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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삶은 영어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기밀 엄수 및 5년간 한국과 일본에서 동종업계 활동 금지'


한국에서 마지막 회사를 사임할 때 날인하여야만 했던 각서의 핵심 조항이다. 이후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상당한 재산을 잃는 등 사회의 쓴 맛을 보고야 말았다. 하려던 일도 사기로 틀어지고 원래 했던 일도 각서에 의해 못하게 되었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사나 아내와 손가락을 빨며 고민하고 있을 때, 뉴질랜드에 있는 처형이 연락을 해 왔다.


'얘들아, 이리로 와! 여기 너희 같은 기술 가진 사람들 쉽게 올 수 있어.'


이때 처음으로 이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상의한 후 뉴질랜드는 너무 작을것 같아 그 옆 나라인 호주를 염두에 두었다. 출장으로 몇번 왔다갔다 해서 좀 익숙한 나라이기도 했다.


이민 신청을 위해 아이엘츠 IELTS 영어 시험을 보았다. 전형적인 한국인 성적 - 리딩과 라이팅은 높고 스피킹과 리스닝은 형편없는 - 을 받았다. 스피킹 성적이 호주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미달했다. 그런데 또다른 주요 이민 수용국인 캐나다는 내 점수로 전문인력이민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플랜 B로 캐나다에도 이민 신청을 해 놓고 좀 더 공부해서 아이엘츠 시험을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험 성적이 오르기는 커녕 더 떨어지는 것이었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되어 그냥 영어 성적에 맞춰 캐나다로 진로를 바꿨다. 즉 나의 영어 실력이 나를 캐나다로 인도한 것이다.


이렇게 영어라는 언어는 사람이 밤하늘에서 북극성을 볼지, 혹은 남십자성을 보고 살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전문인력으로서 캐나다로 건너 왔지만 나는 내 분야의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읽고 쓰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프로페셔널한 현장에서 듣고 말하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나는 프로젝트를 관리해야 할 입장인데, 나의 영어 실력으로 그런 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벼룩도 낯짝이 있지' 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거였다. 그래서 집착을 버리고 금방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현재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이 또한 나의 영어 실력이 겨우 허락하는 자리다.


썩 나쁘지 않다. 매일 아침 동틀 무렵, 동녘 하늘에 밝게 빛나는 금성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 발밑에서 도로는 최대 시속 7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 처음 트럭커가 된 사람의 90%가 3개월 안에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둔다는데 요행히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렀다.


계속해서 풍경이 바뀐다.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을 만날 때도 있다. 12월에 후덥지근한 루이지애나에서 무단승차한 파리 한 마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하 20도를 밑도는 캘거리까지 3박 4일간 동행하기도 했다. 꼼짝없이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직업. 아직은 나쁘지 않다.


아내 또한 집 근처 리타이어먼트 센터에서 전무후무한 멀티 롤 워커로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일하고 있다. 여러 파트가 아내를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두 파트에서 번갈아 혹은 동시에 일하며 혹사 당하고 있다. 아내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지만 역시 영어 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리다.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집에서 다음 트립을 위해 옷장을 뒤적이다 보면 예전에 애용하던 수트와 넥타이들이 보인다. 아마도 이것들은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주인을 만난 죄로 조만간 죄다 버려질 운명이다. 쓸데없이 멀리 한국에서부터 가져오는 수고를 했다.


도대체 무슨 헛된 희망을 품었던 거냐?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뉴질랜드로 갔을 걸! 그러면 최소한 아내가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이민자들의 삶은 영어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 씨, 영어공부좀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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