항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5.html

6) 트럭커가 트럭을 운전하면 큰일난다 (Class 5 운전자 필독)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6-class-5.html

7) 트럭커는 무슨 일을 하는걸까?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7.html

8)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1 Introductio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8-part-1.html

9)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2 First Week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9-part-2-first-week.html

10)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3 HOS Rule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0-part-3-hos-rule.html

11)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4 Tax Return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4/01/11-part-4-tax-return.html

12) 트럭커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Part 5 더 높은 수입을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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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트럭커가 되기 위한 가장 힘든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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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게를 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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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강추위 속에서 트럭과 함께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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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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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로드킬과 범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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