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아내는 처음 만난 코끼리마저 조련해 버린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나는 아내의 조련 대상이자 내 모친의 조련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갑자기 아내가 무서워진다. 아내는 무자비하고 치밀한 조련의 여왕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모친은 아내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소싯적에 아내는 어마무시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고기 뷔페에서 모친에게 아내를 소개한 후 아내는 고기를 가지러 자리를 떴다. 모친이 테이블 너머로 상반신을 쑥 내밀어 내 근처로 가까이 숙이고서 속삭이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디게 이쁘다 야! 곱기도 하다! 너 재주도 좋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청상과부인 모친은 나를 홀로 키웠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나는 홀어머니와 자란게 아니라 마치 홀아버지와 자란것처럼 느껴진다. 모친은 호쾌한 남자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거친 세월, 홀로 아들을 키우기 위해 그렇게 변하셨을 게다.
결혼 후 첫 김장을 할 때 아내는 모친의 비법을 보고 신기해 했다. 모친의 김장김치는 꽤 맛있다. 진하게 고은 사골 국물을 풀처럼 섞어서 김치를 만든다.
김장김치가 적당히 숙성이 됐을 때, 아내가 감탄하며 내게 말했다.
'나 지금까지 우리 엄마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와! 이거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인 걸!'
나도 일찌기 장모의 김치맛을 알고 있었지만, 뭐 그렇게까지 많이 차이가 나는건가? 생각했다. 그래도 아내가 모친의 김장김치를 더 맛있어 한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엄니. 엄니 새 아기가 말하길, 엄니 김치가 자기 친정엄마 김치보다 몇 배나 더 맛있다 그러네!'
혼자 모친의 집에 들렀을 때 아내가 김치를 맛있어 한다고 말해 줬다.
모친은 무심한 듯
'그러냐?'
대답하며 쭈구려 앉아 바닥에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모친의 얼굴을 목격했다. 입이 찢어져서 양 귀에 걸렸다. 양 볼에 홍조까지 띠었다. 지금까지 모친과 살면서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찐으로 행복하고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모친이 여자가 되어 있었다.
결혼한지 3년 정도가 지나서 모친과 같이 살기 시작했다. 모친과 아내는 사이가 좋았다. 둘이 같이 공중목욕탕에 다니기도 하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일요일에 소파에 드러누워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노라면 저쪽 부엌 바닥에선 모친과 아내가 마늘 같은 것을 까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끔은 키득키득 하고, 나를 보면서 소곤소곤 말하는게 둘이서 꼭 나를 흉보는 거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얼굴엔 항상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모친은 점점 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같이 살기 시작한지 어느 정도 지난 후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어떡하지? 나 친정 엄마 보다 어머님이 더 좋아지는 거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사실 둘이서 좋아 죽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 둘이서만 놀면서 나 혼자 심심한 걸 뭐.
언젠가 모친과 둘이 있을 때, 아내가 해줬던 말을 전해 드렸다.
'엄니, 어멈이 자기 친정 엄마 보다 엄니가 더 좋다는데?'
'에이, 그냥 하는 말이겠지, 진짜 그러겠냐.'
모친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또 보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양 입가가 찢어져서 두 귀에 걸렸다. 세상 행복한 표정이다.
이 즈음에 아내는 모친의 자랑거리였다. 누구에게나 당신의 며느리를 자랑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영천댁의 이쁘고 착한 며느리를 칭찬하기 바빴으며 부러워하곤 했다. 심지어 모친은 나에게까지 당신의 며느리를 자랑했다.
'이놈아, 내가 인복이 있어 가지고 네가 어멈이랑 만난거여. 고맙지? 이놈아.'
내가 결혼을 할 때 친구들은 아직 대부분 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결혼 생활이 보통인줄 알았다. 고부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주말 드라마에서나 과장되게 묘사되는 것일 뿐이고 실제 생활은 모두 나와 비슷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친구들이 점점 결혼을 하고, 술자리에서 자기 아내와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니, 나의 아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은 고부갈등이라는게 뭔지를 이해조차 못하는 나를 신기해 했다. 아니 모친과 같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사실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나도 이상한 점을 느껴 여기저기 알아보니, 드디어 내가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로또에 연속으로 두 번 당첨된 것과 같은 상황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모친은 말년에 딸이 생겼다. 같이 장도 보고 목욕탕도 가고 수다도 떨고, 항상 웃음기가 얼굴에 맴돌았다. 아내는 완벽한 기교와 치밀한 작전으로 시어머니를 자신에게 홀딱 빠트렸다. 아내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엄청난 행복을 모친에게 선사한 것이다.
오래전 모친은 암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약 일년간에 걸친 병수발은 몽땅 아내의 몫이였다. 아내는 마치 친딸처럼 병상을 지켰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한없이 면목이 없다.
세월이 지나며 아픔이 가라앉은 후 아내는 다시 조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아내의 조련 상대는 오롯이 나 혼자다. 아내의 능수능란한 조련 기술에 의해, 나는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 마냥, 꼬리를 흔들어 제끼고 배를 뒤집어 까고 어쩔줄 몰라하는 강아지마냥, 아내에게 홀딱 빠져 버린다.
아내의 조련 기술에 걸리면 마법이 일어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데 또 사랑에 빠져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 반해버리는 말도 안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아내를 볼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이유다.
나는 전생에 생사를 넘나들며 나라를 여러번 구했나 보다. 혹시 나는 이순신 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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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이러한 마수는 아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현재 일어나고 있다. 여기저기 파트들이나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내를 요구하고 있다. 매니저는 아내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로운 스케줄표가 나오면 여기저기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다. 이 때문에 아내는 때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할 때도 있다. 10일 연속으로 휴일 없이 일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언젠가 다른 글에서 계속… 할지 안 할지는 나중에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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