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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꿀이었고 내 심장은 달달했었지...

처음 트럭운전 일을 시작했을때는 그야말로 싱싱했다. 새로 시작하는 분야에서 군기가 팍 든채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쉬퍼, 리시버, 트럭스탑 등등을 돌아다녔다. 신입 초짜 드라이버의 풋풋하고 싱싱한 오라를 뿜뿜 뿜어냈을 거였다. 항상 트럭 운전사 를 상대하는 이들은 금방 나를보고 초짜임을 알아챘을거다.


한번은 빈 트레일러를 달고 어느 쉬퍼에 들렀을때다. 건장한 체구이지만 백발이 성성한 야드쟈키가 나를 멈춰세웠다.


'Hey, son. 그거 빈거면 저짝에 내려주게. 나 당장 그거 필요해. 고맙네, son.'


나를 son이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 하면 '젊은이' 정도에 해당할 거다. 이 나이에 젊은이 소리를 다 듣다니, 기분이 좋았다.


미국의 트럭스탑엔 유쾌한 분위기의 이모님들이 캐셔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곧잘 나에게 이런식으로 말했다.


'안녕, Honey. 뭐 필요해?'

'좋은 하루 보내, Sweetheart.'


빅뱅이론에서 페니가 쉘던을 부를 때 쓰던 호칭을 생방송으로 내가 들을줄은 몰랐다. 쾌활한 이모님들에 의해 나는 꿀이 되었고 내 심장은 달콤했었지.


이제 모두 과거의 일이다. 운전대를 잡은지 이제 곧 5년차에 접어든다. 새로운 일은 없다. 모든게 시큰둥 하고 긴장되는 일도 없고 똑같은 일들의 반복이다. 무료함과 짜증의 오라를 뿜뿜 뿜어내며 북미를 돌아다닌다.


이른 새벽, 트럭스탑에서 물세수를 하고 얼굴을 들면 웬 추한 중늙은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졸음을 쫓기 위해 먹어대는 견과류, 캔디, 소다, 저키에 의해 살이 찌다가 못해 볼까지 퉁퉁해져서 축쳐서는 깊은 팔자주름을 이루고 있다. 귀찮아서 오래 하지 않은 염색 이후에 길게 자란, 빗지 못한 백발이 성성하다. 와, 5년만에 이렇게 팍삭 늙을 수도 있구나.


긴 운전을 마치고 삐걱거리는 몸을 가누며 화장실을 갈라치면 젊은 트럭커가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며 말한다.


'After you, sir.'


트럭스탑의 이모들은 더이상 웃어주지 않는다. 다만 사무적으로 말할 뿐이다.


'Good morning, sir. … Two dollars, sir. … You have a good one, sir.'


확연히 시니어 대접을 받고 있다. 나는 더이상 son, honey, sweetheart로 불리지 못할거다. 서글픈 일이다.


되돌릴수 없는 일이다. 시니어 대접을 받고 있다면 그 역할을 해야지 뭐, 내가 용가리 통뼌가? 그래서 좋은 생각이 났다. 더이상 내가 젊은이가 아니고 꿀이 아니고 내 심장이 달달하지 않다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려야지.


아침에 소다를 사면서 캐셔에게 이렇게 말해야지.


'Good morning, honey. … I am using my points for this. … You too, sweetheart.'


트럭스탑을 나설 때 문을 잡아준 청년 트럭커에게 말해야지.


'How kind of you, son. You have a safe trip, son.'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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