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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국 다 그놈이 그놈이다



젊었을 때 읽었던 책의 내용이다. 책 제목이 태백산맥인지 남부군인지 기억도 안난다. 따라서 이 내용의 디테일도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한국 전쟁 때 공산군이 전라도 지역을 점령했을 때의 일이다. 공산당은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국유화 했다. 기존 지주들에게 소출의 5할 이상을 소작으로 수탈당하던 소작농들은 공산당 치하에서 소작료가 크게 줄어들어 아주 기뻐하며 만족했다.


벼가 익어가면서 공산당 일꾼들은 소출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일일이 낟알을 세가면서 예상 수확량을 산정했다. 그리고 일종의 납세 예정 통지를 농민에게 알려줬다. 냇가의 삼식이네는 다섯가마, 언덕배기 돌쇠내는 여섯가마, 뭐 그런 식이다.


문제는 쌀이 아니라 콩에서 발생했다. 당시 소작농들은 논가나 논두렁등 자투리땅에 콩을 심었다. 지주들은 높은 소작료를 받는 대신 이 콩은 건드리지 않았다. 즉 콩 수확은 모두가 소작농의 몫이었다. 그런데 공산당 일꾼들은 이것도 납세의 대상으로 삼았다. 농민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공산당 당사로 떼거지로 몰려가 항의했다.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공산당 간부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젊었을 때는 농부들이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소설 필자의 논조도 이와 비슷했던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 나는 공산당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공산당이 납세의 대상으로 삼은건 단순히 콩이 아니었다. 민초들의 간장과 된장을 느닷없이 뺏어 가려 한 행위였다. 만약 농부들이 콩을 소작으로 낸다면 그들은 몇 달간 간장과 된장 없이 맨밥을 먹어야만 했을 터였다.


세금을 깎아주는 방안은 즉시 시행해도 된다. 하지만 없던 세금을 만드는 새로 만드는 정책은 충분한 예고 기간이 필요하다.


아이, 씨~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이후 연결될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어져 버렸다. 망했다! 괜히 원작에도 없는 간장, 된장 얘기를 했다. 간장된장, 젠장!


여튼, 요지는 인간은 아주 작은 이익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유다.


믿거나 말거나 과거 이슬람은 자비와 관용의 종교였다. 그들은 점령지의 자치권과 문화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러한 자비와 관용이 바로 들불처럼 이슬람제국이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 받던 기독교인, 유대교인, 콥트교인,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이슬람 군대를 해방군으로 여겼다. 이슬람의 통치 아래에서 누구나 자기 자신의 종교생활을 자유로이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이슬람 치하의 이교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집트는 과거 거의 모든 국민이 기독교인이였는데 현재는 90%가 이슬람교인이다.


이슬람 치하에서 타 종교를 믿기 위해서는 단지 10% 의 인두세만 내면 됐다. 즉 무슬림은 매달 주민세 만원을 내는데 내가 알라를 믿지 않는다면 그냥 만 천원만 내면 됐다.


논두렁에 심은 콩을 온전히 차지하고자 하는 작은 욕심이 점차 종교의 신념을 넘어섰다. 내가 왜 옆집 무스타파 보다 천원을 더 내야 하는가. 그냥 알라를 영접하기만 하면 일 년에 쌀국수 한 그릇을 더 사 먹을 수 있는데... 이슬람 치하의 기독교인, 유대교인, 콥트교인, 조로아스터교인들이 무더기로 무슬림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개종으로 세수가 줄게 된 무슬림 정권은 한때 이교도들의 이슬람 개종을 금지 하기까지 했다. 즉 세금 때문에 새 신도를 받지 않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종교보다는 돈이 먼저였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진짜다.


'한손엔 칼, 한손엔 꾸란' 이라고? 다 들불처럼 번지는 이슬람교의 확장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꾸며낸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헛소리를 처음 말했다고 전해진다.


자발적인 이슬람 개종의 비밀은 단 10%의 인두세에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을 위한 또 하나의 이유.


최근까지 전 세계의 모든 기독교 미사는 오로지 라틴어로만 수행되었다. 현지 언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의결한 1960년대 중반 이후다. 일반적인 기독교 신자들은 그저 의무적으로 교회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미사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무지렁이 농민들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잘 몰랐다. 아니, 오히려 이슬람 교리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에서는 갑자기 사람이 신이 되고, 예수가 아들이 됐다가 아버지가 됐다가 신이 됐다가 다중이 놀이를 한다. 그들에게 Incarnation 과 Trinity 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의 실패 이후 등장해서 대성공을 거둔 무함마드가 대중에겐 더욱 매력적이었다. 사회 소요죄로 초라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와, 군대를 조직하여 자신이 쫓겨나온 메카를 다시 정복해 버린 무함마드! 이건 뭐 비교가 안된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종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창조주가 있고 메시아가 있고 최후의 심판이 있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이거나 저거나 마찬가지라면 세금을 덜 내는 쪽으로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예수는 기독교도들에게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결론적으로 생각하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


주말마다 교회 가서 눈물을 흘리며 통성기도를 하는 독실한 크리스천 철수씨가 저쪽에서 태어났다면, 하루 다섯번씩 메카를 향해 절하며 기도하는 신실한 무슬림 핫산씨였을거다.


엄숙한 표정으로 동성애자들의 죄악을 가르치는 존경스러운 이슬람 지도자 이맘이 이쪽에 태어났다면, 역시 신망이 깊은 목사가 되어 동성애자들이 지옥에 처박히리라고 신도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사용하여 '예수천국 불신지옥' 을 열불나게 외치는 저 기독교 광신도도 저쪽에서 태어났다면, 아프간 카불 시내에서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고 여자들에게 매질을 하는 바로 그 탈레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다 그놈이 그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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