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검색

이 모든 기억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휴~ 스토커 한 명 떼어내고자 좀 무리수를 뒀더니 잔뜩 미움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대충 목적은 달성한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이렇게 한 사이트에서 공공의 적이 되어 보는 것도 첫 경험입니다. 약간은 쓰라립니다만, 뭐 언젠간 다 사라지겠죠.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요.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꽤 오래전 영화입니다. 저도 개봉 당시는 꼬꼬마라 못 보고요, 한참 후에 봤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평론가에게 혹평을 받았고 흥행도 쫄딱 망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후 점점 평가가 올라가서 지금은 저주받은 세기의 걸작 영화로 회자됩니다. '죽기전에 꼭 봐야 할 백편의 영화' 같은 쓰잘데기 없는 목록에 항상 들어가는 영화죠.


꽤 오래전에 봐서 완벽하게 정확하진 않지만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스포일러 주의).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사람과 똑같은 인조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제조된 사람은 인간과 똑같은, 아니 더 발전된 신체능력과 지적 능력을 가지고 각종 위험한 임무에 투입됩니다. 주로 우주 광산에서 일하거나 전쟁에 투입돼죠. 심지어 인간의 성생활을 상대하기 위해 제조된 인조인간도 있습니다.


이들과 실제 인간과의 차이는 성장과정이 없다는 것과, 따라서 과거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 스위치가 켜지면서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과거의 기억이 백지장인 것이죠.


이들이 인간과 섞여 살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구에는 존재할 수 없고, 주로 우주 개척 지대에만 파견됩니다. 또한 이들은 인간과의 차별대우 때문에 점점 불만을 갖고 반항적이 되므로 정확한 수명을 갖게 됩니다. 제조된지 4년이 지나면 저절로 활동을 멈추고 폐기되죠.


일단의 인조인간들이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고 우주선을 탈취하여 지구에 잠입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추적하고 잡아내어 인조인간 인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후 폐기하는 특수경찰, 영화의 주인공인 블레이드 러너가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용의자를 심문할 때 이놈이 과연 진짜 인간인지 인조인간지를 알아보기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비록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가졌지만 4년 미만의 경험을 가지고 사람인 척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질문 받으면 이야기를 꾸며내다 한계에 부딪쳐 결국 도망치다가 강제 폐기되곤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조인간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이 지구로 잠입한 이유는 그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였죠.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들의 창조주, 즉 인조인간 제조회사와 그 창업주에게 테러를 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에 대한 반란이죠.


이 반란자들의 우두머리는 전쟁을 위해 제조된 인조인간입니다. 보통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영화의 막바지에 이 인조인간 군인과 블레이드 러너는 어떤 건물 옥상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속에서 격투를 벌입니다. 싸움의 막바지에 결국 군인은 블레이드 러너를 압도합니다. 하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를 살려줍니다.


이 순간 이 군인의 4년 수명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희대의 명대사를 남기고 죽습니다. 아니, 자동 폐기됩니다.


자, 명대사 나갑니다.


+++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봐 왔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

탄호이저 기지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C-beam들.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


이 명대사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이 대사의 앞에는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부분을 다 쳐 내고 마지막 파트에 한 줄이 추가됐죠.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이거요.


그런데 이걸 주도한 사람이 바로 그 인조인간 군인 역할을 했던 배우였습니다. 이 배우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배우입니다. 이 배우는, 그 대사의 추가는 그냥 애드립 혹은 어떤 충동이었을 뿐이라고 수차례 밝혔답니다.


이 영화의 전반에 있어서 인조인간은 절대 사람으로 취급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만 폐기될 뿐이지요. 하지만 이 마지막 이 부분에서 인조인간은 죽을 수 있는 인간(?) - 블레이드 러너 - 를 살려 주고 그 자신은,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으로 '죽음' 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순간을 오마주 한다고도 말합니다.


인조인간의 인간적인 죽음이란, 저 대사에 나와있다시피, 그 짧았던 4년간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의 기억이, 비록 그렇게 행복하진 못했을 기억일지라도, 사라지는 걸 죽음으로 보는 것이죠.


혹자는 이해력 부족으로 이런걸 못보고 'tears in rain' 뭐 이런 거에 꽂혀서 허무주의니 뭐니 과몰입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뭐 어떻게 해석하든 각자의 자유 아니겠습니까!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오셨습니까? 저는 참 다행스럽게도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무척 행복합니다.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죽음이 찾아오면 저의 이 모든 행복했던 기억도 사라질 것입니다.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야죠. 다만 그 전까지는 아내와 함께 지금처럼 행복한 기억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 모두도 현재의 순간순간이 나중에 행복한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그런 나날이기를 기원해 봅니다.


지금까지 잡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