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쓸개에 돌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간혹 아프면 응급실에서 준 진통제를 먹고는 했죠. 캐나다에 살고 있습니다.
월요일 진통제가 다 떨어져서 처방전을 얻으려고 워크인(예약 없이 갈 수 있는 클리닉)을 갔습니다. 거기는 제 패닥(패밀리 닥터)이 있는 곳이었는데요, 제 패닥은 흑인이고 영어발음이 원어민이 아니고 이름이 100% 회교도인 사람입니다. 무슨 모하메드, 알리 이런게 막 들어간 긴 이름이죠.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제 패닥이 무척 한가했나봐요. 예약도 없었는데 단 15분만에 5명의 의사중에서 제 패닥을 바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제 아파서 이 약 먹었음. 지금 점심먹고 또 약간씩 아파지고 있음. 처방전좀 줄래?'
'잠깐 누워봐.' 여기저기 누르고 하더니... '처방전 안줌. 레터 써줄테니 응급실로 바로 가.'
'어, 잠깐! 나 이 주 후에 한국가. 그냥 약 처방전만 주면 안됨?'
'그냥 구멍 두 개 뚫는 수술임. 수술하고 가도 됨. 빨랑 응급실로 가셈.'
그래서 레터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오후 네 시 쯤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점점 아파지더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되는 거였습니다.
응급실에서 피검사, 심전도, 초음파 검사 등을 했고요, 그 다음날 새벽 두시부터 입원해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단식 17시간여가 지난 오후 5시 반 쯤에 수술했고 수술 다음날 오후 네시쯤 퇴원했습니다.
일단, 제 패닥인 알리에게 따져야 할 게 있네요. 제 배엔 구멍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의 구멍이 현재 뚫려 있습니다. 물론 두 개의 구멍은 무척 작은거지만요.
제가 한국에서도 병원과 별로 안친한 사람이라서 한국과의 비교는 잘 못합니다만, 느낀점 들입니다.
내 배는 동네북
많은 의사를 만났습니다. 응급실 의사, 수술 의사들, 회진 의사들... 모두 저를 보면 제 배를 이곳저곳 두들기고 눌러보고 진짜 성심껏 봐주네요. 고마웠습니다. 미드 하우스, ER, 그레이스아나토미 등의 등장인물들이 막 저를 주물거리는것 같더라고요. 나중엔 마약성 진통제에 취해서 제가 막 의학 미드에 출연중인것만 같았습니다.
설명충들
정말 말 많아요. '네 담당엔 돌이 몇개 있는데... 이래서 저래서 아픈거고 지금 안아픈 이유는 어쩌구 저쩌구... 그렇다고 앞으로도 괜찮다는건 아니고... 이런 수술인데... 수술 과정중엔 과다출혈, 내장 손상, 감염 등의 사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저쩌구 어쩌구...' 이런 설명을 끝간데 없이 합니다.
그런데 이게 1인에게 오는게 아니라요, 전형적인 백인 미녀 의사가 수술모를 쓴 채로 정말로 피곤한 모습으로 목이 확 가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미 여러번 들었던 말을 또 해주는 겁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 였고 전 정말 그 의사를 쉬게 해주고 싶었어요.
'아니, 잠깐, 내가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미 어떤 여자의사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었거덩?'
'아 그래? 체크해 볼게.' 저 쪽의 단말과 서류를 체크하더니 돌아와선 '나한텐 자료 없네. 그냥 또 들어. 그래서 이런 사고는 5000명 중에 한 번 일어나는데 그런 경우엔 ...'
장황한 설명이 끝난 후 그 의사가 일어났을 때, 아~ 배불뚝이 임산부였습니다. 이거 임산부를 너무 학대하는거 아닙니까?
의사뿐만이 아니라 간호사들도 설명충이었습니다. 아줌마 간호사가 수액과 함께 조그만 약재를 같이 연결하면서
'이 약은 항생제인데 감염 예방 차원에서 놓는거야.'
