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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미소


 몇년전 아내와 워터튼 공원에서 캠핑한적이 있었다. 그 때 워터튼 마을의 리커샾에서 싸구려 남아공산 화이트와인을 사서 나눠마셨다.


그런데 와인병에 붙은 레이블의 그림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술기운이 올라 알딸딸해진 속에서 양 눈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니 이거 창조론속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이브는 막 선악과를 베어물고 드디어 진실을 깨우친 표정이다. 마치 '훗, 그런 거였구나!' 하고 모든걸 알아챈 직후다. 그 뒤에 아담은 이브의 행동에 겁먹은 찌질한 모습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아담은 선악과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 진실의 열매를 베어물자마자 나타난 야훼 때문에 깜짝 놀라 그만 목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남자들의 목젓이 불룩 튀어나왔고 이를 Adam's apple 이라고 한다.


결국 인류 창조 이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이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깨우친 순간 이브의 표정이 뭔가 낯설지 않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기간 고행하다가 드디어 깨달음에 이른 석가모니의 미소와 닮아있다.


이브가 자신이 깨우친 것들을 후손에게 남겼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트경 3장 2절 하와께서 세트에게 이르시길 네가 드린 제물을 신께서 취하지 않으셨다고 맘상하거나 질투하지 말라. 형제간에 살인까지 날 수 있는데 전혀 그럴 가치가 없느니라, 하시니 세트가 그리하였다.'


'아담경 11장 5절 이브께서 아담에게 오, 아직도 당신 목에 걸린 그것을 어쩌지 못하나요? 여전히 실체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군요. 어리석은 지아비여, 가서 물이나 길어와요, 하시니 아담이 그리 하였다.'


으아~ 상상만해도 재미진다.


나는 비록 종교가 없지만 불경의 가르침은 살펴볼만한게 많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브도 수많은 가르침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아무것도 없어서 아쉽다. 성경에 의하면 유사이래 가장 현명한 사람이니까. 또 이브와 석가의 미소를 봐라. 두 분은 비슷한걸 깨달은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상한 음식을 먹고 인간적으로 입적한 부처의 삶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게 그의 온화한 미소다. 그는 절대 노여워하지 않는다. 그저 대자대비할 뿐이다.


내가 비록 종교에 대해선 일자무식이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훼에게 가까이 다가가길 꺼려지는게 바로 부처와 다른 그 점이다. 야훼는 걸핏하면 노여워하신다. 그리고 걸핏하면 사람들을 죽여댄다. 뭔가 좀 더 세련된 방법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암튼 야훼는 너무 폭력적이라 내 스타일의 신이 아니다.


선악과를 크게 베어물고 우리를 해방시켜주신 이브님께 감사하다. 만약 선악과를 깨물지 않았다면 지금도 아담과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마치 텔레토비 동산의 뚜비와 나나처럼, 둘이서만 하하호호 살고 있었겠지.


그야말로 인셉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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