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검색

너 어디서 왔니?

몇년전 일이다.

새벽에 아이오와의 시골 회사 야드에서 지정된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밴쿠버를 향해 출발한지 세시간째였다. 사우스 다코타의 깡촌의 I-94를 타고 있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마치 영화 MIST의 한 장면 같았다. 한적한 길이지만 속도를 올릴 수 없었다. 언제부턴지 끼리끼리하며 에어프레셔가 돌다가 125 psi가 된 순간 피쉬식 하며 거버너가  컷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나고 있었다. 젠장할...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 십중팔구는 타어어에 문제가 생긴거다. 근처 레스트 에리어에서 점검해보니 트레일러의 8 개의 타이어중 하나가 완전히 림에서 분리된 상태였다.


회사에 콜을 했다. 근처에 와줄 수 있는데가 없으니 나더러 펑크난 타이어로 시골 마을의 어딘가의 샾으로 천천히 가란다. 제길, 걸리면 결국 나만 딱지 끊을텐데... 회사가 이해되기도 한다. 여긴 정말 깡촌이다. 휘뿌연 안개속에서 시골마을에 들어서니 알려준 주소에 자그마한 샾이 나타났다. 백인 할아버지가 맞아주었다. 회사의 지시는 새로 타이어를 사지 말고 스페어 타이어를 장착하라는 것이다. 빵꾸난 타이어를 스페어로 바꿔 끼워줄것을 부탁하니 할아버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른 아침에 수백불의 매출을 기대했을텐데 겨우 40여불의 인건비만 챙길 수 있으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히 미안해졌다. 할아버지가 나더러 트레일러 밑둥에 장착된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달란다. 갑자기 안미안해졌다. 이런건 또 처음 겪었다. 경로사상을 발휘하여 먼지를 뒤집어쓰며 원하는데로 해줬다.


수리를 마친 후 계산을 위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할아버지의 아내인 듯한 할머니가 수납을 맡았다. 사무실의 TV에선 FOX 뉴스가 흘러나오고 벽에는 성경 구절이 새겨진 액자와 십자가가 걸려있다. 할아버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서 TV에 눈을 주고 있다. FOX, 십자가, 깡촌, 백인, 할아버지... 나 트럼프 좋아한다고 말걸면 할아버지 기분이 좀 풀릴려나?


관둬라, 네 영어실력에 무슨... 하며 나서려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질문했다.


너 어디서 왔니?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왜 갑자기 이른 아침에 나타난 중년 중국인 트럭운전사가 궁금해진걸까?


엄... 오늘 새벽 떠나온 아이오와의 시골 마을 이름을 얘기해야 하나? 엄... 며칠전 떠나온 캐나다 알버타를 얘기 해야 하나? 엄... 수년전 떠나온 한국을 얘기해야 하나?


I am from South Korea, <pause> living in Canada, <pause> working for an American company.


갑자기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뭐라뭐라 구어체 영어 공격을 시작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단어들이 스치며 지나가는 와중에 나도 바보처럼 히히 웃어주며 사무실을 나왔다. 뭐, 대충 너 참 복잡하게 살고 있구나 어쩌구 하며 농담을 잔뜩 늘어놓은것 같았다. 캐나다로 이민와서 트럭을 몰며 극히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다지 단순한 삶을 사는게 아닌것도 같다.


최근 두 번째 PR card 갱신 신청을 했다. 벌써 캐나다에 이사온지 1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다. 거주 의무 일수를 못채운 탓에 구비서류가 많고 복잡하다. 사우스 다코타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이민국이 보는 나의 삶은 복잡한 것임에 틀림 없다.


단순한 삶을 사는게 이리도 어렵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