할머니 간호사가 주사를 놓으면서도
'이 주사는 피가 잘 굳게 하지 않는건데 네가 장시간 누워있을 때 다리에서 혈전같은게 생겨서 혈관을 막지 않도록 돕는거야. 이건 조금 아플건데 자, 지금부터 코로 숨쉬고 잎으로 뱉어. 아니아니, 그렇게 빨리하면 과호흡돼. 나 따라서 흐읍~파~흐읍~파~. 옳지 끝났다.'
의심충들
의사와 간호사들은 제게 뭔가 조치를 취하기 전엔 끊임없이 제게 저에 대한 사항을 물어봤습니다. 이럴 거면 팔목엔 왜 신원확인용 팔찌를 두 개나 끼워놨는 모르겠네요.
'당신 이름은? 생년월일은? 여기 왜 와있지?' 이런거를 물어본후에야 제 손목의 팔찌를 확인하고 피를 뽑거나 검사를 하더군요.
의사들이 물어보는 것은 여기에 더 추가됩니다.
'알러지는? 병력은? 먹고있는 약은?' 등등이요.
압권은 수술실에서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간호사 누구누구고요, 오늘 수술팀중에 한명이에요.'
'헉~ 안녕하세요.'
'영어 잘 하세요? 영어이름 있으세요?'
'아니요. 아니요'
'그럼 한국어로 할게요. 이름이 뭐에요? 생년월일은요? 여기 무슨수술 하러 오셨어요? 여기 서류에 싸인하신게 어디어디에요?'
한국인 간호사가 계셨어요. 뭐, 여러명의 수술팀들과 바쁘셔서 이야기 나눌 틈은 없었습니다만 반가웠습니다.
최신 시설
와~ 그 침대. 병실에서 제가 썼던 그 침대를 집에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간호사나 의사의 필요에 의해 높낮이가 조절됨은 물론이고 등받이 발높이등이 조절됨은 물론 매트리스의 단단함/푹신함까지 조정이 가능하더군요. 물론 모든 조정은 원터치 전동식이었습니다. 수술이 끝난 후 제 팔뚝에는 원격 혈압 측정기가, 양 다리엔 발목부터 무릎 아래까지 뭔가가 감싸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안마하듯 꽉 조였다가 풀어주고는 하더군요.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아마 다리 혈액 순환을 돕는 장치였겠죠?
만장일치제 퇴원제도?
사실 전신마취가 풀리고 제 방광이 좀 시원찮았어요. 한동안 소변을 못보다가 겨우 보기 시작한게 10~20분마다 100ml, 200ml 씩 찔끔찔끔 나오더군요. 결국 의사의 지시로 카테터를 삽입하고 소변을 배출했죠. 두 명의 젊은 여성 간호사들이 카테터 처치를 한 건 좀 창피했습니다. 이런건 남자 간호사한테 시키지…
회진 도는 의사가 집에 가도 된다고 해서 룰루랄라 사복으로 갈아입고 최종 퇴원 오더만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오더니,
'의사중 한명이 너 방광기능이 확실히 돌아온것이 확인되야 퇴원시켜 주겠단다. 소변 보고 방광스캔 한 후에 집에 갈 수 있다.'
그래서 평상복 차림으로 한숨 잔 후 450ml의 소변을 본 후, bladder scanner로 제 소변이 50ml 미만 잔존한걸 간호사의 축하속에 확인한 후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참 친절하고 신속한 의료서비스였습니다. 어디 한군데 불만을 말할 수가 없네요. 정말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의 의료 경험담은 항상 이렇게 끝나야 제맛이죠 : 이 모든 비용은 무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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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사항을 하나 빠뜨렸어요. 한국병원 처럼 보호자가 환자와 같이 지내지 못합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 같은 것 없습니다. 라틴계로 보이는 여사님 두 분이 환자들의 시중을 들어주셨습니다.
아래 글처럼 보호자는 단호하게 쫓겨납니다.
안돼! 네 남편은 이제 내꺼야. 넌 집에 가!
https://nonsense-delusion.blogspot.com/2023/10/blog-post_17.html
그리고 병실은 유니섹스입니다. 제 기억에 네명 정도가 한 병실에 있었던 것 같아요. 병원은 Foothill medical centre 였습니다.
이 글이 향후 절대 도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라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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