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거리 트럭커다.
북미에서 트럭 드라이버는 그리 존경받는 직업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여러가지 면에서 천시받는다.
공권력은 우리를 일단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고 시작한다. 법 체계는 우리를 체계적으로 옳아매서 관리한다. 최신 IT 기술은 24 시간 실시간으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트럭 운전사는 하루에 14 시간의 시프트를 가진다. 14 시간중 11 시간을 운전할 수 있다. 14 시간의 시프트가 끝나면 10시간 동안 절대 트럭을 움직여서는 안된다. 8일간 절대 70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매일매일 지장없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8시간 반 남짓이 된다. 이 모든 운행 이력은 트럭 내부의 ELD 장치에 의해 자동으로 기록된다.
경찰이나 DOT 오피서가 길이나 웨이스테이션에서 트럭을 세우면 일단 운전석으로 머리를 쑥 들이민다. 마리화나나 알콜 냄새를 감지하기 위해서다. 혹은 차 바닥에 술병이나 금지 약물의 흔적이 있는지 보기 위함이다. 그리곤 위 ELD에 기록된 운행 기록을 뒤져보고 위반 사항을 찾으려 든다.
간혹 무작위 약물 검사에 선택되어 지정된 크리닉에 가서 느닷없이 오줌을 좀 뺏기는 일도 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다. 또한 이런 일에 뺏기는 시간이나 수고에 대해서는 전혀 보상받지 못한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일은 항상 약간의 긴장속에서 진행된다. 어디가냐, 뭘 실었냐,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냐,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고기가 있냐 시시콜콜 물어본다. 한번은 왜 네까짓게 미국 번호판 트럭을 몰고있냐고 심문실에 불려가 한참 취조당한적도 있다.
최악은 캐나다 혹은 멕시코 보더 근처에서 트럭 수색을 당할때다. 캡은 나의 일터이자 식당이자 거실이자 침실이다. 보더 패트롤들은 구두발로 캡에 들어가 금지물품, 밀수품 혹은 밀입국자가 있는지 들쑤셔본다. 나의 프라이버시는 전혀 존중받지 못한다. 뒤집혀진 컴파트먼트와 이부자리를 다시 정리하다 보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이런 취급을 받는가 말이다.
길에서 일반 운전자들은 세미 트럭을 경원시한다. 이해한다. 태생적으로 굼뜬 트럭 뒤에서 답답한 심정으로 졸졸 따라다닌 경험을 나도 많이 가지고 있다.
신호가 바뀌거나 오르막 일차선일때 가속되기까지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속에 내 뒤로 승용차들이 긴 줄을 이룬다. 마치 어미를 뒤쫏는 새끼오리들같다. 길이 트이면 승용차들은 내 트럭을 추월하며 경적을 울리거나 창문을 열고 가운데 손가락을 세운 팔을 내밀어 나에게 뽀큐를 먹이곤 한다. 일반 승용차 운전자에게 트럭은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훼방꾼일 뿐이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고 우리는 갑자기 영웅이 되었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국경이 닫혔다. 락다운이 시작됐다. 해외여행 후 14일간 강제 격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서 트럭 운전사는 예외였다.
회사는 우리에게 증명서를 줬다. 대충 내용이,
'이 사람은 장거리 트럭 드라이버임. 즉, 엣센샬 워커임. 이 사람은 강제 락다운의 대상이 아님. 이 사람은 14일 쿼런틴 대상이 아님. 여튼 중요한 사람이니까 이 사람의 용무를 방해하지 마쇼.'
뭐 이런거였다.
여기저기 사재기가 시작됐다. 물류의 생산과 유통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곳곳의 매장의 매대가 텅텅 비기 시작했다. 갑자기 뉴스에서 트럭 드라이버들을 내셔널 히어로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트럭 운전사에게 가해지던 업무 규정이 일시 정지되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움직이고 싶을때 운전하고 자고 싶을때 잘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이나 DOT 오피서가 트럭을 정지시키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미국 국경을 넘는 일이 간단해졌다.
'Anything to declare?'
'Nothing.'
'Good to go, sir.'
단 몇 단어로 입국심사가 끝났다.
여기저기 프랭카드나 사인보드가 도로에 넘쳐났다. 내용은,
'사랑해요, 트럭커'
'고마워요, 트럭커'
같은 거였다.
간혹 트럭 드라이버에 대한 감정이 과잉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미네아폴리스 진입 전 레스트에리아에서 어떤 사람이 막 울것같은 표정으로 다가와서 나에게 두 개의 맥도날드 햄버거를 건네며
'Thank you for your service.'
한적도 있었다.
코비드 시국에 트럭 운전사에게 가장 좋았던 것은 한적해진 도로였다. 트럭커를 향한 애정이 넘쳐나는 수많은 사인보드들을 지나치며 러시아워의 시카고 도심 지역을 최고속도로 지나가 본것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낱 트럭 드라이버들이 영웅 취급을 받는 세상은 정상일 수 없다. 코비드가 잠잠해지면서 트럭커들도 과거의 무식하고 지저분한 레드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도로는 다시 차들로 넘치고 있다. 닫혔던 국경이 열리고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긴 승용차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사랑해요, 고마워요 트럭커 어쩌구 하는 사인들은 보기 힘들어졌다. 입국 심사관들이 다시 무뚝뚝해졌다. 경찰과 DOT 오피서들이 트럭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저깨 콜로라도/와이오밍 웨이스테이션에서 DOT 체크를 받았다. IFTA 퍼밋이 있네없네로 30여분간 실랑이 후에 겨우 풀려났다. 두 명의 오피서와 가타부타 얘기했는데 우리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던게 떠나자 마자 생각났다.
오늘 새끼 오리들을 길게 거느리며 오르막길을 낑낑대며 올랐다. 드디어 메인 도로에 합류했는데 뒤를 졸졸 따라오던 차 한대가 나에게 뽀큐를 날리며 추월했다.
오랜만에 뽀큐를 먹으니 기분이 좋다. 팬데믹 이전으로 점차 돌아가는 중이다. 영웅의 지위에서 다시 원래의 밑바닥 자리로 빠르게 추락하는 중이다.
202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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